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박물관을 거닐며 세계사를 배우다
[해외취재] 박물관을 거닐며 세계사를 배우다
  • 런던=배세정 기자
  • 승인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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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이번 여름방학에 건반악기과, 북한학과, 약학과 등 15개 팀이 교수인솔 해외파견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2008년부터 시작된 교수인솔 해외파견 프로그램은 전공 교수가 방학동안 학생들을 인솔해 해외에서 전공 지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돕는 해외 심화학습 프로그램이다. 계절학기 교과목 개설이나 해외 학점이전 형식으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매해 방학기간 운영된다. 본 기자는 이종경 교수(사회과교육과)가 인솔하는 ‘박물관과 세계사교육’에 직접 참여해봤다. 사회과교육과 역사전공 학생 8명과 조교 1명, 교수 1명은 7월10일에서 24일까지 영국 런던에 있는 8개의 박물관을 탐방했다. 대영박물관은 3회, V&A 박물관은 2회, 영국 도서관, 그리니치 천문대, 해양박물관, 런던박물관, 내셔널갤러리, 테이트 모던은 각각 한 번씩 방문했다. 학생들은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중세 유럽, 중국,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등 8개 주제 중 하나와 박물관 하나를 골라 사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께 자신의 주제를 설명했고, 교수님의 추가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는 각자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출발 준비(2018학년도 1학기~영국 출발 전)

방학에 교수님과 함께 외국으로 가 공부할 수 있는 ‘박물관과 세계사교육’. 이미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동기의 추천 덕에 졸업 전에 꼭 참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전공 교수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지원서를 쓰고 프로그램에 최종 선발돼 비행기 표를 예매했을 땐 설렘만이 가득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찾아왔다. 이제 좀 쉬나 했더니, 계절학기 사전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 준비는 영국의 박물관 대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었고, 6월25일과 7월2일에 진행됐다. 각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는 투어를 듣고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께 더 알기 쉽게 설명했다. 들은 내용을 내가 이해해야만 설명할 수 있기에 무작정 책을 보고 외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저녁엔 집으로 돌아와 투어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발표 자료를 제작했다.

예행연습을 거치니 감이 잡혔지만 투어를 영어로 듣는 건 걱정이었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과연 학술적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내가 맡은 주제는 중앙아메리카였는데, 미리 관련 투어를 찾아보고 유의 깊게 볼 유물도 조사했다. 중앙아메리카는 잘 모르기 사람이 많기 때문에 유물을 바탕으로 중앙아메리카의 특징을 소개할 예정이었다. 사전 조사를 마치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섰을 땐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현지 기준 7월10일 오후7시 경 도착한 영국의 날씨는 선선하면서 푸르렀다. 한국은 비가 오고 있다는데, 이곳은 20도를 밑도는 쾌적한 날씨였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유럽풍의 건물과 이층 버스, 휘날리는 영국 국기가 ‘여긴 영국이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12시간의 비행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숙소는 작지만 깔끔했다. 앞으로 2주 동안 머물 숙소를 잠깐 눈에 담았다. 너무 피곤했기에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다음 날 일정을 위해 현지 시각 오후10시에 잠이 들었다.

박물관 탐방

- 대영박물관

대영박물관 방문 마지막 날, 교수님이 준비한 특강을 들었다. 대영박물관 한국실 큐레이터로 일하시는 엘레노이 현(Eleanor Hyun)씨의 특강이었다. 우리는 현씨를 따라 한국실로 이동했다. 한글로 ‘한국실’이라고 적혀있는 한국실은 대영박물관에서 꽤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었다.

한국실 입구엔 태극기가 크게 걸려있었다. 그 옆엔 상대적으로 작게 서울 1988 올림픽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국관은 2000년 만들어졌어요. 도서관 이전 후 그 자리에 만든 거예요. 해마다 테마가 바뀌는데, 제가 오고 나서는 설날과 추석, 여성 등을 테마로 했었죠. 지금은 평창올림픽 테마로 전시돼있습니다.” 현씨가 설명했다.

왼편에는 사랑방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현씨에 따르면 이 방은 ‘큐레이터와의 대화’ 때만 가끔 들어갈 수 있는데,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방 한 채를 그대로 갖다 놓은 이 한옥은 충분히 외국인의 관심을 끌 만했다.

비록 중국관이나 일본관(당시 공사 중이라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유럽에서 일본풍 미술이 꽤 유명하다)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영국의 세계적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유물을 보는 건 굉장히 반가웠다. 또한 현직 대영박물관 큐레이터의 특강을 통해 단순히 유물에 대한 설명이 아닌 한국실이 어떻게 구성돼있고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어서 뜻깊었다.

대영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인 만큼 어마어마했다. 런던 오기 전 조사했던 100대 유물을 실제로 볼 수 있고, 연관된 다른 유물도 볼 수 있어 좋았다. 박물관 카페에 파는 케이크들은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황수경(사교·17)

 

- Victoria&Albert Museum (V&A)
거대한 다비드상, 아테네 학당 등 유명 작품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중요한 물건을 모아놓는 창고 같기도 한 이곳은 ‘서양 모조품 방(The Weston Cast Court)’이다. 이 방의 작품들은 모두 진짜가 아닌 가짜다. 가짜를 왜 한곳에 모아놨을까?

“이 다비드상은 골리앗을 물리치기 직전 긴장하면서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죠. 진품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Accademia Gallery)에 있어요. 다른 박물관은 보통 가짜면 다 파기해버리지만 V&A 박물관은 놔두고 있어요. 전시할 게 없어서일까요? 그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해서 이를 통해 교육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은 진품을 보러 다닐 수 없으니까요.” 교수님이 말했다.

이는 V&A 박물관의 목표인 교육, 영감, 접근성과도 맞닿아있다. 장식 박물관, 공예 백화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박물관은 영국박물관과는 확실히 달랐다. 더 예술적인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V&A를 방문한 사람 중엔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작품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었다.

 

- 내셔널 갤러리

‘가바의 성모(The Garvagh Madonna)’ (1509-1510)
‘가바의 성모(The Garvagh Madonna)’ (1509-1510)

양혜숙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의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양씨는 우리를 인솔하며 그림을 설명해줬다. 책에서만 봤던 고흐, 라파엘로, 모네, 터너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교수님이 이전에 설명했던 중세와 르네상스를 구분하는 방법도 눈으로 확인했다. 양씨는 “아기 예수가 정말 아기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다면 르네상스 작품, 부자연스럽게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면 중세 작품이에요”라고 말했다.

“중세는 메시지 전달에 중점을 두고 르네상스는 인간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라고 교수님이 부가설명을 하기도 했다.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여섯 천사(The Virgin and Child with Six Angels)’ (1310-1315)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여섯 천사(The Virgin and Child with Six Angels)’ (1310-1315)

실제로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의 ‘가바의 성모(The Garvagh Madonna)’(1509~1510)에서 예수는 성모 마리아 품에 아기처럼 친밀하게 안겨 세례 요한에게서 카네이션을 가져가고 있다. 이에 반해 중세 작품 ‘성모와 아기 예수 및 여섯 천사(The Virgin and Child with Six Angels)’(1310~1315)에서 예수는 어색하게 성모 마리아 품에 안겨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어른 표정을 짓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팀원이 모두 인상 깊게 본 ‘꽃들의 정물(A Still Life of Flowers)’(1609~1610)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꽃이 매우 생생하고 세밀하게 묘사돼 있어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사실 이 작품은 실제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닌 허구 속의 그림이다. 백합, 튤립 등의 꽃들은 당시 매우 귀했고 동시에 피는 꽃이 아니기에 한 꽃병에 모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온갖 귀하고 좋은 것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이 작품의 거울을 사 부적처럼 간직할 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었다.” 한지효(사교·15)

 

대영 박물관 학생 발표

“대영박물관은 내과 의사자 수집가였던 한스 슬론(Hans Sloane)의 기증품으로 시작됐습니다. 한스 슬론은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자메이카에서 동식물 표본, 책, 그림 등을 영국에 가져왔죠. 이를 시작으로 수집한 유물이 거의 7100점에 달했고, 사후 소장품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슬론은 수집품을 국가와 조지 2세에게 기증했습니다. 유물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건 1759년부터였어요. 최초의 공공박물관이죠.” 대영박물관 발표를 맡은 내가 말했다.

대영박물관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보급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입장료가 무료다.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와서 세계적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대영박물관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무료 개방된 건 아니었다. 교수님은 “처음 사람들에게 대영박물관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관람 희망자가 워낙 많다 보니 정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보게끔 티켓을 신청받았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티켓을 신청할 때 한 번, 수령할 때 한 번, 관람할 때 한 번, 모두 세 번을 방문해야 비로소 유물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관람자 수가 많아 빨리 관람해야만 했다.

대영박물관 방문 마지막 날 우리는 각자 주제를 발표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주제는 중앙아메리카였다. 발표를 위해 대영박물관 멕시코관(27번 방) 투어와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고, 틈틈이 인터넷으로 자료도 찾아봤다.
멕시코관에 모인 우리들은 중앙아메리카의 문명들을 설명하는 지도 앞에 섰다. “중앙아메리카의 대표 문명은 올메크 문명, 마야 문명, 아스테카 문명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고무를 이용한 의례적 공놀이를 한 것, 옥수수를 중요시한 것, 왕의 권위가 높은 것, 뱀을 신성시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유물을 통해 이 특징들을 확인해볼게요.” 내가 말했다.
‘Stone ball game belt’(300~1200)는 중앙아메리카인들이 3kg 정도의 공을 엉덩이로 주고받는 놀이를 했을 때 이용된 돌 벨트다. 너무 무거워 실제로 착용하진 않고 의식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고무공을 이용한 공놀이는 단순히 놀이가 아닌 정치적, 종교적 의례였어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놀이로 승자를 가리거나, 경기에서 지면 죽이고 제물로 바치기도 했죠.”

“중앙아메리카인들의 주요 생산물은 옥수수였어요. 땅과 기후가 척박했기 때문이에요. 옥수수는 어디서나 잘 자라거든요. 얼마나 옥수수를 중요시했으면 옥수수신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마야의 옥수수 신상’(715)은 옥수수 속대와 수염을 닮은 옥수수 신이다. 대영박물관과 BBC가 선정한 100대 유물 중 하나인 만큼 문명을 잘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다.

“왕의 권위가 높았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신전의 상인방(입구 위에 수평으로 놓은 석재)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용기 있는 왕, 조상신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왕이 새겨져 있어요. 마야시대 왕족은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혀나 음경에 가시로 상처를 냈어요. 조상신에게 피를 바치는 거죠. 이런 끔찍한 고통 속에서 마야 왕이 탄생한다고 믿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위치한 5개의 상인방엔 가시 박힌 줄을 혀나 성기에 통과시키는 모습, 조상신이 나타나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마지막 특징은 뱀이었다. 아스테카 문명의 ‘머리가 두 개 달린 뱀’(15세기)도 100대 유물 중 하나로 굉장히 유명하다. “이 유물은 지배자가 대관식에서 가슴에 달고 나올 정도로 귀한 것이었어요. 귀한 터키석 2000여 개가 붙어있죠. 이 귀한 터키석을 뱀의 모양에 붙인 거예요. 이들은 아마 뱀의 허물 벗고 다시 태어나는 속성을 부러워했을 거예요.”

정신없이 발표를 끝낸 후 교수님이 발표를 잘 진행했다고 칭찬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준비된 대본이나 발표 자료 없이 마치 큐레이터처럼 유물을 설명하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일단 내가 모두 알고 있어야 발표할 수 있고 그걸 내 말로 바꿔 말하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또한 다른 학생 발표를 들을 때도 쉬운 말로 재밌게 설명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들을 때 보다 집중이 잘 됐다. 지금 누군가 대영박물관에 가서 가이드를 해달라고 하면 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발표한 뒤에 내가 준비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내가 설명할 때 사람들이 눈 마주치면서 이해한다는 신호를 보내면 거기서 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희정(사교·15)
 

영국에서의 2주는 힘들었다. 평일 내내 5시간 넘게 박물관을 걸어 다니고 주제를 교수님과 면담하며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했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내가 맡은 발표를 책임감 있게 이끌고 가려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발표엔 귀 기울이며 용기를 주려 했다. 같이 갔던 팀원들과 주변 카페나 음식점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피로를 덜기도 했다. 처음에 걱정했던 영어로 듣는 투어도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금, 영국에서의 경험을 되새기면 이번 학기는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자료조사, 발표 자료 제작, 발표 준비 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이 마치 퍼즐 조각이 흩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듯 하나하나 배우고 경험할 때마다 내 지식이 채워졌다. 방대한 박물관에서 어떻게 공부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런던에 있는 8개의 박물관을 방문하며 유물을 보는 시각이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예은(사교·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