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쓰러진 나무가 눈에 띈다.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를 지켜온 나무 ‘하바(Haava)’다. 대학 캠퍼스에 지하철 역을 세우기 위해 나무를 쓰러뜨렸지만, 그 나무줄기는 보존해 ‘하바’라고 이름 붙였다. 곤충과 새들의 보금자리인 나무줄기를 보호하며 생태계 서식지를 지키려는 것이다.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재학생 스텔라(Stella·여·20)씨는 “하바는 우리 학교의 오래된 상징”이라며 “그린캠퍼스 상징으로학생들과 함께 한다”고 말했다. 재학생 지이(Ziyi·남·24)씨 역시 하바를 가리키며 “150년 이상을 살아왔을 오래된 나무와 작은 생명체들의 공존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알토대에 들어서면 보이는 하바. 나무는 쓰러뜨렸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새와 벌레들을 위해 아직까지 나무를 보존하고 있다. <strong> 나민서 기자​
알토대에 들어서면 보이는 하바. 나무는 쓰러뜨렸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새와 벌레들을 위해 아직까지 나무를 보존하고 있다. 나민서 기자​

쓰러진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고 함께 살아가는 핀란드 알토대는 태양광, 지열을 이용해 전력 의존을 줄이며 친환경 캠퍼스 조성을 위해 노력한다. 알토대의 ‘solutions for sustainability’ 부서는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캠퍼스를 관리한다.

본교 역시 ‘이화비전 2030+’ 로드맵을 제시하며 환경보호를 강조하는 ESG 경영 추구에 다가가고자 한다. 본교는 에너지 효율화 관련 비상대책 TF(Task Force)를 구성해 단기 및 중장기적 대책을 논의했다. 이외에도, 노후화된 냉난방기를 친환경 인증 냉난방기로 교체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교는 서울 소재 대학 중 5번째로 에너지 소비량이 많다. 서울시에서 발표한 2021년도 ‘에너지 다소비 건물 현황’에 따르면, 본교는 서울에 있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 28위다. 대학 중에서는 1위인 서울대(111624.5◆TOE)와 17위 연세대(40722.7 TOE), 18위 고려대(40517.1TOE) , 25위 한양대(31116.8TOE) 다음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것이다. 본교는 27109.3TOE이다.

본교 안전팀은 “대학의 경우 건축 연면적과 에너지 사용 인원이 많아 총 사용량을 기준으로 하면 에너지 다소비량 기관에 해당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34위에 오른 건국대와 비교해 단위면적당 에너지 사용량은 본교가 더 적다. 본교의 단위면적당 에너지 사용량은 0.024TOE/㎡이며 건국대는 0.027TOE/㎡이다.

기후변화와 환경·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에서도 그린캠퍼스 조성에 관심을 갖는 추세다. 실제로, 고려대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캠퍼스 내에 운영하며 2022년에는 대학의 독자적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2011년부터 그린캠퍼스 조성사업을 시행해왔으며, 2022년까지 총 45개의 대학을 지원해왔다. 대학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의 해답을 얻고자 이대학보는 핀란드 알토대에 방문했다.
 

에너지 생산부터 친환경 교통수단까지

알토대는 태양광 전지판 시스템과 지열 난방, 대기에서 열을 흡수하는 저온 지역 난방 네트워크로 전력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있다. 알토대의 태양 전지판 시스템은 4개의 발전소로 이루어져, 캠퍼스 전체 전력 소비의 5%를 충당한다. 4개 발전소가 생산하는 에너지 양을 합하면 연간 461 Mwh로, 2023년 한국전력의 4인 가구 연평균 사용량인 3.64Mwh의 약 130배다.

알토대의 태양광 전지판 시스템. 캠퍼스 내의 4개의 태양광 전지판 시스템은 건물 맨 위층에 위치한다. <strong> 나민서 기자
알토대의 태양광 전지판 시스템. 캠퍼스 내의 4개의 태양광 전지판 시스템은 건물 맨 위층에 위치한다. 나민서 기자

태양광 전지판이 건물의 꼭대기에 있다면 지열 에너지 기계는 건물 지하에 있다. 알토대는 총 74개의 에너지 웰(지열 에너지를 채취하는 구조물)을 이용해 땅 밑 380m 깊이까지 파고들어 필요한 에너지를 채취한다. 이렇게 얻은 지열 에너지로 해당 건물 난방 수요의 80%와 냉방 수요의 95%를 해결한다. 메트로 블록 빌딩(Metro block building)의 면적은 48000 제곱미터로(약 14520평) 캠퍼스 내에서도 매우 넓은 건물 중 하나다. ‘Aalto Works’라 불리는 저온 지역 난방 시스템도 활용한다. 이는 대기에서 열을 흡수하는 기술로,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건물은 전체 캠퍼스의 난방 필요량 20%를 충족한다.

알토대 메트로 블록 빌딩(Metro block building)에 위치한 지열 에너지 기계. 해당 기계를 통해, 캠퍼스 내에서도 넓은 메트로 블록 빌딩 난방 수요의 80%와 냉방 수요의 95%를 해결한다. <strong> 김민아 기자
알토대 메트로 블록 빌딩(Metro block building)에 위치한 지열 에너지 기계. 해당 기계를 통해, 캠퍼스 내에서도 넓은 메트로 블록 빌딩 난방 수요의 80%와 냉방 수요의 95%를 해결한다. 김민아 기자

알토대는 학생들이 그린캠퍼스 조성에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재학생들 역시 관련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캠퍼스 중앙에 마련된 농장에서, 학생들은 직접 35종이 넘는 식물과 허브를 재배하며 자유롭게 취식한다. 필라(Pihla·여·20)씨 대학에서 재배하는 과일을 자유롭게 따먹는 분위기를 언급하며 “캠퍼스 나무에 열린 사과를 먹어보라”고 기자에게 권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예술대 학생들이 운영하는 채식 학식 레스토랑, 에너지 사용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된 스터디 공간 ‘Energy garage’ 등이 있다.

알토대 학생들 거의 대부분은 자전거를 이용해 이동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학생들 곁엔 자전거가 함께 했다. 거의 모든 건물에 개인 자전거를 보관하는 대여소가 설치돼 있다. 캠퍼스 정문 근처에는 개인 자전거가 없는 학생들을 위해 헬싱키 지역 교통회사의 자전거 서비스 센터에서 공용 자전거를 제공한다. 지이씨는 해당 서비스를 “알페로 자전거라고 부르는데, 40유로로 5개월간 근처 지역을 다닐 수 있는 저렴한 구독 서비스”라고 설명하며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라고 말했다.

지이씨가 설명해준 알토대에 위치한 자전거 대여소. 알토대학생들은 이동시 대부분 자전거를 이용한다. <strong> 나민서 기자
지이씨가 설명해준 알토대에 위치한 자전거 대여소. 알토대학생들은 이동시 대부분 자전거를 이용한다. 나민서 기자

캠퍼스에서 오래되거나 고장난 자전거를 무료로 수리해주는 알토대 졸업생 킴(Kim·남·30)씨도 만났다. 킴씨는 자전거를 가능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고장이 나도) 새로운 자전거를 사기 보다 기존 자전거 이용할 수 있게 돕고 싶어 자전거 수리 이벤트를 열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이대학보가 알토대를 방문한 8월에는 철로 를 공사 중이던 트램이 10월21일, 운영을 시작했다. 트램은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주행하는 전차로, 화석연료가 아닌 전력을 사용해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으로 꼽힌다.

 

채식지향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즐기는

알토대 학생식당은 채식과 일반식, 두 개 선택지를 항상 함께 제공한다. 모두 유기농, 공정무역 제품이다. 채식을 필수로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알토대 지속가능성&건축관리팀 부서에서 근무하는 투오모(Tuomo·남·29)씨는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재학생에게 지속가능성 인식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학생들도 채식을 하나의 메뉴 선택지로서 부담없이 즐기는 점이 눈에 띄었다. 오스카리(Oskari·남·20)씨는 “채식은 제한이 아니라 확장”이라며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내 식이의 범위를 넓힌다”고 말했다. 비건 음식의 맛이나 종류, 외양 등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대해 추측하지만 실제와 동떨어진 경우가 있다”며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보라”고 말했다.

2022년 알토대 학생식당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들의 약 18%가 채식을 지향한다. 과반수도 미치지 않는 수요지만, 알토대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채식을 학생식당 메뉴로 제공한다. 학생 주도로 채식 메뉴를 판매하기도 한다. 알토대 예술대학교 학생들은 오직 채식 메뉴만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인 킵사리(Kipsari)를 운영해 재학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8월17일, 알토대 지열 발전소 건물에 위치한 학생 식당에서는 또띠아와 수박이 제공됐다. 또띠아에 곁들여 먹는 부재료로 누에콩 필링(broad bean filling)이 채식 선택지, 탄두리 치킨 필링(Tanduri chicken filling)이 일반식 선택지로 제공됐다. 채식은 간이 심심하고 담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누에콩 필링은 토마토 소스를 섞어 감칠맛이 강했다.

알토대에서 제공하는 채식메뉴 (위)와 일반 메뉴(아래). <strong> 김민아 기자
알토대에서 제공하는 채식메뉴 (위)와 일반 메뉴(아래). 김민아 기자

음식을 모두 담은 뒤엔 샐러드바로 이동해 채썬 당근, 양상추와 같은 신선한 채소와 오트밀 우유, 두유 등을 취향에 따라 추가한다. 식당 한 켠에 있던 셀프바에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 빵 6종이 제공돼 원하는 학생들은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했다. 글루텐 프리 빵은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아 음식 소화를 돕는다.

여름방학에도 점심시간인 오후 12시경이 되자 약 70명의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섰다. 재학생이 아닌 이들도 뒤섞여 함께 점심식사를 즐겼다. 재학생은 2.95유로(한화 약 4168원), 외부인은 9.30유로(한화 약 1만3천원)에 식사할 수 있다. 라펜란타 연구대학(LUT Universuty)에 다니는 지역 주민 로타(Lotta·여·27)씨는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이 식당에 방문한다”며 “채식주의자가 아님에도 윤리적인 소비를 원할 때면 이곳에서 채식을 먹는다”고 말했다.

알토대에 채식을 먹으러 종종 오는 타대학 학생 로타씨. <strong> 나민서 기자
알토대에 채식을 먹으러 종종 오는 타대학 학생 로타씨. 나민서 기자

학생 식당의 영양사 한나(Hanna·여·50)씨는 “고정적으로 채식메뉴를 제공하다보니,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날의 선호에 맞게 채식메뉴를 고르는 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채식 메뉴가 당연한 선택지로 자리잡은 식당은 신념적 이유가 아니어도 채식에 접근하는 기회를 넓혔다.

본지 1645호(2022년 9월12일)에 따르면, 본교 학생식당은 비거니즘 지향 자치단위 ‘솔찬’을 비롯해 학생 주도로 채식 학식 도입을 노력했지만 인력부족과 원재료 상승을 이유로 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본교 기숙사 E-house(이하우스)는 2019년 ‘No Meat’ 메뉴 중단 후, 2023년 일주일에 한 끼를 채식으로 즐기는 식단을 운영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찾지 않아 현재는 관련 메뉴를 논의하지 않는다. 총무팀에 따르면, 2023년11월 현재 교내 학생식당에 채식 메뉴는 부재한다.

환경 보호를 위한 움직임은 정부와 기관, 개인의 협동으로 실현된다. 알토대가 갖춘 그린 캠퍼스의 인프라는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었기에 가능했다. 투오모씨는 “핀란드 정부가 약 50%를 지원해주고 있으며, 핀란드의 다른 대학에도 정부가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알토대는 학교와 학생 모두 대학에 환경 보호에 앞장설 책임을 요구했다. 투오모씨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은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대학 캠퍼스가 가져야 할 책임감을 강조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원생 용이(Gyöngyi·여·32)씨는 대학의 역할을 환경보호 인식을 이끌어 관련 인재를 육성하는 것으로 봤다. 용이씨는 “대학이 젊은 성인들을 가르치는 것은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교육하는 것과 같다”며 “대학에서 배우는 사고 체계는 사회로 진출한 학생들의 사상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TOE(Ton of Oil Equivalent, 원유환산톤) : 1TOE=11.63MWh (중형승용차 기준, 서울~부산 16회 왕복할 수 있는 휘발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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