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 수는 2022년 4월 기준 53명으로, 보통 100명 이상의 장애학생이 소속된 수도권 타대에 비해 매우 적다.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본교는 지형이 경사진데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 휠체어 등의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물리적 접근이 어렵다. 관계자는 “이러한 여건은 장애학생이 본교에 지원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본교에 재학 중인 휠체어장애인은 0명,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캠퍼스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장애학생이 마주하는 장벽은 여전히 높다.

본교보다도 가파른 지형, 넓은 부지에 위치한 독일 마르부르크(Marburg) 필립스 대학에는 200명 이상의 장애학생이 재학 중이다. 그 중 휠체어 장애인은 40명, 괄목할 만한 수치다. 

 

모두가 함께 사는 곳: 비잘스키 하우스

중심지에서 15분 이상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남산을 오르는 수준의 경사로다. 높은 곳에 위치해 마을 어디에서든 보이는 랜드마크 바로 밑 언덕의 끝에는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거주하는 통합 기숙사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Konrad-Biesalski-Haus, 비잘스키 하우스)'가 있다. 비잘스키 하우스에 마련된 방은 74개, 그중 장애학생을 위한 방은 30개다.  

 

비잘스키 하우스의 위치. 마을에서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가장 우측 상단의 건물은 마을의 랜드마크 마르부르크 성. 츨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비잘스키 하우스의 위치. 마을에서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가장 우측 상단의 건물은 마을의 랜드마크 마르부르크 성. 츨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비살스키 하우스에서 보이는 마을 전경 출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비살스키 하우스에서 보이는 마을 전경 출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필립스 대학의 통합 기숙사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 입구 전경. 잡아당겨 문을 열 수 있는 맏개와 문이 열리는 반경의 표식,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미끄럼틀이 보인다.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통합 기숙사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 입구 전경. 잡아당겨 문을 열 수 있는 맏개와 문이 열리는 반경의 표식,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미끄럼틀이 보인다. 강동주 기자

비잘스키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윗층부터 나선형으로 내려오는 보라색 미끄럼틀이었다. 가장 꼭대기층인 5층부터 1층까지 이어지는 미끄럼틀은 비상시 대피를 위해 설치됐다. 홍보 담당자인 프란치스카 부쉬(Franziska Busch)씨는 이 미끄럼틀이 “계단으로 대피가 불가한 학생들도 무사히 대피할 수 있도록 미끄럼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는 1969년 11월에 단 두 명의 학생을 위한 건물로 시작했다. 1966년 휠체어장애인 두 명이 필립스 대학에 등록했다. 하지만 학교 주변 지상 건물은 모두 계단으로만 진입이 가능했기에 장애학생이 거주할 수 있는 건물이 없었다. 이에 필립스 대학은 마부르크 학생 연합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기숙사를 건축했다. 기숙사 신축은 더 많은 장애학생 유입으로 이어졌다. 이후 대학은 계속해서 예산을 확장하고 기부액을 늘려 기숙사의 시설을 보완해나갔다. 

필립스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 중인 뇌병변장애인 안나 지버(Anna Sieber)씨는 학사 공부를 시작한 2012년부터 10년째 비잘스키 하우스에 살고 있다. 그는 “기숙사에서는 원할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숙사 2층에 위치한 보건실에는 야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8명의 간호사와 15명의 보조자가 상주한다. 보조자 중 일부는 또래 학생이다.

보조 학생들은 대부분 비잘스키 하우스 바로 옆에 위치한 칼 뒤스버그 하우스(Carl-Duisberg-Haus)에 거주하고 있다. 안나씨는 또래 보조자가 학생들 간의 간격을 좁히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가까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스 대학의 통합 기숙사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 외부 전경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통합 기숙사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 외부 전경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중인 안나씨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중인 안나씨 강동주 기자
안나씨의 방 문. 비밀번호를 누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Strong>. 강동주 기자
안나씨의 방 문. 비밀번호를 누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 강동주 기자

안나씨의 방은 4층, 방까지 가려면 건물 출입문을 포함해 3개의 문을 거쳐야 한다. 모든 문은 자동 도는 반자동으로, 건물은 장애인 혼자서도 충분히 안전하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안나씨의 방은 비장애 학생의 방과는 입구부터 달랐다. 열쇠를 꽂아 잠금을 해제하고 직접 잡아당겨야 열리는 비장애학생의 방과 달리, 장애학생을 위한 방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안나씨의 방 안쪽 책상 옆에는 파일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그는 이곳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책상 높이와 기울기는 리모컨을 통해 조절 가능하고, 창문과 블라인드도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기에 직접 손을 뻗어 창문을 열거나 블라인드를 내릴 수 없는 장애학생을 위한 시스템이다. 

리모컨에는 보조자를 호출할 수 있는 버튼도 있다. 버튼 뿐만 아니라 천장에서부터 길게 연결된 줄을 잡아당겨도 보조자 호출이 가능하다. 천장에 매달린 줄은 키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 가능하며 개인 방 뿐만 아니라 공용 부엌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간에 있다. 

 

비살스키 하우스 주차장에서 대기중인 장애학생 전용 이동 차량  <strong> 강동주 기자
비살스키 하우스 주차장에서 대기중인 장애학생 전용 이동 차량 강동주 기자
장애학생을 위한 이동차량 내부 모습  출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장애학생을 위한 이동차량 내부 모습 출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기숙사에는 간호사와 보조자뿐만 아니라 4명의 운전기사도 함께 대기하고 있다. 기사들은 오전7시30분부터 오후11시30분까지 장애학생들의 이동을 돕는다. 장애학생은 이동이 필요한 시각에 기사가 운전하는 기숙사 소유 장애인 전용 차량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강의를 포함한 교내 생활은 물론, 학생의 개인 일정을 위한 이동도 지원한다. 안나씨는 "친구들이랑 맛있는 걸 먹기로 했을 때에도 걱정 없이 나갈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편 본교 기숙사에도 장애학생을 위한 기숙사실이 마련돼있다. 장애학생을 위한 기숙사실은 I-house(아이하우스)와 E-house(이하우스) 등에 마련돼 휠체어장애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넉넉한 여유공간과 미닫이문, 손잡이 등이 설계돼있다. 장애학생 수에 비해 기숙사실이 여유로운 편이라, 장애학생을 우선으로 배정한 후 남은 객실은 비장애학생에게 배정하기도 한다. 

장애학생을 위한 시설을 잘 갖춘 기숙사실에 반해 이동서비스는 없다. 본교는 경사가 가파른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장애인을 위한 이동 차량을 보유하고있지 않다. 또 많은 건물의 출입문이 자동이 아니라 휠체어장애인은 혼자서 건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비교적 지어진지 오래된 대강당, 진선미관, 헬렌관 등 일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조차 없다. 

휠체어장애인 당사자이자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지원부 최동규 대리는 관련 법안을 확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축 건물이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법이 장애인 접근성을 많이 높였다"는 것이 그 이유다. 

2014년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개정으로 이후에 건설된 건물은 장애인의 접근성이 보장돼야만 건축이 허가된다. 이에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은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는 반면, 비교적 신식 건물은 장애인도 어려움 없이 이용 가능하다. 

최 대리는 “신축 건물 뿐만 아니라 기존 건물에도 관련 규제가 있다면 장애친화적인 시설이 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며 강제성이 있는 규제가 변화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학생식당: 멘자

필립스 대학의 학생식당 '멘자'가 위치한 건물 전경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학생식당 '멘자'가 위치한 건물 전경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학생식당 이름은 ‘멘자(Mensa)’다. 멘자는 시각장애인과 휠체어장애인이 모두 학생 식당을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생식당 입구에는 움직임을 감지해 양쪽으로 열리는 자동 개찰구가 있어 휠체어장애인도 진입이 원활하다. 주요 경로에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이 있어 시각장애인도 보조자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식대나 커피머신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높게 설계돼 휠체어장애인이 배식을 받거나 커피 머신을 이용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커피머신에는 점자 핸드 레일이 새겨져 있지만 식사 배식 과정에서 음식을 확인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필립스 대학은 ‘멘자 서비스'를 통해 학생식당을 방문하는 장애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멘자 서비스는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 시간에 제공되는 장애학생 지원 서비스로, 자원봉사 학생들이 보조 역할을 위해 멘자에 상주하며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돕는 방식이다. 

멘자 보조 학생은 장애학생의 배식과 식사 후 뒷정리 등을 돕는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당일 메뉴를 알려주거나, 테이블 빈자리로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등의 도움도 제공한다. 필립스 대학은 멘자 서비스를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불편 없이 점심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설명했다. 

본교 학생식당 역시 장애학생이 혼자 방문해 배식받고 퇴식구에 식기를 정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따르면 헬렌관, 진선미관 등에 위치한 학생식당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돼 휠체어장애인에게는 배식대 높이가 맞지 않고, 휠체어로 배식 받기 위해 필요한 하부공간 등이 마련돼있지 않아 타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생들이 요청하는 경우 식사시간에 보조자를 배정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실제로 보조자를 요청해 식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립스 대학 건물 출입구의 자동문. 조금 떨어진 기둥의 버튼을 누르면 문이 천천히 열린다.  <strong>신예린 기자
필립스 대학 건물 출입구의 자동문. 조금 떨어진 기둥의 버튼을 누르면 문이 천천히 열린다. 신예린 기자

필립스 대학의 시설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토대로 구축됐다. 장애학생들이 일상 생활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배제나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런 공간은 비장애학생들에게 포용적 환경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전맹 시각장애인 당사자이자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부 서원선 부연구위원은 “장애인의 일상적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학생식당과 같은 공용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중요하다”며 특히 학생식당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보조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조자가 없을 경우 동행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항상 그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최 대리는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시설은 결국 비장애인에게도 편의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만든 시설은 장애인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 대리는 “건물의 진입 턱을 없애거나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등, 장애인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일은 결국 일시적 부상자, 유모차 사용자, 자전거 이용자 등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접근에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의 장애인을 위해 시설을 새로 만드는 일이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좋겠어요.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만을 위한 개념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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