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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그리고 아빠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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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빠가 너 태어났다고 기뻐서 달려오다가 다리까지 삐끗했지 뭐야. 너 태어난 날 병원에 깁스하고 나타났어.” 엄마에게서 듣는 아빠와 관련한 이야기는 새롭기만 하다. 그렇다. 필자의 아빠는 소문난 ‘딸바보’다.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맞았던 눈 오는 겨울날이다. 눈이
상록탑
민소영 대학취재부 부장
2015.05.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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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6호 만평
1032
화연툰
김화영 기자
2015.05.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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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서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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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라는 나라를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와플, 초코렛, 맥주만 떠올린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작은 나라 벨기에는 유럽스러운 분위기가 확 나는 나라이다. 선배의 추천을 듣고 벨기에로 교환학생 파견을 신청했지만 너무나 생소한 나라여서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이 주로 가지 않는 벨기에에서의 교환 학생 삶은 너무나도 여유 넘치고 만족스럽다.
여론광장
문미경(국제·13)
2015.05.1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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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족, 코쿤족, 글루미 제너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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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구성원의 개인적 성향이 심화되어 나홀로족, 코쿤족 또는 글루미 제너레이션 등, 개인화된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는 신조어들을 언론매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양상은 어느 한 특정 지역이나 나라에서만 두드러져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문화적 트랜드를 형성했다. 심지어 1인용 전자제품, 1인 단독 주거 형태의 증가를 초래
교수칼럼
김태희 교수(물리학과)
2015.05.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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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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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평생의 숙제, 다이어트.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해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1일 1식, 원푸드, 등산 등등 안 해본 방법이 없을 정도로 다이어트 하는 ‘방법’에는 일가견이 있다. 정작 한 번도 성공해 본적이 없는 나는 언제나 남산만한 나의 배를 친구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엄마로부터 다이어트에
여론광장
최윤영(사회·13)
2015.05.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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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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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대학보사입니다. 5월4일자 발행된 1495호에 실린 상록탑(칼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에 대해 많은 분이 목소리를 내주신 것으로 압니다. 하루 새 이대학보를 향해 쏟아진 많은 의견을 들으며, 활자의 무게와 신문의 파급력을 통감했습니다. 논란
상록탑
박진아(사회·문화부 부장)
2015.05.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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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에 속단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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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종종 과거에 상상도 못한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는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내 자신과 비교해보며 신기해하곤 한다. 어릴 적 나는 내 자신이 의심할 여지없이 이공계열에 진학하고 관련 직업을 가질 것이라 굳게 믿었다. 또한 인문이나 사회 계열은 지루하며 내가 그쪽으로 관심을 갖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현재의 나는 그 당시의 예상과 매우 달라졌다. 나는 생물학, 광고학, 언론학, 범죄학에 큰 흥미를 보이다가 요즘 교직 수업을 들으며 교육학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렇게 다방면을 거쳐 오면서 드는 생각은 ‘저건 나와 전혀 맞지 않을 거야’라고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함부로 미래를 속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쏟고 있지만 미래의 나는 어떤 흥미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난 미래엔 흥미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을 다시 선택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약 49.0%가 그렇다고 했고 그 이유로 ‘관심과 흥미의 변화’를 꼽았다 또 경험을 통해서 숨겨진 자신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가끔 한 분야만을 바라보고 그 분야의 전문가만을 꿈꾸던 사람 중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낯설어 하며 그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낯설어하며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변화를 당당히 인정하고 바뀐 내 자신을 북돋아줘야 한다. 우리는 ‘직접 어떤지 겪어보자’ 하는 도전정신과 내 숨은 면모가 발휘될 수도 있다는 자신의 잠재성을 믿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론광장
원동심(사교·14)
2015.05.0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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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종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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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들이 말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남성에게 순종적이며 내외를 하는 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전기 세종대에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는 취지에서 내외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의 논리에 의해, 여성은 사방이 뚫려있는 가마인 평교자를 이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대부분 조선 여성들이 이러한 법에 고분고분하게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집밖으로 놀러 나가기 위해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던 평교자가 금지되자 말을 타기 시작했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려나 조선 전기의 여성과 다른, 흔히 상상하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인 것은 맞다. 열녀의 사례들로만 봐도 얼마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순종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의 기록의 이면을 간과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열녀는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사에 대한 논의를 통해 열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마냥 열녀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갈등 없이 한 몸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남편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쉽게 조선시대부터 여성들이 순종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여권이 많이 하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때도 여성들은 남성의 부속물이 아닌 주체로서 갈등하는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회적 압박은 조선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다. 최근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비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위 높은 농담에 각종 방송의 하차설까지 나돌았지만, 장동민을 옹호하며 비슷한 농담을 서슴지 않는 남성들의 댓글 등을 통해서 그러한 여성비하적인 사고를 장동민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의 권위주의적 시각과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문화가 여전히 팽배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뉴스도 있었다.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여성만이 가사와 육아를 맡아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도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그 수준은 미미하지만,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사회에서부터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는 사회로의 변화는 여성들의 저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스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여자가 취업과 직장 생활 등 사회 전체에서 불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여자인 것도 꽤 괜찮다. 멋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한국여성사 수업을 듣고 쓰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모두가 쉽게 순종적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 여성들도 말을 탔다는 것을 함께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남성위주의 사고와 갈등이 생겨도 여성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더 먼 미래에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노력으로 여권이 다시 회복됐다고 기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론광장
노지현(광고홍보·12)
2015.05.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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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호 만평
936
화연툰
윤다솜 만평기자
2015.05.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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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 for Nepal
867
진도 7.9. 반경 수백 킬로미터에 ‘심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강진이 네팔을 뒤흔들었다.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었다. 사망자 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네팔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일 오전9시 기준 사망자 수는 약 6100명이다. 본지는 네팔에서 우리나라로 와 본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을 만나 현지인의 입을 통해 현지 상황에 대해 들었다. 남의 얘기로만 느껴졌던 현지의 상황을 실제로 들으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광장도 힘없이 무너졌다. 구호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네팔을 향해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시작한 네팔 구호 성금 모금은 이틀 만에 1000만 달러(한화 약 107억 원)를 돌파했다. 유니세프(UNICEF),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등 세계적인 구호단체에서도 모금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이러한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다. 2011년 일본에서 발생했던 강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당시 본교 내에서도 활발한 모금활동이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관심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네팔에도 우리 교민이 있으며, 네팔로 수학여행을 떠난 우리나라의 어린 학생들도 있다. 히말라야로 등반을 떠났던 우리나라 대표 산악인인 김홍빈 대장도 지진으로 인해 눈사태를 겪고 고립됐다가 4월30일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 등반을 했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봐주길 바란다. 당장 본교 안에만 해도 네팔 학생이 있다. 작은 관심에도 감동하며 이화인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이가 있다. 본지와 인터뷰를 한 네팔 출신 유학생 프라단 에라(경제·13)씨는 모금 활동에 도움을 주겠다는 본지의 연락을 받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 때 대외활동이나 팀플을 함께 했던 학생들에게도 위로와 추모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작은 관심, 10원의 적은 돈이라도 건네준다면 네팔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시대다. 네팔은 멀지 않다. 네팔의 상황에 조금 더 귀 기울이는 이화인이 되기를 바란다. Pray for Nepal.
사설(종료)
이대학보
2015.05.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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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표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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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버이날이다. 원래 어머니날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럴 수는 없다는 듯이 아버지도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관계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이를 가지면 어머니는 몸으로 이를 알기에 모자관계는 명백한 관계다. 그러나 아버지가 한 다리 건너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식으로 인지해야 부자관계가 성립된다. 미혼모는 아이 아버지가 없어도 어머니로 인정된다. 반면 미혼부가 아버지로 인정받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가족관계등록법에서도 혼외자의 출생신고자를 어머니로 제한하고 있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탯줄로 이어진 매개가 없는 관계이다.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자라서 생모를 찾으러 한국으로 돌아온 사례는 많이 접할 수 있다. 비록 한 때 자기를 어떤 이유로 버렸건 간에 어머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반면에 ‘생부’를 찾겠다고 돌아온 입양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인지를 매개로 한다. 아버지가 자식을 인지하여 호적에 올리고 성을 물려주면 부자관계가 성립된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누구라도 성을 물려주면 아버지가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만 자식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는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다. 자식에게도 자기 마음에 드는 족보를 꾸밀 권리가 있다. 족보를 만드는 것은 자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서 ‘내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자식인가?’는 자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들을 관찰하여 이들이 자기 생애를 고쳐 쓰려고 온갖 이야기를 꾸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중에 이 이론을 원용하여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원이라고까지 말한 사람도 있다. 실제 가정에서는 어머니보다 존재감이 미미한 아버지이지만 소설이나 연극, 영화에서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다루는 작품이 훨씬 많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자식에게 명백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식들이 아버지와 관계설정하기가 힘들고, 훨씬 더 갈등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설이나 연극, 영화에서 아버지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드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에게 선험적 존재인 아버지는 과거 가치와 권위의 상징일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아버지는 자식의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이럴 때 오이디푸스적 도식에서 친부살해의 테마가 나올 수도 있고, 과거와 단절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버지를 아예 내러티브에서 지워버리고 자수성가한 인물이나 고아를 주인공을 내세울 수도 있다. 신분제 사회는 사라졌지만,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아버지의 재력이 또 다른 신분제의 근간이 되었다. 그래서 “아부지 뭐 하시노”란 말은, 자식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현대판 숙명을 상기시킨다.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될 경우, 아버지는 자식에게 억압기제로 인식될 수도 있고, 반대로 무능한 아버지의 경우에는 자식의 앞날을 막는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될 수도 있다. 어머니 손맛은 비교가 불가능한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것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반면 아버지가 준 세뱃돈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장 그날로 비교의 대상이 된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바람직한 아버지에 대한 표상이 있게 마련인데, 자식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이와 비교하여 실망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유산만 남겨주는 것이 아니라 빚도 물려 줄 수 있다. 아버지의 빚을 떠안게 된 자식들은 상속을 거부할 수 있다. 혈연이라는 피의 논리로 아버지와 자식을 숙명적 관계로 묶어 놓던 거대 담론이 사라진 오늘날, 아버지는 더 이상 자식에게 선험적 존재가 아니다.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버지들이 자식 앞에서 생쇼를 해야 하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자식에게 아버지로 인정받지 못하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담론을 만든다. 그래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혈연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담론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교수칼럼
김도훈 교수(불어불문학과)
2015.05.0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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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이 살아 숨쉬는 LIVE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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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ON-AIR에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은 단 4시간 남짓. 거의 모든 방송을 생방송으로 진행하기에 매 순간이 전쟁터인 공간. 1분 1초에 울고 웃는 사람들. 이것은 모두 홈쇼핑 방송을 만드는 홈쇼핑 PD들이 일하는 현장의 이야기이다. 홈쇼핑 방송에도 PD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 시절의 나 역시 채널을 돌리다가 스치듯 홈쇼핑 방송을 접했던 적은 많았지만, 홈쇼핑 방송을 만드는 PD의 존재를 인지해본 적은 없었다. 일반 방송사의 PD와 달리 홈쇼핑 PD는 프로그램 상에서 그 존재가 크게 부각되진 않
이화:연(緣)
이도은(언론·15년 졸)
2015.05.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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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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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셜포비아’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SNS를 통해 만들어진 소셜 네트워크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본 후 필자가 느낀 감정은 ‘오싹함’이었다. 범람하는 SNS의 홍수 속에서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이용했던 SNS가 만들어낸 잔혹사를 보며 결심한 것은 SNS 계정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SNS 속에 있는 ‘나’를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체 구조 상 평생 스스로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카메라, 거울 등을 통해 보이는 모습을 조합해가며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SNS도 마찬가지다. SNS 속 ‘친구’, 혹은 ‘팔로워’(follower)들이 SNS 속 ‘나’를 보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제3자가 되어 본다. SNS의 친구 혹은 팔로워의 수, 자신이 올린 글의 ‘좋아요’ 수와 리트윗(retweet, 인용) 횟수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SNS는 일종의 ‘거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거울을 통해 보고 싶은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기를 바라며 조금씩 더하고, 많은 부분을 덜어낸다. 필자 역시 그런 SNS 속에 만들어진 ‘나’를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거울 아래 쓰인 이런 문구를 발견한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거울은 실제를 왜곡한다. 옷 가게의 거울이 우리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십 장을 찍어 건진 한 장의 ‘셀카’ 사진이 우리의 실제 모습은 아니다. 거울은 좌우 반전된, 혹은 보정되고 왜곡된 모습을 반영할 뿐이다. SNS를 통해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결코 진짜 ‘나’가 아닌 것처럼. 우리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나’를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SNS 속 ‘나’와 내면의 진짜 ‘나’의 괴리에 점점 더 좌절하게 될 뿐이다.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어쩌면 영화 ‘소셜포비아’를 보고 느꼈던 오싹함은 영화를 통해 그 괴리를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것 그대로의 나를 보는 방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누군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SNS 속에서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외면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볼 수 있지만, 그 내면은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볼 수 없다. 꾸미고 다듬어진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는 거칠지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쉽게 겁을 낸다. 그렇지만 그것을 들여다 볼 준비가 됐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제1자’다.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나의 외면을 파악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내면의 스스로를 보는 것을 겁낼 필요도 없다. 필자는 다시 ‘계정 삭제’ 버튼을 누르기 위해 조금씩 SNS 속 ‘나’를 놓아주고자 한다.
상록탑
양한주(편집국장)
2015.04.0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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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식사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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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온 후 가장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는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컵라면으로 대충 배를 채우기 일쑤다. 항상 먹는 똑같은 음식에 질려 하루 종일 굶다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서야 뭔가를 먹기도 한다. 내 친구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로의 형편없는 식생활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편 안부를 물을 적 가장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밥은 잘 먹고 다니니?’가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고 있던 나에게 제대로 된 음식에 대한 욕구를 돌려준 건 바로 ‘쿡방(요리 방송)’이었다.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 등 요리 과정을 중심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음식은 툭 튀어나온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자연과 인간을 이어 주는 매개체이며, 때로는 먹는 사람의 습관과 감정을 드러내는 창과도 같다. 좋은 음식은 행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데, 우리가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을 정의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나에게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말해주겠다.’ 19세기 미식가인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랑(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의 이 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또 자신을 얼마나 보살피고 있는지 그 여부가 한 끼 식사에 고스란히 보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난 지금, 모두가 하루를 즐겁게 해 줄 점심을 먹기 바란다.
여론광장
김선우(불문·14)
2015.04.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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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활동인가 봉사활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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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활동', '마케팅 실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대외 활동 모집 요강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구다. 뿐만 아니다. 입사지원시 우대, 소정의 활동비 지원, 실무진과 접할 수 있는 기회. 취업난과 스펙 과열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현혹하는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라면 스펙과 어학 점수를 채우느라 바쁜 대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작은 탐색이자 한 줄의 경력으로써 참여하기에 적합한 활동으로 보이는 문구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에야 알았다. 모집 요강과 현실은 달랐다. 생각보다 많은 대학생들이 대외 활동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토록 공들인 자기소개서로 선발된들, 만족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의 입장은 어떤지 모르나, 대외 활동을 직접 경험하는 학생들의 시각에서 소정의 활동비로 많은 활동을 요구하는 기업의 대외 활동 모집은 '보수 없이 쓸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 구인'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소정의 활동비는 주어진다. 문제는 정말 소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활동비가 지급되는 대외 활동은 팀 단위로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팀 미션 수행을 위한 단 한 번의 모임으로 활동비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최소한 팀활동을 위한 회의를 한 번 하는데 에도 장소가 필요한데 가장 만만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진행 될 경우, 인원 수 대로 음료만 주문해도 드는 돈은 만만치 않다. 여기에 밥 한 끼 먹게 되면, 그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소정의 활동비는 정말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최저 수준의 비용이다. 물질적 보상 대신 좋은 경험은 얻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특정 분야를 체험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초반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대외 활동은 SNS에 기업을 홍보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 주 업무이다. 대외 활동 지원서에 블로그 일 방문 자수, SNS 팔로워의 수를 적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이 전달하는 이슈 사항을 개인 SNS에 올리는 것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업계 체험인지 모르겠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현직자의 특강 일정을 짧게나마 넣는 곳들은 그나마 양반으로 보인다. 이제는 정말 금융권 체험, 마케팅 실전 체험을 바라는 지원자들도 없다.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는 빠삭해 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학생들이 원하는 직무에 대한 이해인가. 물론 모든 기업의 대외 활동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고 내 친구들이 경험한 많은 활동들이 그랬다. 단 몇 건의 사례가 있더라도 문제가 된다면 개선되어야만 한다. 특히 취업 시장의 영원한 을이라는 대학생과 그에 비해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기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는 기업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선하지 않으면 끝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SNS에 홍보성 게시물을 올려 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면, 저런 달콤한 문구는 쓰지 않길 바란다. 인턴사원만큼의 일을 시킬 거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길 바란다. 실제로 한 친구가 했던 대외활동은 거의 인턴사원 수준의 업무였다. 외국어 특기자로 선발되어 밤낮없이 번역일을 하고, 기업과 전혀 관련 없는 노가다성 활동을 했다. 활동비를 못 받아도, 차라리 업계에 대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는 일이었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했다. 친구는 자신의 어학능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이러니 무보수 아르바이트생 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 없다. 우리는 취업을 위해 인턴십을, 인턴십을 위해 대외활동부터 시작한다. 다음 단계를 위한 수단으로써, 부당하다고 외치면서도 닥치는 대로 대외활동을 하는 우리가 문제인 것일까. 이런 점을 잘 이용하는 기업이 문제인 것일까. 문제가 누구에게 있든, ‘을’은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 기업이 스스로 이 문화를 고쳐 주기를 바란다.
여론광장
박소영(광고홍보·13)
2015.04.0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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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4호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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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툰
윤다솜 만평기자
2015.04.0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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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 안전의식, 롱런(Long Run) 가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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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년, 이제는 안전이화’ 기획이 1494호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본지는 지난 4주간 본교의 안전 교육 실태, 실험실 및 실습실 안전 상태, 비상구 실태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했다. 이번 호에서는 교내·외 안전 전문가 5명과 함께 학내 안전 문제 개선 방안, 안전 문제와 관련한 대학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 4주간 본지가 살펴본 이화의 안전 의식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조형예술대학(조예대) 실습실에는 인화성 가스통이 아무런 주의 사항도 없이 놓여 있었고, 실험실의 화학제품은 명확한 표시도 없이 보관돼있었다. 몇몇 건물의 비상구 또한 의자, 책상 등으로 가로막혀 비상 시 대피가 불가능했다. 위기 상황 발생 시 생명의 문으로 기능해야 할 비상구가 학생들의 짐 보관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본교 구성원들 또한 안전 교육을 단순한 ‘선택’의 문제로 바라봤다. 작년 4월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다. 안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매일 걷는 정문 앞에서도, 수업을 듣는 강의실 안에서도, 2호선 지하철에서도 안전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설마하지 말고 내 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긍정적 의미의 ‘설레발’을 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지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안전 전문가들은 대학 안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안전 수칙 여럿을 제안했다. 수업 중 가상 대피 훈련을 진행하거나, 수업 시작 전 학생들이 교수를 통해 안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고, 학내 언론에 사고 사례를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경각심을 갖게 하는 등의 방법이다. 한 전문가는 조예대 실습실에서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이 매우 일상적인 행동 또한 안전 수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잘못된 생활 안전 상식을 바로잡을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안전 수칙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전제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이화 구성원의 동의다. 교내 기관이 주도해 안전 교육 횟수를 늘리고, 안전 수칙 생활화를 장려하는 등의 일방향적인 방법으로는 안전 이화를 만들 수 없다. 학생, 교직원, 교수 등 이화의 구성원 모두가 안전 의식을 생활화할 때 비로소 쌍방향적 소통이 가능하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가슴 아픈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화의 안전의식이 롱런(Long run) 가능하길 바란다.
사설(종료)
이대학보
2015.04.0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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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 꿈 깨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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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사의 “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캠페인에 귀를 기울입니다. 사람들의 감사한 마음은 오래 가지 않고, 금방 습관화되어 무감각해지는 냄새 같은 것 아닐까요? 은혜는 물에 새긴다 하지 않습니까? 매월 5만원씩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합시다. 돈을 받는 사람이 얼마 동안이나 그걸 당연시하지 않고 고마워할까요? 사람은 감사할 일이 계속되어야만 감사한 마음이 계속 유지되고, 또 감사할 일의 형태가 자꾸 바뀌어야만 습관화되지 않습니다. 배려와 선행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선행을 하지 않았다고 누구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려 없음은 간혹 비난 받기도 하고 범죄로 간주될 때도 있습니다. 미국 사막 지역의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모른 체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가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배려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하고 내 처지에서 생각할 때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나의 행위를 말합니다. 적극적인 친절과 비슷하지요. 배려는 돈이 전혀 들지 않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뛰어 오는 발소리를 듣고 잠시 기다렸다 함께 올라가는 것, 문을 열고 들어 가다가 뒤따라오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 잠시 문을 열고 기다려 주는 것, 주차장에서 혼자 차를 밀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 감기에 걸렸을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할 때 전염을 염려해 조심하는 것, 길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여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 운전 할 때 다른 차량의 통행로를 생각하며 운전하는 것, 다른 사람의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그 사람 입장에서 나라면 어찌 행동했을 지를 생각해 보는 것 등, 배려의 상황은 우리 생활 속에 널려있습니다. 사회 통합이 우리 사회의 화두이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에게 화가 나서 분이 가득한데 화해가 될까요? 갑은 적고 을은 많으니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갑의 선행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실천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데, 사람들이 선행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까요? 갑이 인색해서일까요? 잠시 조사해 보면, 우리 사회에는 스스로 갑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거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갑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갑의 도리를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스로 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갑의 도리를 들려주면 은근히 화만 나지 않을까요? 반면에 을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갑의 도리를 듣게 되면 그 역시 갑에 대해 화가 날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사회에서 갑의 도리를 외치는 것은 오히려 갑을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 되는 아이러니가 만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이상한 것이어서 사회문제 해결 노력 중에 이런 이상한 아이러니가 자주 발생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는 갑과 을이 서로에게 화가 나있고 미워하는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미운 사람에게 누가 선행을 베풀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셨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반면에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웬만하면 선행을 베풀겠지요. 먼저 사회 통합의 여건이 필요합니다. 사회통합을 위해 좋은 뜻으로 한 말이 오히려 분란과 미움, 갈등을 부추긴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외침보다는 생활 속 습관처럼 베풀어지는 작은 배려들이 답이라고 봅니다. 갑과 을 모두의 몸에 밴 배려와 친절로 인해 상호 간의 모든 미움과 분노가 사라진 후라야 서로가 상대방이 마음에 들 것이고 그 후라야 서로 선행을 베풀고 사라진 갑들이 돌아와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차! 저와 생각이 다른 어떤 분은 이 글을 읽고 내심 화가 나실 수도 있겠네요. 그 분께 여쭈어 봅니다. 그러면 사회 통합은 포기해야 하나요? 이 상태 이대로 얼마나 더 갑의 도리를 반복하여 얘기하면 사라진 갑이 돌아올까요? 사회통합 없어도 증세로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현재 상태 그대로라면 증세는 탈세로 이어지고 결국 을에게만 증세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은 사랑만이 답이 아닐까요? 꿈 깨라고요?
교수칼럼
이영하 교수(수학교육과)
2015.04.0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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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학생활의 최고의 순간
2020
“불문학을 공부하면서 왜 미국으로 교환학생 왔어?” 학기 초에 자기소개를 할 때 학우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글쎄. 프랑스에서 살다 와서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많이 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어민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며 끙끙대기 보다는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과 함께 나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여유롭게 듣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 열심히 놀다 오겠다는 꿈을 안고 교환학생을 떠났고, 지금 나의 대학생활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이곳에서 잘 생활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텅 빈 기숙사를 보며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막막했고, 밥을 잘 해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두려웠다.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프랑스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쉽지만, 이곳의 모든 프랑스어 수업들은 원어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보다 몇 배가 되는 양의 과제를 해야 했다. 매주 프랑스어로 작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허했던 아파트는 나의 따뜻한 집이 되었고, 룸메이트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밥다운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특별한 요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에도 적응하게 되면서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과제들을 차근차근 처리하는 법도 알았다. 여유가 생기면서 취미 생활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보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문화 공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학생 할인과 학교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많기 때문에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전시회와 오페라를 원 없이 보러 다닌다. 여행도 많이 다닌다. 지난달에는 봄 방학을 이용해 미국 동부를 크게 돌았고,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뉴욕은 주말마다 가서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이처럼 나는 미국에서 내 바람대로 매일을 신나게 보내고 있다.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다니고, 파티도 가고, 서로의 아파트에 놀러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행복한 일상이라 꿈만 같고, 현실과 단절 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나의 대학생활의 최고의 순간이라 믿으며, 다른 학생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로벌 이화
정다인(불문·13)
2015.04.0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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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자 중요한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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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고 싶은데,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는 것은 어때?” 최근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 한 수험생 동생이 어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에게 한 질문이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전공과목을 독일에서 석, 박사로 이수하는 것이 미래에 훨씬 유리할 것이라며,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독일어를 미리 익혀두겠다는 생각이었다. 즉, 독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독어독문학 전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것이다. 필자는 동생에게 단순히 독일어를 구사하려는 이유만으로 주전공으로 공부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어문학을 배우려면 그 나라의 언어가 기반으로 갖춰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넘어 언어학이나 문학을 더 많이 공부하는 학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생의 질문을 듣고 난 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지난 2월 전국 대학생 대표자 10여명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취업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취업에서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고 해 인문학의 위기라며 논란이 일었었다. 다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인문학은 단순히 자기계발, 기본 소양으로 갖추기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 인문학의 위기를 악화시키는 한 개인의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취업을 위한, 몇몇 개인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후에 취업을 하기 위해 언어 구사력을 높이려고 어문학을 전공하는 것도 ‘취업에서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이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도 고등학교 때 불어를 공부했다는 것과, 국제기구의 국제회의 공식언어 중 하나인 불어를 계속 공부하면 사용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불어불문학과에 지원, 입학했다. 그리고 불어불문학 전공 학생으로서 원문을 읽기 위해 불어공부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불어를 배우는 것과 불어불문학을 배우는 것은 매우 다름을 느끼고 있다. 불어불문학에 대해 모든 것을 깨닫고 공부한 학생은 아직은 아니지만 단순히 책을 읽고, 외국인과 말하기 위해서 하는 불어를 배우는 것과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를 해서 이런 말을 하게 되고 글을 쓰게 되는 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그 깊이가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구조 조정을 보면 인문학이 많이 감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에 반해 인문학 관련된 책은 우후죽순으로 발간되고, 다양한 인문학 강의도 넘쳐나고 있다. 모순되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인문학 전공과정은 사라지고 있고, 단기간에 인문학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들만 많아진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해 배워나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공계열 학문이나 경영, 경제학 등에 비하면 당장의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활용하고 사람 사이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나가는 인문학이 알아야할 기본 내용이자 가장 중요한 학문이 아닐까.
상록탑
김가연(사진부 부장)
2015.03.29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