사진부라서 행복해요
사진부라서 행복해요
  • 박한라 기자
  • 승인 2004.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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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6번 끝내고 나서야 수습 생활에 적응했다 싶었는데 75기 수습기자 모집 공지가 떴다. 게다가 이 수습일기를 쓰고 있는 사이, 한 학생이 75기 수습기자 지원서를 받으러 학보사를 다녀갔다.

“저기요. 여기서 수습기자 지원서 받는 건가요?”
난 얼어버려 말문을 열 수 없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아직 4번의 제작이 남았는데 벌써 75기 수습이라니!

학보사에 합격한 후, 사진부는 사진에 대해 배워야 하기 때문에 수습기자가 되기 전부터 사진기자를 정해야 한다며 수습기자의 지원을 받았다. 그 때 난 사진부를 두고 심하게 갈등했다. 사진부도 가고 싶고 다른 부서도 가고 싶고, 그런데 다른 사람이 사진부에 가는 건 못 보겠고… 그 놈의 못된 심보가 나를 수습기자가 아닌 사진부 수습기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진 기자라는 로망을 가지고 들어간 사진부에서 나의 실상은 실수 연발이었다.

자동카메라 밖에 접해보지 못한 나에게 수동카메라는 그 매력이 뭔지 느끼기 이전에 일단 번거로운 물건이었다. 그리고 찍으면 저절로 나오는 게 사진이라는 무지한 생각은 흑백 사진의 현상·인화 과정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그 뿐인가. 카메라와 온갖 장비들을 들고 발로 직접 뛰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철판 깔고 셔터를 눌러야 하는 민망함은 나를 더욱 수그러들게 만들었다. 6번의 제작이 지난 지금도 필름에 먼지를 묻히거나 상처를 내곤 한다.
처음 흑백 사진을 인화했던 날, 하얀 인화지 위에 서서히 낚시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드러날 때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카메라는 사진을 인화할 때까지 어떤 사진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때문에 흑백 필름은 나를 불안하게, 초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삽질 할까봐;;) 그 설레임 만큼은 최고다.

암실의 또 다른 매력은 바쁜 마감 일정 속에서 유일한 휴식처가 된다는 것이다. 마감 때면 기사에 대한 압박으로 학보사 기자들의 스트레스가 극을 달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조용한 암실에서 인화를 하고 있으면 꼭 혼자 학보사를 탈출한 기분이다. 이것이 바로 사진부 수습기자의 특권이자 간식 시간을 놓치는 비극이 아닐까.

그래도 다른 수습이 사진부에 들어가는 꼴을 못 보겠던 그 못된 심보 덕에 난 지금 행복하다. 다른 수습기자보다 할 일도 많고 더 뛰어다녀야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돼 기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사진부, 아자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