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만연한 남성위주의 사고에 여성들 좌절하지 않길

  조선의 여성들이 말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남성에게 순종적이며 내외를 하는 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전기 세종대에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는 취지에서 내외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의 논리에 의해, 여성은 사방이 뚫려있는 가마인 평교자를 이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대부분 조선 여성들이 이러한 법에 고분고분하게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집밖으로 놀러 나가기 위해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던 평교자가 금지되자 말을 타기 시작했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려나 조선 전기의 여성과 다른, 흔히 상상하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인 것은 맞다. 열녀의 사례들로만 봐도 얼마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순종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의 기록의 이면을 간과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열녀는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사에 대한 논의를 통해 열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마냥 열녀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갈등 없이 한 몸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남편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쉽게 조선시대부터 여성들이 순종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여권이 많이 하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때도 여성들은 남성의 부속물이 아닌 주체로서 갈등하는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회적 압박은 조선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다. 최근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비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위 높은 농담에 각종 방송의 하차설까지 나돌았지만, 장동민을 옹호하며 비슷한 농담을 서슴지 않는 남성들의 댓글 등을 통해서 그러한 여성비하적인 사고를 장동민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의 권위주의적 시각과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문화가 여전히 팽배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뉴스도 있었다.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여성만이 가사와 육아를 맡아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도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그 수준은 미미하지만,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사회에서부터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는 사회로의 변화는 여성들의 저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스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여자가 취업과 직장 생활 등 사회 전체에서 불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여자인 것도 꽤 괜찮다. 멋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한국여성사 수업을 듣고 쓰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모두가 쉽게 순종적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 여성들도 말을 탔다는 것을 함께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남성위주의 사고와 갈등이 생겨도 여성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더 먼 미래에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노력으로 여권이 다시 회복됐다고 기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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