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1948년 5월, 유대인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로 이주해 아랍인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며 토지를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다. 영국은 전쟁 비용을 지원받고자 유대인 과 아랍인의 국가 건국을 지지하는 밀약을 맺었지만, 갈등이 격화되자 UN에 사안을 넘기고 손을 뗐다. 이후 UN이 발표한 영토분할안으로 격화된 갈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는 10월7일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했고, 뒤이어 이스라엘은 지상군을투입했다. 22일에는 46일간 지속된 무력 충돌 중 최초로 나흘간의 휴전 합의가 이뤄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무력 충돌이 7주째 이어졌던 상황에서, 본교 재학생 시마(Sima·아시아여성학전공 석사과정)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무력 충돌이 거세지자 세계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시작됐다. 제공=시마씨
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무력 충돌이 거세지자 세계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시작됐다. 제공=시마씨

시마씨는 10월7일, 친구와 콘서트장에서 나오는 길에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영상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영상 속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영상은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했다는 내용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시마씨는 여성학 공부를 위해 2022년 8월, 처음 한국에 왔다. 제주도에서 1년간 한국어 공부를 한 뒤, 2023 년9월 본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사실 그가 한국에 온 진짜 이유는 ‘행복’ 하나였다. 그는 “그 곳에서는 행복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75년이 넘는 시간동안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위치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영토를 두고 지속적인 갈등과 무력충돌을 빚어왔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시마씨가 한국으로 오기 전 팔레스타인에서 촬영한 사진. 제공=시마씨
시마씨가 한국으로 오기 전 팔레스타인에서 촬영한 사진. 제공=시마씨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없어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시마씨는 8살 전까지 삶의 터전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번 상황은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갈등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지속됐으나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당이 이스라엘에 대 한 선제 공격을 가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민병원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통제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공격당했다는 점이 기존과 크게 다르다”며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 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로, 1987년 팔레스타인의 제 1차 ◆인티파다(Intifada) 당시 민간인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키면서 무장 조직으로 결성됐다. 이후 여당이던 파타당이 부정부패와 이스라엘에 대한 온건한 태도로 여론이 악화되자,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해 정당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국외대 김수완 교수(중동 이슬람전략)는 "군사력이 약한 하마스가 약 2년간 치밀한 준비를 해온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마스가 무리한 선제공격을 감행한 원인은 “하마스의 하락하는 지지율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외교 관계 개선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분쟁의 비가시화”에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0월7일 하마스의 선제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하마스의 주요 세력 지역인 가자지구의 건물을 공습해 파괴했고, 하마스 대원을 제거했다.

시마씨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서안지구의 ‘라말라(Lamallah)’라는 임시 행정 수도다. 그는 “라말라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있어 그나마 적게 공격받지만, 그마저도 무척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라말라도 갑자기 공격 당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공격하러 와서는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서 떠나요.” 어머니와 계속 연락을 하지 못했던 시마씨는 9일 오랜만에 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해 들었다. 시마씨의 어머니는 약 처방을 위해 난민촌에 위치한 UN의 임시 진료소에 방문했다. 그는 “어머니가 진료소에 도착하기 2시간 전 그곳에서 민간인 12명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당했고, 몇몇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총격을 당한 12명 중 2명이 어머니 친구의 아들이었다. “엄마가 그곳에 2시간 일찍 도착했다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어요.”

현재 팔레스타인 내부 많은 건물과 기관들이 파괴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남은 기관이 거의 없고, 그 밖으로는 이스라엘 정부가 세운 약 8m의 분리 장벽이 설치돼 있다. 장벽 너머의 학교나 직장에 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소망은 단지 자유 속에 살아가는 것

시마씨는 “우리는 이스라엘이 죽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떠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구 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자유 속에서 살길 원할 뿐이다. 그는 행복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두려움 속에 눈 감지 않고, 물을 마시고 씻는 것이 당연한 곳에서 사는 자신이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은 모든 이동과 행동을 통제 당하는 것은 물론, 안전하게 지내는 것조차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팔레스타인인들도 원래 독립된 국가 수립을 원했지만, 현재는 이견이 있다”며 “ 지난 세월 간 많은 분쟁과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은 굳건히 고수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내부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다 보니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원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시마씨는 대학원에서 여성학 공부에 전념해야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마음이 저 멀리 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에요.” 그는 “고국에서 훨씬 더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업에서 공부하는 사안에 대해 집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시마씨가 여성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극심한 차별에 고통받고 살해당할 위험 속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UN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여성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자 시작했지만,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보며 국제기구 의 현실적인 영향력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이제 “단지 더 나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팔레스타인 내의 젠더와 여성 이슈에 대한 교육을 증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

A free Palestine, stop genocide, free Gaza,

stop killing children.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집단학살을 중단하라. 가자지구에 자유를,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중단하라.)

시마씨는 매주 최소 2번씩 이태원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여해 고국의 상황을 알린다. 제공=시마씨
시마씨는 매주 최소 2번씩 이태원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여해 고국의 상황을 알린다. 제공=시마씨

시마씨는 일주일에 적어도 2번씩은 이태원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여해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알린다. 13일에 서울시립대에서 개최된‘팔레스타인 학생과 중동 전문가 초청 토론회’에 팔레스타인 학생 발제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약 8천 킬로미터(Kilometer) 넘게 떨어진 한국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고국의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시마씨는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는 한국 사람들에게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그들이 없었다면목소리를 내지도, 자유롭게 국기를 들고 걷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었다면 저는 이 곳에 정말 혼자 있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민 교수는 “옛날에는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몰랐다”며 “예전 전쟁과 많이 다른 양상”이라 설명했다. 과거에는 신문기자들이 찍은 사진으로만 상황을 알 수 있었다면, 현재는 SNS를 통한 실시간으로 중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화를 수호하는 반전운동이 일어나기 쉬운 까닭이기도 하다. 민교수는 “반전 운동이 어디서나 이뤄지면 전쟁을 오래 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반전 운동이 일어나면 프랑스, 영국, 미국의 지도자 입장에서 부담을 느끼고 휴전에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이 상황에 공감할수 있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민족”이라며 “분단된 남북 관계와도 흡사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기본권이나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상태로 분단돼 살아가기 때문이다.제대로 아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중동 문제는 주로 서구 언론에 의한 보도가 주를 이뤄왔기 때문에 서구적 관점에서편향적으로 인식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중동 문제에대한 한국의 객관적 인식 수준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관심 속에 나아가야 함을 전했다.

시마씨는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 전쟁으로 인한 학살이 멈추길 간절히 바란다. 그는 “사람들이 전쟁에 관심을 가질수록 우리가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쉬워진다”며 “세계 이슈라는 것을 넘어 인류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막기 위한 일임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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