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는 2020년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에서 5회 연속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됐다. 2019년 여름에는 무거운 철문이던 이화·포스코관(포관) 주 출입구 두 곳에 자동문이 설치됐다. 도보와 차도 사이 턱이 허물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말 본교는 장애학생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이 허물어진 ◆배리어프리 캠퍼스일까. 

배리어프리 개념에 대한 논의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개정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2021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운동으로 더욱 활발해졌다. 2022년에도 배리어프리 환경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장애인을 가로막는 사회 곳곳의 장벽은 굳건하다. 본교 또한 2008년 수도권 사립대학 중 최초로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립한 이후 배리어프리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학생들은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본교에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많다.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이대역부터 이어져오던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은 뚝 끊겨 쉽게 찾아볼 수 없다.

 

ECC 3번 출입구 앞에 놓인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strong>강동주 기자
ECC 3번 출입구 앞에 놓인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강동주 기자

교내 장애인권 자치단위 ‘틀린그림찾기’ 소속 활동가 백승지(커미·18)씨는 “특히 ECC의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설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물 주출입구 앞에만 설치돼 있는 점자블록마저도 훼손돼 있는 경우가 있었다”며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현재 본교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은 후문과 각 건물 주출입구, 화장실과 승강기 앞에만 설치돼 있다. 이에 관리처 건축팀은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계속해서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전공과 학년을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중앙도서관도 장애 학생에겐 먼 공간이다. 도서관까지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가팔라 휠체어가 올라가는 도중 전복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 입구도 휠체어 장애인이 접근하기엔 쉽지 않다. 

이에 본지는 7월10일~15일 장애인 복지 정책이 잘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독일의 한 도시 마르부르크(Marburg)를 방문해 배리어프리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제도와 노력에 대해 취재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시

Blindenstadt(블린덴슈타트,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시). 마르부르크에 사는 사람들이 이 도시를 칭하는 수식어 중 하나다. 이러한 특징은 대학도시라는 또 다른 특징과 맞물려 장애 친화적인 캠퍼스를 만들어냈다. 대학도시란 도시형성의 주된 목적이 대학이며 관련 시설과 구성원으로 도시가 이루어져 대학, 박물관, 연구소 등이 밀집된 곳을 말한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대학인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필립스 대학)은 캠퍼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약 110개의 학교 건물은 도시 전체에 퍼져 있지만 시각장애 학생들은 큰 어려움 없이 이동하고 어디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필립스 대학에는 약 150명의 시각장애 학생이 재학 중이다. 그중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마드 파투(Ahmad Fattouh)씨는 저시력 학생이다. 생후 2개월부터 시력을 조금씩 잃은 그는 매우 큰 글자와 특정 색 외에는 인식할 수 없어 학교생활에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릴 때부터 ◆흰지팡이 사용법을 익힌 덕에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지만,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학습 보조자와 함께한다. 스텔라(Stella)씨는 그와 2년째 함께하고 있는 학습 보조자다. 아마드씨가 사전에 스텔라씨에게 도움받길 원하는 시간을 알려주면 스텔라씨가 일정을 맞춰 동행한다. 이들은 같은 심리학 전공이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수월하다.

 

시각장애인 아마드씨와 그를 보조하는 스텔라씨의 모습  <strong> 강동주 기자
시각장애인 아마드씨와 그를 보조하는 스텔라씨의 모습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은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한 달에 약 130시간의 학습 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학습 보조 역할은 필립스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맡는다.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연결되는 학습 보조자는 도서관이나 수업에 동행하거나 학습 자료를 장애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주는 등의 일을 한다.

필립스 대학에서는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연결되는 방식 외에 개인적으로 학습 보조자를 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마드씨와 스텔라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스텔라씨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구인 어플리케이션에서 아마드씨가 올린 학습 보조자 구인 글을 보고 그에게 연락했다. 스텔라씨는 학습 보조 일이 일종의 아르바이트와 같다고 말했다. 당시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마드의 학습 보조자로 지원한 것이다.

스텔라씨는 주로 아마드의 학업과 이동을 돕는다. 시각자료가 많은 수업에 동행해 시각자료를 말로 설명해주거나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갈 때 이동을 보조한다. 아마드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늘 스텔라가 함께 한다.

하지만 매순간 보조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립스 대학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대안 시설과 제도를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필립스 대학의 도서관 입구, 타일 색과 구별되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이 설치돼있다.  <strong> 신예린 기자
필립스 대학의 도서관 입구, 타일 색과 구별되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이 설치돼있다. 신예린 기자

아마드씨는 평소 공부하는 곳을 보여주겠다며 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건물 밖에서부터 이어진 보도블록을 따라가니 장애학생을 위한 전용 학습실이 나왔다. 학습실에는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인식해 컴퓨터로 옮겨주는 스캐너와 컴퓨터로 옮겨진 글을 읽어주거나 확대해주는 스크린 리더기, 점자 프린터 등이 마련돼 있었다. 필립스 대학은 교내에 이러한 장애학생 기자재 열람 지원실을 총 9개 운영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대학 곳곳에 위치한 작업 공간에서 학업 활동을 이어나간다. 

 

아마드씨가 점자 프린터의 사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strong> 신예린 기자
아마드씨가 점자 프린터의 사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신예린 기자

한편 본교에도 ECC 지하 1층 신한 열람실 근처에 장애학생 기자재 열람 지원실이 1개 위치해 있다. 열람실에는 도서확대기 외에도 다양한 보조공학기기가 있으며, 장애학생은 해당 열람실에서 학업에 필요한 기자재를 사용할 수 있다. 

아마드씨는 “거의 모든 시설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학교 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로 나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통합’이라고 답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갖지 않은 사람을 서로 다른 집단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같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벽을 허문 제도

필립스 대학에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40명의 휠체어 장애인도 재학 중이다.(2022년 8월 기준) 휠체어 장애인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모든 장애인으로, 지체장애인과 뇌병변 장애인 등이 해당된다. 마르부르크는 서울의 5분의 1 크기로 작은 도시다.  학교 도서관, 행정실 등이 위치한 주요 건물은 대부분 비장애인 기준 중심지에서 걸어서 20분 이내로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언덕이 많고 경사가 심해 휠체어가 다니기 용이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휠체어장애학생들은 장애로 인한 장벽을 경험하지 않는다. 장애학생도 비장애학생과 같은 경험을 하며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부터 필립스 대학에서 학사 공부를 시작해 현재 박사 과정에 있는 뇌병변 장애인 안나 지버(Anna Sieber)씨 역시 학교에서는 "모든 것에 접근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방을 소개하는 안나씨. 손에는 책상과 창문, 블라인드를 조정할 수 있는 리모컨이 들려있다   <strong> 강동주 기자
자신의 방을 소개하는 안나씨. 손에는 책상과 창문, 블라인드를 조정할 수 있는 리모컨이 들려있다 강동주 기자

안나씨는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처음엔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깨닫고 박사 과정까지 오게 됐다. 그는 하반신에 장애가 있어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한다.

이곳에서 안나씨는 특이할 것 없는 학생이다. 불편함 없이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도시 내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전용 승합차를 이용한다. 수업이 끝나는 시각 및 이동할 건물 등을 전달하면 운전기사가 해당 시간과 경로를 파악해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장애학생을 위한 이동차랑 출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장애학생을 위한 이동차랑 출처=필립스 대학 홈페이지

안나씨는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고, 항상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이동할 때마다 보조자와 동행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에게든 부탁할 수 있다”며 “학생들은 장애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언제든 기꺼이 돕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저에게 먼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무작정 저를 돕거나 제 휠체어에 손대지 않고 먼저 물어봐주죠. 그들은 저를 비장애인과 같은 방식으로 존중하며 대해줘요.” 

장애인의 경우 문을 자력으로 열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수동문은 이동에 큰 장벽이다. 필립스 대학 모든 건물의 입출구에는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자동 또는 반자동 문이 설치돼있다.

 

필립스 대학의 건물. 문 옆의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는 자동문이 설치돼있다.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건물. 문 옆의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는 자동문이 설치돼있다.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건물. 바닥에 문의 작동 반경이 표시돼있다.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건물. 바닥에 문의 작동 반경이 표시돼있다. 강동주 기자

반자동의 경우 버튼을 누르거나 천장에 달려있는 긴 막대를 당기면 문이 열린다. 버튼과 막대는 모두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의 가슴 높이에 있어 누구든 손을 뻗으면 문을 열 수 있었다. 문 앞에는 문이 열리는 반경이 빨간 테이프로 표시돼 있었다. 천천히 열리더라도 반경 내에 있을 경우 피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표식이었다. 

필립스 대학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든 강의실에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강의실은 계단식이거나 휠체어가 이동하기에 통로가 충분히 넓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진행되는 강의를 수강할 경우 안나씨는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강의실 변경을 요청한다. 그의 요청은 교수자 및 행정실에 전달돼 이후에는 휠체어도 접근 가능한 강의실로 수업이 다시 배정된다. 

건축물과 시스템 전반에서 필립스 대학은 배리어프리를 실현하고 있었다. 비장애인 학생들도 이 사실에 공감했다. 의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빅토리아(Victoria)씨는 처음 마르부르크에 왔을 때 거리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많이 마주쳐 놀랐다. 고향인 독일 쾰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의과학을 전공 중인 소나(Sorna)씨도 “마르부르크는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다”며 “그렇기 때문에 시각장애학생들도 두려움 없이 학업에 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빅토리아씨는 휠체어장애인의 이동에 용이하지 않은 환경 역시 제도가 보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시가 평지가 아니고 경사가 가파른 부분도 있기에 휠체어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며 “그럼에도 제도가 환경을 보완해 휠체어 장애인도 학교 생활이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나씨도 “마르부르크에서는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한다. 

“사회가 장애에 대한 책임을 함께 느끼고, 지원하는 것 같아요. 학교 밖에서는 혼자 해냈어야 할 일을 학교가 함께 해줘서 여기에서는 모든 게 다 가능해요.” 

 

필립스 대학의 전경  <strong> 강동주 기자
필립스 대학의 전경 강동주 기자

 

나아감엔 끝이 없다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 역시 장애학생의 편안한 학교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구를 대여해주고, 보조자를 지원하는 등의 지원을 포함해 학생들이 수강신청이나 시험 응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학교와 소통한다. 

전문가들은 배리어프리 캠퍼스를 위해서는 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학생의 요구를 대변해야 하고 그 목소리의 힘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전맹 시각장애인 당사자이자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부 서원선 부연구위원은 “장애학생 권익 지원을 위해서는 행정 전반 처리에 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국내 학교들은 외국에 비해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영향력이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이러한 지원이 ‘장애학생은 도와야 할 대상’이라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 최선호 팀장은 “학교 생활 전반에서 보조자가 학생을 지원하되, 이게 장애 학생에게 낙인처럼 작용해서는 안 된다”며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지원부에서 근무하는 휠체어장애인 당사자 최동규 대리도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이를 이해하되, 장애인을 너무 취약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 사이에 장벽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며 장애학생은 MT 등의 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 대리는 실질적 평등을 위해서는 인식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장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조자의 도움과 시설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시설의 장벽 해소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도 “시설도 인식도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완벽한 시설은 없다”고 말했다. 개선이 필요한 요소는 끝이 없고, 장애인이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기준은 개인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장애 학생이 만족할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해야 한다”며 사회가 꾸준히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장벽을 뜻하는 배리어(barrier)와 자유로움을 뜻하는 프리(free)의 합성어로, 누구든 차별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사회적 흐름을 말한다.

◆흰지팡이 (White cane): 시각장애인이 길을 안전하게 걷기 위해 사용하는 지팡이.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를 들고 길에 나선 것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보행할 수 있음을 뜻하는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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