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을 입을까요?” “평소 너같이 입고 갔다가는 맞고 오겠다. 얌전한 옷으로 골라 입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취재하게 된 나는, 무엇보다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하는 지를 걱정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연신 옷에 관한 질문을 할 정도로 나의 첫 취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였다.

가마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난 얌전한 원피스를 입고 안국역으로 향한다. 집회시작 시간은 12시. 째깍째깍 시간은 자꾸 가는데 일본대사관이 어디인지 도대체가 보이질 않는다. 몇 분 남지 않은 시간과 늦었다는 불안감에 나의 발걸음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적어도 행사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 분위기를 살피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해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있지만, 나의 몸은 따라주질 않는다. 게으른 중국인들의 만디만디 만만디 병이 나한테도 있는가 보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집회 장소에 겨우 도착한다. 할머니들이 경건하게 앉아 마이크를 들고 울분 섞인 목소리로 호소할 것이라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집회 분위기는 매우 밝다. 단체 티를 맞추어 입고 나온 대학생들은 '바위처럼'(대학가면 다들 배우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할머니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또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어찌나 많은지 방학숙제로 견학하러 와서 연신 사진을 찍고 받아 적기에 여념이 없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네! 네!” 해가면서 열심히 대답은 하는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궁금하다.

색다른 광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기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기자수첩을 꺼내 집회 분위기와 관계자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데 몇 미터 앞에 일간지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더운 날씨에 양복을 입고 정신없이 기자수첩에 펜을 놀리는 프로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흐뭇한 웃음이 난다.

열심히 취재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눈에 익은 모습이 보인다. 같은 학보사 친구들이다. 반가워서 그 쪽으로 달려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취재처가 겹쳤다는 ‘아차’ 하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연습용 취재이긴 하지만 같은 곳을 취재 할 수가 없어 그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늦게 온 내가 먼저 떠나기로 한다. '더운 날씨에 땀 흘려가며 이 곳까지 찾아왔는데' 하는 생각에 화가 난다. 그래도 “우리쪽으로 네가 오는데 진짜 기자(일간지 기자)가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어.”하는 친구의 한마디를 들으니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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