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본교는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2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674호에서는 대한수학회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 지내며 수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이향숙 교수(수학과)를 만나봤다. 10월20일 이 교수는 서울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시민에게 수여하는 ‘제72회 서울특별시 문화예술상’ 학술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교수는 2017년부터 2년간 대한수학회 회장으로서 수학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수학 문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중고등학교를 대상으
초점 없는 눈동자, 그러나 그 눈동자에서 나는 분명히 사랑을 보았다. 사랑 안에 섞인 슬픔도 보았다. 눈동자에 여린 뿌연 안개를 내 엄지손가락으로 닦고 싶었다.코가 왠지 모르게 아려오고 눈에서는 울컥울컥 뜨거움이 차오름을 느낀다. 마침내 코와 눈이 한 쌍이 되어 뜨거움에 잠겼을 때, 입도 슬며시 문을 연다. 그 소리가 슬프다, 슬퍼요. 차가운 손으로 입을 막아보려 애쓰지만 손가락 사이로 뜨거움이 새어 나온다. 소리를 타고 눈물이 한줄기씩 볼에 길을 만들며 흐른다. 나는 그 길을 기억해야만 한다.눈물이 길을 만들며 흐를 때, 나는 뜨
이대동창문인회가 주최하고 국어국문학과와 이대학보사가 주관한 제 2회 이화문예상에서 당선자 5명이 선정됐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문인의 꿈을 눈부시게 키워 나가기를 응원합니다. 시상식은 11월24일(금) 오전11시 프레지던트호텔 브람스홀에서 열립니다. 본교 학부생, 대학원생이라면 누구나 응모 가능한 이화문예상은 매년 10월 작품을 공모할 예정입니다. 수상작과 소설 전문은 이대학보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당선자▦ 대상: 김겨레(컴공·22) 소설 '꿈속으로'▦ 최우수상 : 김혜원(국문·23) 시 ‘요양원에서’▦ 우수상 :
문학은 저에게 현실도피 수단이었습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문학에 기대었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읽고 쓰는 경험은 현실의 결핍, 어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저 자신을 마주하고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자연스레 문학하는 사람을 동경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작가의 꿈을 품는 계기가 됐습니다.우연히 이화문예대상 공모 글을 보았습니다.
중심을 거쳐 종심에 올라 온 5편의 작품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시가 ‘진선미’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기본 가치를 전제로 얼마만큼 소제와 주제의 통일성을 이루며 주제의식을 끝까지 기승전결로 잘 형상화했는가, 표현의 미는 적절한 비유와 직유와 은유를 통해서 얼마만큼 나타냈는가, 시적 이미지는 잘 주제에 맞게 잘 형상화되었는가 등을 중시했다. 끝으로 시가 주는 감동이 있었는가 하는 시적 완성도를 봤다.김혜원의 는 제목에 걸맞은 주제의식을 끝까지 잘 풀어나갔다. 작가의 긍휼하고 따뜻한 마음이 눈물에 녹아 길을 만들고 있다.
수필 부문 후보작 10여 편 중에 2편이 최종 후보작으로 올라왔다. 임성미의 과 양여경의 이다. 어느 작품을 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선정할지 고심하면서 읽었다.수필은 붓 가는대로 쓰는 작품이 아니다. 수필은 타 장르의 문학에 비해 자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자조문학(白照文學)이다. 정(情)의 미학이고 고백적인 문학이다. 나의 심적 나상을 진솔하게 그리는 문학이다. 수필 속의 인물은 곧 나다. 수필 쓰는 것이 수월한 듯하지만, 감동 어린 작품 한 편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이번 후보작을 읽으면서 필요
소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이나영의 , 이한서의 , 우현진의 , 장서윤의 , 김겨레의 , 정은영의 등이었다. 작품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창작 수준이 대단하다는 놀라움으로 가슴이 뿌듯했다.본심위원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고심 끝에 를 대상으로, 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주최자인 이문회로서는 큰 기쁨이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더욱 많은 참여와 정진을 바란다.대상작인 는 급격히 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마치 벌레와도 같이 나의 안에서 계속해서 번식하는 의지라는 성가신 존재는 재능이라 할 수 있는 현실적 능력과 괴리가 커 항상 좌절과 불안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의지가 사라져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의지를 잃어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의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생물은, 심지어 멈춰 있는 존재마저도 의지가 있었습니다. 멈춰 있고자 하는 생각마저 작은 의지가 되어 삶을
먼저 큰 상을 주신 이대동창문인회에 감사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쓴 시로 상을 받았다는 것에 정말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는 눈물을 중심으로 제가 느낀 할머니의 사랑과 할머니를 향한 저의 사랑을 담은 시입니다. 저는 매주 할머니를 뵈러 가족들과 함께 요양원에 갑니다. 갈 때마다 항상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뵈면 슬프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눈동자와 손길에서 저를 향한 사랑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때면 왠지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눈물의 이유에는 슬픔도 있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는 존재일까? 청소년 시기부터 그 답을 찾으려 헤맸지만, 아직도 확신을 두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어느 날의 나는 내가 마침내 나를 벗어나 지금과는 아주 다른 좋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어느 날의 나는 내가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없이 지금 여기에서 영원히 썩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하지만 나는 동시에 천천히 용기를 내고 있다. 비겁자로 사는 주제에 오늘 용기를 내면 내일은 다를 거라는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문과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갑자기 공
이화문예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쓴 시 은 저를 무럭무럭 자라게 해준 동네인 인천 화수동이 배경입니다. 동네 골목의 카페에 앉아서 본 것과 들은 말들이 시의 재료입니다. 많은 사람이 떠난 마을은 적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래떡 기계가 큰 소리를 내며 떡을 뱉을 때마다 ‘세탁소집 아이가 뛰어나’오고 ‘아지매들이 빼꼼’하며 소란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같은 진동수를 가진 물체가 동시에 울리면 공명하듯이 동네의 모든 사람과 사물이 함께 진동하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소리는 내가 여기 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이화동창문인회가 주최하고 국어국문학과와 이대학보사가 주관한 제2회 이화문예대상에는 10월15일 마감일까지 시 141편, 소설 27편, 수필 13편 등 총 181편이 응모됐다. 짧은 기일 안에 놀라운 관심과 반응을 보여준 학생 여러분께 이대동창문인회(이하 이문회)는 깊은 감사를 드린다.그동안 이문회는 적은 액수이지만 글을 잘 쓰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는데 기왕이면 우리가 원고 모집을 해서 문예상 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문화의 시대를 맞이해 차세대 창의적인 작가를 양성하자는 목적으로 치
앞으로 십 초십, 구, 팔, 칠, 육, 오… 이제 진짜 울린다.지금 아 아니다, 앞으로 십 초 더 남은 것 같다.십, 구, 팔. 마저 숫자를 세기도 전에 알람 소리가 따갑게 귀를 파고들었다. 오늘도 틀렸다. 허겁지겁 눈을 번쩍 뜨고 소리가 두 번 울리기 전에 빠르게 알람을 껐다. 하지만 이미 짧게 울렸다 사라진 소리는 귓가를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짜증스럽게 눈을 찌푸리고 누운 자세 그대로 귀를 막았다. 적중에 실패한 날은 이렇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손바닥 틈을 타고 들어와 귓구멍 속으로 침투해 고막 가장
토요일 5시 반 서울역 8‧9번 출구를 가르는 중간 통로엔 무료 진료소 운영 준비가 한창이다. 간이 진료소가 차려지기도 전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들은 하나 둘 통로 가장자리에 일렬로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드르륵 끌어 그 위에 몸을 싣는다. 나는 물건을 옮기는데 여념이 없어 그들이 의자 위에 내려놓은 무게에 대해 짐작조차 않는다. 언젠가 바삐 움직이는 봉사단원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지만 금새 시선을 거두었다. 6시, 진료 시작을 알리는 PM의 말소리가 들린다. 예진 업무를 맡은 나는 노트북에 OCS 프로그램을 띄
화수동에는 60년 된 방앗간이 있는데가래떡 기계는 떡을 뱉을 때마다 몸을 떨었다그 떨림은 골목을 울렸지배춧잎 따며 조잘대던 아지매들이 빼꼼세탁소집 아이가 뛰어나왔고 낮잠 자던 고양이는 가르릉 거렸다 작은 방앗간에서 시작된 떨림은 동네방네 달리며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소리를 이어 갔다사람들은 서로의 진동수를 맞추어 갔다 방앗간 할머니에게는 손주가 있는데자신이 만든 시끄러운 떡은 먹지 않고공장에서 나오는 조용한 떡만 먹는댄다말 많던 사람들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는 가래떡 기계의 소싯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세월을 먹은 기계는 옆에서 골골대었
우리는 긴 시간 우주를 떠돌다 드디어 우리의 모행성인 지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1세대의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의 불가능한 바람에 불과했습니다. 지구는 황폐했습니다. 우리 2세대가 갖고 있는 최초의 기억, 머리도 눈도 검은 우리의 어머니가 따뜻한 풍경 속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그 기억은 어머니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지구에는 살아남은 생명이 없는 듯 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한 화재가 있었고, 종종 1세대 인류의 타버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모행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했
편집자주|본교는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2곳의 연구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673호에서는 코로나 시대부터 엔데믹 시대까지의 흐름 속에서 질병 관리의 역사를 탐색하며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이화사학연구소의 연구소장 최해별 교수(사학과)를 만나봤다.“문제의식과 자료, 이 두 가지는 역사학을 지탱하는 두 다리와 같습니다.” 문제의식과 자료는 역사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라고 최해별 교수는 말한다. 시대에 맞는 연구 주제를 찾고 그 연구에
가야금과 첼로의 선율에 활기찬 탬버린 소리가 어우러지자, 객석의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이제는 고전 명작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에 나오는 ‘언더더씨(Under the sea)’의 전주가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함께 온 부모들도 연주에 한껏 몰입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본교 가야금 앙상블 ‘WITH’와 첼로 앙상블 ‘이화첼리’의 활기찬 1막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관객들의 기립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입장에 나이 제한이 있는 기존 오케스트라 공연과 달리 어린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 세계적 지성이 들려주는 모험과 발견의 철학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서울 : 인플루엔셜, 2023 스마트폰의 등장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진보시켰습니다. 스마트폰은 집으로 세상을 가져다 주었고, 손 위의 세상이 확장될수록 점점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역시 집안에 머물고자 하는 경향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술의 발달이 제공하는 안락함 속에서 집안에서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하지만, 진짜 삶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
요양원에서 초점 없는 눈동자, 그러나 그 눈동자에서 나는 분명히 사랑을 보았다. 사랑 안에 섞인 슬픔도 보았다. 눈동자에 여린 뿌연 안개를 내 엄지손가락으로 닦고 싶었다.코가 왠지 모르게 아려오고 눈에서는 울컥울컥 뜨거움이 차오름을 느낀다. 마침내 코와 눈이 한 쌍이 되어 뜨거움에 잠겼을 때, 입도 슬며시 문을 연다. 그 소리가 슬프다, 슬퍼요. 차가운 손으로 입을 막아보려 애쓰지만 손가락 사이로 뜨거움이 새어 나온다. 소리를 타고 눈물이 한줄기씩 볼에 길을 만들며 흐른다. 나는 그 길을 기억해야만 한다.눈물이 길을 만들며 흐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