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의 융합, 젊은 다빈치 키우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 젊은 다빈치 키우다
  • 한채영 기자
  • 승인 2018.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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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학이에요, 예술이에요?”

2018 대전 비엔날레에 전시된 작품을 보며 관객은 고개를 갸웃한다. 길거리에 버려진 껌과 담배꽁초로부터 유전자를 추출해 3D 프린터로 복원한 얼굴들. 이 작품은 과학일까, 예술일까? 

최근 학문 간 융합의 바람을 타고, 예술과 과학의 협업이 확대되고 있다. 예술 전시회는 평면 그림이 아닌 3D 화면을 통해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과학자는 예술적 감수성을 통해 삶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고민한다.

과학과 예술이 융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며, 세계 여러 명문대는 학생들에게 융합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를 고민 중이다. 그에 비해 현재 국내 대학의 융합 교육 시도는 미비하기만 하다.

왜 과학과 예술이 서로 손잡아야 할까. 대학이 융합 교육을 제공해야 할 당위성은 무엇일까. 답을 얻기 위해 이대학보사 해외취재팀은 지난 8월12일~26일 미국 시카고와 뉴욕, 보스턴에 위치한 공대 및 예술대를 방문했다.

이번 호에서는 SAIC(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SVA(School of Visual Arts), 메사추세츠공과대(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를 방문해 융합 교육의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뇌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레이먼 까잘(Santiago Ramon y Cajal)의 드로잉 작품우아현 기자 wah97@ewahin.net
뇌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레이먼 까잘(Santiago Ramon y Cajal)의 드로잉 작품
우아현 기자 wah97@ewahin.net
미국 SAIC(School Art Institute of Chicago) ATS 학부에서 1970년대부터 수업에 사용한 초기 컴퓨터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SAIC(School Art Institute of Chicago) ATS 학부에서 1970년대부터 수업에 사용한 초기 컴퓨터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과학의 요람에서 디자인을 꿈꾸다

MENS ET MANUS(mind and hand, 정신과 손)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가 표방하고 있는 교육 이념이다. 지식을 생활에 응용할 것, MIT는 이런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 어느 공대보다 앞서서 예술과 공학 기술을 융합하는 교육을 시도했다.

그중 1985년에 설립된 연구소인 미디어 랩(Media lab)은 MIT 내에서 가장 오래된 융합 교육 시도의 결과물이다. 예술,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소속된 학생을 모아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미디어 랩에서는 세계적인 미디어 융합 기술연구소다. 가상현실, 3차원 홀로그램, 유비쿼터스,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 등의 개념이 모두 이 연구소에서 처음 고안됐다.

 

미국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유형 미디어 연구소(Tangible Media Lab) 내부 전경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유형 미디어 연구소(Tangible Media Lab) 내부 전경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디어 랩이 우수한 성과를 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미디어 랩 디렉터 출신인 MIT 디자인 랩(Design lab) 임이현 연구소장은 과감하게 서로 다른 분야의 융합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디어 랩은 정신과 손이라는 교육 이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DEMO OR DIE’, ‘DEPLOY OR DIE’를 표제로 연구를 진행해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만들어야 한다, 만드는 것을 넘어서 빨리 세상에 갖고 나가 쓸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진취적인 이념 하에 미디어 랩에서는 새로운 것을 결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요. 서로 다른 것이 섞여서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죠, 얼마 전 미디어 랩 tangible media group에서 개발된 ‘프로그래밍 가능한 물방울(Programmable Droplets)’ 기술은, 흔히 볼 수 있는 물방울을 디지털 방식으로 프로그래밍해 스마트폰 등 컴퓨터 인터페이스 장치로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돼서 물방울의 예술적 잠재 능력을 끌어냈어요.”

미디어 랩에서 분리돼 나온 디자인 랩 역시 사회 현상을 연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디자인과 기술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설립된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디자인과 과학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뒤섞여 하나의 프로젝트로 완성된다.  

“디자인 랩에서 사용하는 ‘디자인’이란 단어는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예쁜 것을 만든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에요.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경험과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저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디자인입니다.”

디자인 랩에 소속된 이들의 출신은 다양하다. 기계공학, 재료공학, 컴퓨터 공학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 학생까지 다양한 전공생이 이곳에 모인다. 공학자든 예술가든 관심과 능력만 있다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사전조사 단계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모든 단계를 같이 해요. 공학자라고 시제품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라고 디자인만 하는 것도 아니죠. 사실 양 집단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배울 수 있어요.”  

디자인 랩이 성공시킨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2014년 디자인 랩이 진행한 프로젝트 ‘Innovation in Product, Process, Service in Craftsmanship’다. 이 프로젝트는 장인 정신이 깃든 예술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의 장인들이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고수하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디자인 랩은 섬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을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예술을 통한 유연한 사고와 과학 기술의 합작이었다.

 

미국 MIT 뮤지엄(MIT Museum)에서 진행중인 뇌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레이먼 까잘(Santiago Ramon y Cajal)의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MIT 뮤지엄(MIT Museum)에서 진행중인 뇌신경과학자 산티아고 레이먼 까잘(Santiago Ramon y Cajal)의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아직도 예술과 과학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MIT는 오래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해왔습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예술가는 어떤 기술을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지식과 예술을 생활에 응용할 수 있으니까요. 각자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디자인 랩 소속 (Sotirious kotsopoulos) 연구원은 공대라 할지라도, 과학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당연한 흐름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MIT는 최근에도 디자인 전공을 만들고, 석사과정에 IDM(Integrate design managemet)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공대 내 구성원들에게 예술적 소양을 겸비시켜주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술을 물감 삼아, 과학을 캔버스 삼아

새하얀 실험복이 걸려있는 옷걸이 행거, 동물의 사체가 보관된 각양각색의 유리병, 세포를 확대한 화면이 연결된 전자 현미경. 얼핏 보면 과학자의 실험실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술 수업이 진행되는 작업실의 정경이다.

“저희는 이곳에서 과학이 아닌 예술을 합니다.”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생물학 수업(Practices in Bio Art)에 사용되는 생물 표본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생물학 수업(Practices in Bio Art)에 사용되는 생물 표본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 순수미술과(Fine Art) 학과장 수잔 앵커(Suzanne Anker) 교수는 바이오 아트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곳 SVA 소속 학생들은 전문가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고도의 첨단 과학기술을 구경만 하는 게 아닌 직접 연구하고 ‘사용’한다. 대표적인 학과가 바이오아트(Bioart) 전공이다. 바이오아트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직접 세포를 배양해 관찰하고, 수중생물을 관찰하는 등 ‘과학적인’ 행위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는다.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것을 넘어서, 과학 이론과 실험을 통해 직접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미생물을 물감 삼아, 한천배지를 도화지 삼아서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해요. 살아있는 미생물을 통해서 예술 활동을 하는 거죠.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동그란 페트리 접시를 들여다보지만, 학생들이 하는 활동은 엄연히 예술 활동입니다.”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생물학 수업(Practices in Bio Art)에 사용되는 생물 표본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s)의 생물학 수업(Practices in Bio Art)에 사용되는 생물 표본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살아있는 작품이 들어있는 페트리 접시를 보여준 SVA 재학생 출신 문정희 씨는 앞으로 다양한 과학 실험 및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예술학교 SAIC(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도 예술에 과학기술을 접목한 색다른 수업이 다양하게 개설돼 있다. 대표적인 과가 아트 앤 테크놀로지 전공(ART&TECHNOLOGY STUDIES, ATS)이다.

ATS 전공 수업은 바이오아트 연구실, 역학 연구실, 빛 연구실 등에서 진행된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물감이 아닌 과학과 기술을 도구로 예술 활동을 이어간다. 전공 수업에는 웹 아트, 3D 애니메이션처럼 익숙한 분야뿐 아니라 네온, 홀로그래피, 가상현실, 바이오 아트, 키네틱 아트처럼 이색적인 주제도 개설돼 있다. 

 

작품 제작의 전 과정에 능숙한 작가 양성을 목표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루는 수업을 개설 중인 SAIC의 ATS 학부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작품 제작의 전 과정에 능숙한 작가 양성을 목표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다루는 수업을 개설 중인 SAIC의 ATS 학부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전공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빛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네온 수업이다. 수강을 원하는 학생이 많아 추가 계설도 고려 중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모양을 내 구부린 유리 진공관에 약간의 기체를 넣어 알록달록한 네온 아트 작품을 만든다. 기본적인 네온의 원리를 공부할 뿐만 아니라 작품 제작에 적용되는 네온 기법을 실습으로 익힌다.

SAIC 소속 에두아르도 카츠(Eduardo Kac) 교수는 이처럼 다양한 과학 및 기술 수업을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시대가 바뀔수록 아티스트들이 쓰는 도구들도 업데이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 학교는 물감만을 다루던 과거의 교육에서 벗어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발전해온 기술을 모두 습득해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SAIC는 예술학교임에도 새로운 기술에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응해 관련 전문가를  채용하고 수업을 개설한다. 

그렇다면 수업을 수강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기초적인 수학과 과학을 다시 배워야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SAIC 소속 에두아르도 카츠(Eduardo Kac) 교수는 ‘과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작업에서 과학이 사용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수학이나 과학의 기초를 다진 후 예술 작업을 하는 게 아닌, 예술 작업을 수업에서 진행함과 동시에 기술을 배우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물리책을 펼쳐 유체역학을 배우는 대신 피스톤을 직접 만져보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원리를 눈으로 익히고 작품에 활용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과학 이론에 대한 부담을 일부 덜 수 있다.

ATS 전공생 셰인 메이어(Shayne Meyre)씨는 “천문학부터 물리학까지 다양한 과학 수업이 있고, 학생들은 원하는 수업이라면 무엇이든 듣고 자신의 작품 커리어에 반영할 수 있다”며  “나 역시 ATS 수업에서 배운 과학, 특히 빛과 관련된 이론을 추후 디자인에 접목하는 등의 작업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