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컬트 영화 사상 최고 관객을 기록한 영화 ‘파묘’(2024). ‘파묘’의 흥행 후 ‘무당’으로 대표되는 무속과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샤머니즘 박물관 양종승 관장은 이러한 흐름을 “영화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민속 신앙을 현대에 되살린 것”으로 본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Indiana University)에서 민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한국무속학회 회장을 역임한 양 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옥 구조를 가지고 있는 샤머니즘 박물관의 마루에 걸터앉은 양종승 관장.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한옥 구조를 가지고 있는 샤머니즘 박물관의 마루에 걸터앉은 양종승 관장. 안정연 사진기자

 

‘미신’으로 치부되는 무속, 사실 현대인에게도 남아있다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서 있는 '파묘' 포스터. 제공=쇼박스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서 있는 '파묘' 포스터. 제공=쇼박스

‘파묘’는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당, 법사, 풍수사, 장의사 등이 함께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다. 무당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종교현상을 뜻하는 무속은 현대에서 미신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영화는 미국에서 엄청난 부를 누리며 사는 한인 가문이 이러한 ‘미신’에 기대고자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큐베이터에서 온갖 첨단 기기를 동원해도 갓난아이가 치료되지 않자, 이들은 무당인 ‘화림(김고은 역)’에게 의뢰를 맡긴다.

양 관장은 이를 두고 “현대 한국 사회를 잘 그려냈다”고 말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귀신과 같은 영적 존재나 세상을 매개하는 인간을 비문명적 혹은 비합리적으로 보지만, 절박하거나 위급한 일이 닥치면 그 힘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의 내면에는 아직 무속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무속적 행위는 전통 풍습의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이사 날을 정할 때 악귀인 ‘손’이 돌아다니지 않는 ‘손 없는 날’을 찾는 것.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에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것. 모두 무속에서 비롯된 행위다.

 

역사적으로 계승된 한국 고유의 민속 신앙

무속이 항상 은밀하게 찾아가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기능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역사에서 무속은 국가에서 승인한 신앙이었다. 양 관장은 “과거 한국은 무당을 국무라 칭하며 시대적 필요에 따라 인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려시대부터 존재한 국무는 국가가 관리하는 별도 기관에서 왕실의 축복을 빌었다. 심지어는 유교 정신에 따라 무속 신앙을 규제하던 조선시대에도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국무만은 유지됐다.

양 관장은 무속 신앙 안에 “민족의 역사를 하나로 묶는 전통 끈”이 있다고 믿는다. ‘파묘’에서 ‘상덕(최민식 역)’은 자기 딸과 손자가 살아갈 땅에 ‘험한 것’이 남아 있지 않길 바라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일본 귀신 ‘오니’를 없애고자 고군분투한다. 상덕과 화림을 비롯한 핵심 등장인물들이 무덤을 본래의 터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파묘를 하게 되는 핵심 동기도 마찬가지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계속해 거절하던 상덕은 화림의 신경질적인 “애가 아프다잖아”라는 대사에 결국 움직인다. 이처럼 한국 무속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후손, 나의 나라처럼 주변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기복 신앙으로 계승됐다.

양종승 관장은 영화 ‘파묘’(2024) 속 연출에 대해 분석하며 실제 굿판의 모습을 설명했다. <strong>안정연 사진기자
양종승 관장은 영화 ‘파묘’(2024) 속 연출에 대해 분석하며 실제 굿판의 모습을 설명했다. 안정연 사진기자

파묘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한국 무속 신앙의 특징은 정당성이다. 작품 속 화림의 말을 인용하면, “아무 원한 없어도 근처만 가면 다 죽이는 게 일본 귀신”이다. 그러나 양 관장은 “(한국 무속의) 전통적 존재를 대할 때는 절차와 규범을 따르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일본 귀신과 달리 ‘파묘’에서 나온 조상의 분노 혹은 신의 벌인 ‘동티’ 모두 정당한 절차와 규범을 따르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혼을 달래는 법은 다르다. 이는 작품 속 화림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역)’이 혼 부르기를 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신체와 분리된 혼을 부르기 위해 “신이 없어 못 오시면 상주 짚신을 신고 돌아오소”, “목이 말라 못 오시면 삼 석 잔에 돌아오소”라는 내용의 경문을 부른다. 혼의 사연을 들어주고 억울함을 풀기 위한 것이다.

 

현대와 전통의 결합 <파묘>, 현대인의 ‘혼’ 되살리기

무당 '화림(김고은 역)'과 법사 '봉길(이도현 역)'이 작 중에서 병원을 둘러보는 장면. 제공=쇼박스
무당 '화림(김고은 역)'과 법사 '봉길(이도현 역)'이 작 중에서 병원을 둘러보는 장면. 제공=쇼박스

양 관장은 “‘파묘’의 흥행이 우리 전통 무속 신앙이 재론될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현 세대를 “삶의 패턴이 바뀐 세대”라고 표현한다. 여러 문화가 국내로 도입되며 전통문화는 서서히 잊히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에서 상여를 운반하는 것보다 유골함을 활용하는 화장 문화가 널리 퍼진 것도 그 현상 중 하나다.

‘파묘’는 민속 신앙을 낯설어하는 관객들에게 일상에서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영의 세계를 소개한다. 양 관장은 병원에서 화림과 동료 무당들이 ‘도깨비놀음’하는 장면을 예로 든다. 제주도에서 ‘영감놀이’라고도 불리는 이 굿 놀이는 빙의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일종의 연극을 해 빙의한 존재를 속이는 형식이다. 양 관장은 부적, 시루떡을 재료로 하는 전통 굿 놀이가 최첨단 기술을 대표하는 대학병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대와 전통의 융합”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처럼 ‘파묘’는 현재 우리 삶에서 밀려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곳곳에 스며든 전통 민속을 조명해 계승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양 관장의 말을 빌리면 ‘파묘’는 “국내 새롭게 들어온 짧은 역사의 외국 문화를 빼내는 행위”이자 “한국 민속의 얼을 파묘해 끌어올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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