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끈기있는 예술가, 우연에 관대한 과학자를 기대하며
[해외취재] 끈기있는 예술가, 우연에 관대한 과학자를 기대하며
  • 우아현 기자
  • 승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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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A 순수예술 학과 수잔 앵커(Suzanne Anker) 학과장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의 순수예술(Fine Art) 학부 수잔 앵커(Suzanne Anker) 학과장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의 순수예술(Fine Art) 학부 수잔 앵커(Suzanne Anker) 학과장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페트리 접시, 그 안에 버섯, 꽃, 식물 등 시선을 사로잡는 형형색색의 유기물을 놓아 생명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가가 있다. 생물학의 새로운 관점을 예술에 적용해 바이오 아트를 선두하는 SAIC 순수미술과(Fine Arts), 수잔 앵커(Suzanne Anker) 교수를 만났다. 

수잔 교수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각예술가다. 2005년부터 현대미술의 중심 뉴욕에서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순수미술과(Fine Art) 학과장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과학을 이용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는 미소 지으며 찬찬히 입을 열었다.

“언제나 과학과 예술 두 분야에 큰 관심이 있었어요. 서로 다른 두 영역이 제겐 모두 신비로웠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둘을 융합하기로 했습니다.”

수잔 교수는 과학과 미술 사이의 교집합을 ‘경이’ 라 부른다. 그는 이런 발상을 작업으로 옮겼다. 페트리 접시 작업 이전에도 디지털 조각, 설치물, LED조명으로 키운 식물을 활용했다. 각각의 작품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생태계 블루스 : 흐트러진 지구를 수선하기(2017)’라는 그의 개인전 제목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수잔 교수에게 과학과 예술의 협업에 대해 설명을 부탁하니 두 분야 융합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두 분야의 융합은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인상주의 화가들이 과학을 이용한 예시를 들어볼까요? 그들이 살던 19세기에는 빛에 관한 이론이 발달했어요. 화가들은 빛의 인식과 보색 이론 등을 이용한 작업을 했죠. 사실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유전자를 꼴라주(collage)처럼 지우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갖게 됐고, 예술가가 ‘유전자’를 작업 매체로 활용하는 것뿐이죠.”

중세 시대, 하나의 ‘믿음’ 이었던 과학이 ‘기술’에 포함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다. 또한 그에 따르면 미술은 항상 당대 최신의 기술을 이용해왔다. 그렇다면 과학자와 예술가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수잔 교수는 두 가지 예시를 소개했다.

“평소 연구소를 잘 치우지 않던 스코틀랜드의 생명공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실험실을 더럽힌 상태로 일주일간 휴가를 떠났어요.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실험도구에는 이미 여러 종류의 곰팡이가 잔뜩 자라고 있었죠. 그 안에서 그는 한 페트리 접시에 피어있는 곰팡이 주변의 미생물들이 죽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놀라운 우연이 오늘날까지 항생제로 널리 쓰이는 페니실린의 시초입니다.”

수잔 교수는 이를 과학자들이 예술가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봤다.

“그 발견은 계획 아래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연히’ 일어난 어떤 일에서 플레밍이 직관적으로 특별한 발견을 해낸 것이죠. 이렇듯 새로운 지식은 가끔 전혀 예상치 못한 일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 이는 예술가들이 잘 하는 일이죠.”

그는 이어 복제 양 돌리 사례를 소개하며 반대로 과학자들에게 배워야 할 덕목을 이야기했다. 복제 양 돌리는 400회의 시도 끝에 탄생했다. 수잔 교수는 연이은 실패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한 과학자들의 끈기를 실험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예술가들은 과학자들의 끈기를 배워야 합니다. 실패 앞에서 쉽게 포기하는 자세는 좋지 않아요. 저희 바이오 랩에서는 학생들에게 기술적인 교육 외에도 끈기를 가르칩니다.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도록 독려하죠.”

끈기 외에 그가 꼽는 덕목은 ‘박학다식’이다. 수잔 교수는 학교 교육 이념에 대해 소개하며 예술가들이 또한 과학, 사회, 정치, 미학, 철학 등 분야를 망라하고 사회 다양한 현상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가는 과학, 미학, 정치, 사회등 현재의 이슈들을 알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이야기해야 해요. 단순히 손재주가 좋은 예술가를 길러내는 것을 넘어 사회를 볼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처럼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똑똑한 예술가를 길러내는 것, 그것이 제 교육 목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