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빠가 너 태어났다고 기뻐서 달려오다가 다리까지 삐끗했지 뭐야. 너 태어난 날 병원에 깁스하고 나타났어.”

  엄마에게서 듣는 아빠와 관련한 이야기는 새롭기만 하다. 그렇다. 필자의 아빠는 소문난 ‘딸바보’다.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맞았던 눈 오는 겨울날이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빠, 동생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중 아빠는 눈을 쌓고 쌓아 작지만 우리가 놀 수 있는 눈썰매장을 만들어주었다. 성인 남자 허리정도 높이의 눈썰매장은 다음날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흔들리는 유치(乳齒)를 실로 묶어 뽑아준 사람도 아빠며 내게 두발자전거를 가르쳐 준 사람 역시 아빠다. 이 외에도 아빠와의 추억은 어린 시절 기억 곳곳에 자리해있다.

  함께 TV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를 보던 중 필자의 엄마는 지나가듯 말했다. “지금 다 같이 있어서 그렇지 저렇게 아빠랑 단 둘이 있으면 너도 어색해 하겠지?” 아니라고 말했지만 한편으로 ‘실제로 아빠와 단둘이 있으면 어떨까?’란 질문이 들었다. ‘어색하지 않다’라고 하기엔 마음 한 구석이 찔렸다.

  최근 아버지와 자식 간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주목은 방송에서도 드러난다.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시작한 ‘아빠’에 관한 프로그램은 올해 방영을 시작한 ‘아빠를 부탁해’까지 이어졌다. 20대인 자식과 아버지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아빠를 부탁해’는 어딘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어 공감을 얻었다.
4월26일 방영된 ‘아빠를 부탁해’에서 방송인 이경규 씨는 이런 말을 했다. “딸이 자라는 동안이 아빠들이 제일 바쁠 때다. 사회적으로 3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그때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거다.”

  상황은 가족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빠의 사회활동이 바쁜 시기에 자식은 자라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다 요즘에는 아이들까지도 바쁘다. 아빠는 회사에서,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아빠와 자식은 공유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필자 역시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빠와의 관계가 어린 시절보다 소원해졌다. 필자는 필자대로 공부와 학원 때문에 바쁘다며 아빠와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다. 특히나 새벽에 집을 나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에야 집에 돌아오는 고등학생 때는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빠와의 소원해진 관계를 회피한 것이 사실이다. 소원해졌다는 것도 떠올리지 않았다. 가끔씩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는 내가 먼저 아빠에게 연락하고 다가가는 것이 낯간지럽게 여겨졌다. 내가 아빠와의 시간을 잊고 살 듯 아빠도 그럴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편해서였을 것이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20살 겨울, 잠시 들린 회사의 아빠 자리에서다. 필자조차도 옛날이라 기억 못하는 종이 카네이션,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만들어간 지점토 탈 등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동생과 필자가 찍힌 사진도 함께.

  필자도 아직까지 살갑게 말하거나 연락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이다. 잠깐 시간을 내어 문자 한통, 전화 한통을 드려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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