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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너머 기회찾아] 런던에서 이어진 미술의 꿈, 누적된 커리어가 용기를 주는 법
2017년 03월 27일 (월) 김동건 기자 gunnykddong@ewhain.net

[국경 너머 기회찾아] ③런던 Salt&Vinegar Tour 박소연 동문

  풍요로운 문화의 도시 런던, 그 문화의 중심에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가 두 축을 차지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은 전 세계의 문화유산을 총망라하는 대규모 박물관이며, 내셔널갤러리는 13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유럽 회화 2300점을 모아둔 영국 최초의 국립 미술관이다. 이와 같은 대규모 예술 공간을 한 개인이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예술 전문 투어를 진행하는 '솔앤비투어(Salt&Vinegar Tour)'의 박소연(서양화·03년졸) 동문을 런던에서 만났다.

 

   
 
  ▲ 사진=전샘 기자 rkddkwl822@ewhain.net  

 

  일관된 커리어가 열어준 해외취업의 기회

  박씨는 런던의 투어회사인 ‘솔앤비투어(Salt&Vinegar Tour)’에 몸담고 있다. 한국과 달리 영국의 투어회사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설립할 수 있으며, 엄격한 방침 하에 운영된다. 그 절차 중 하나는 블루뱃지(Blue Badge)다. 영국관광청에서 부여하는 공인가이드인 블루뱃지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자격의 투어회사 자격증이다. 솔앤비투어는 이 까다로운 자격증을 부여받은 몇 안 되는 투어회사 중 하나다.

  “제가 런던에 있을 때 솔앤비투어는 신생 투어 회사였어요. 물론 불안정한 신생 회사라는 점이 걱정되기도 했죠. 그럼에도 영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았다는 점과 더불어 각 분야별로 투어를 진행한다는 점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미술, 음악, 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한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특정 분야만 체계적으로 투어를 진행하거든요.” 

  솔앤비투어에서는 일관되게 미술의 길을 걸어온 박씨의 커리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씨는 예술고등학교 및 본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본교 대학원 예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그는 미국 뉴욕대(NYC)에서 동일 학과를 수료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삼성 로댕 갤러리에서 도슨트로 지냈으며, 도슨트를 그만둔 후에는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삶은 미술 그 자체였다. 

  “나중에 저를 뽑은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술에 있어 일관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제가 솔앤비투어가 추구하는 전문성 있는 투어의 가치에 부합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신생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제게서 미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 등 여러 가능성을 봤던 것 같아요.” 

 

 
 
▲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박소연 동문. 사진=김동건 기자 gunnyddong@ewhain.net

 

  나의 일터는 대영 박물관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

  비록 박씨는 솔앤비투어에 속해있지만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대영 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박씨는 자신이 하는 일의 장점으로 유연한 업무시간을 꼽는다. 일하는 시간이 고정돼 있지 않고 자신이 편한 근무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워킹맘인 그에게 매력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투어는 평일에 2개씩 잡히고, 주말은 이보다 많아요. 출근은 오전10시고 이때부터 2시간 정도 내셔널 갤러리나 대영 박물관에서 미술 작품을 설명하죠. 설명이 끝난 후에는 1시간 정도 쉬고 다시 오후4시까지 설명을 진행해요.”

  그는 영국에 온 많은 관광객이 대영 박물관은 반드시 가지만 내셔널 갤러리는 쉽게 지나친다고 말했다. 두 곳에서 모두 투어를 진행하는 그는 내셔널 갤러리의 매력이 저평가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곤 하지만 미술관의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내셔널 갤러리는 감상하는 데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죠. 사소한 점부터 말하자면, 의자도 감상 환경을 고려해 배치돼 있어요. 또, 모든 시대를 총망라하는 작품을 보유하고 있기에 그 어떤 미술관보다 시대 순으로 정리가 잘 돼있죠. 서양 미술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고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는 데 최적이에요. 실제로 투어 진행 후 내셔널 갤러리가 정말 좋다는 손님들이 많은데 그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런던이었다”

  박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리어를 지니고 있었던 그가 왜 갑자기 런던으로 오게 됐으며 새로운 직업을 구하게 됐을까. 박씨는 웃으며 답했다.  

  “결혼을 했어요. 남편은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런던에 살았고 런던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런던으로 반드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나중에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결혼은 이성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냥 생각이 없기 때문에 결혼하는 거지, 생각이 많으면 결혼 못해요.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런던이었어요. 

  본교 및 뉴욕대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도슨트부터 독립 큐레이터까지 화려한 경력을 쌓던 그는 런던에서 더 이상 꿈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력이 단절된 기간동안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다고 회고했다. 

  “사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처음에는 상실감이나 아쉬움을 못 느꼈어요. 결혼을 하고나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런던의 11월은 오후3시 쯤에 해가 지고 비도 많이 와서 가장 우울한 시기인데, 그때 런던에 처음 도착했어요. 마침 입덧을 했던 저는 몸조리 하느라 우울할 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결혼 생활에도, 런던이라는 새로운 공간에도 적응을 해야 했고, 아이까지 생겨 엄마라는 신분에도 적응을 했어야 했죠.”

 

  다시 생겨난 커리어에 대한 갈망

  그러나 런던에서 점차 자리를 잡고 아이도 성장하자 그에게도 생각을 할 여유가 주어졌다. 어느새 박씨는 한국에서 미술 작품을 설명하며 느끼던 행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로댕 갤러리에서 도슨트 활동을 할 때가 자꾸 생각 났어요. 주로 현대 미술, 개념 미술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그 때 정말 행복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사람들이 내 설명을 경청하는 데서 성취감을 느꼈죠. 그래도 제가 런던에 있는 것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런던에는 대영박물관부터 내셔널 갤러리까지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넘쳐나잖아요. 물론 그런 곳에서 미술을 설명하는 일을 구하기 쉬운 것은 아니죠. 하지만 오래 쌓아온 커리어로 다른 분야보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게 됐어요.”

  그때 마침 솔앤비투어에서 박물관 및 미술관을 전문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직원을 뽑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솔앤비투어와의 만남을 통해 박씨는 잠시 잃었던 자신의 커리어를 런던에서도 이어갈 수 있었다.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씨가 한국에서 도슨트 생활을 끝내고 독립 큐레이터 활동을 할 때, 문화재단으로부터 펀드를 받아 필리핀과 한국의 독립 작가들이 함께 여는 전시를 기획하곤 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신생 독립 작가들을 위해 전시를 열고 그들을 육성해내겠다는 꿈을 자연스레 꾸게 됐다.

  “그 꿈은 한국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런던에 오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신생 독립 작가들을 키워내려면 제가 먼저 큐레이터가 돼야 하는데, 런던에서 다시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처음부터 공부하고 엄청난 시간을 쏟아야 하거든요.”

  런던으로 건너오며 꿈을 잃은 그에게 솔앤비투어에서의 경력은 또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넸다.

  “막상 솔앤비투어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니 조금씩 희망이 생겼어요. ‘아, 내가 지금도 이 일을 하니까 한국에서 꿈꿨던 것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육성한 신생 작가들의 전시가 언젠가 런던에서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꿈을 지금 바라고 있어요.”

 

  이화인에게 보내는 조언

  “이화에 다녔을 때 저는 학교에 잘 적응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아웃사이더처럼 겉돌고 방학 때마다 여행 다니며 시간을 보냈거든요. 아마 저같은 친구들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경험이 독립성을 키우는 데에 큰 도움을 줘요. 또, 그러한 독립성을 키움으로써 정신적으로 보다 단단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요. 이 경험이 학창시절에는 조금 외롭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해외 생활을 하며 그 시간들에 감사하게 됐어요.”

  또, 그는 1998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Elizabeth) 2세가 본교에 방문했던 때를 회고했다.

  “제가 런던에 살면서도 보지 못했던 영국 여왕을 대학생일 때 봤었어요. 그때 학생문화관에서 여왕이 손을 흔들고 우리 학생들 다 같이 환호 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영국 여왕뿐만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등 국내·외 성공한 여성 리더들은 꼭 이화에 온단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내면화시킬 수 있는 거죠. 나 또한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어느새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졸업 쯤이면 느끼게 될 거예요.”

 

 
 
▲ 박소연 동문과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1888). 사진=김동건 기자 gunnyddong@ewhain.net    

 

  박소연 동문 그리고 해바라기

  내셔널 갤러리 내부의 레스토랑에서 박씨와 식사 및 인터뷰를 마친 후 촬영을 위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평소 오후6시면 문을 닫는 이곳은 오직 금요일만 오후9시까지 야간 개장을 한다. 비록 야간 개장을 하더라도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낮보다는 현저히 고요하다. 고요한 전시장을 뚜벅뚜벅 걸어가던 박씨는 한 그림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1888)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늘 감동 받는 그림이기도 하죠. 이 작품은 유화 물감을 두껍게 칠해 해바라기의 강한 생명력과 입체감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아요. 동시대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입체감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죠.”

  결혼, 육아 그리고 해외생활까지. 어느 한 가지만 하더라도 벅차 보이는 삶의 과제들 속에서 박씨는 자신의 꿈을 이어갔다. 그의 강인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눈동자에는 굳센 해바라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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