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너머 기회찾아] ②파리 Financial Times 오윤선 동문

  관용과 낭만의 도시 파리. 매 방학마다 이화인들의 여행코스로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도시다. 혹자는 그곳을 잊지 못할 낭만의 도시로, 혹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실망스러운 도시로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와 별개로 프랑스, 특히 파리는 여행자들에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여행지가 아닌 터전으로서의 파리는 어떨까? Financial Times(FT) 파리 지사에 근무하는 오윤선(정외·07년졸)동문을 만나 현지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 파이낸셜 타임즈(Fimancial Times) 파리 지사에 근무하는 오윤선 동문

 

  전공에 연연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을 살리길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오씨는 자연스럽게 해외 문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생겼다는 그는 ‘내가 언젠가는 저 나라에서 살 수 있겠구나’하는 직감이 들었다고 한다. 17살에 가졌던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이 약 8년의 시간을 지나 FT의 Global Client Associate Director로 이어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씨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졸업 후 국내에서 IBM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다 파리로 넘어가 셀린느와 샤넬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현재는 FT의 Luxury advertising 부서에 몸담고 있다. 전공을 살렸다고 생각하기엔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한 경력 10년을 생각하면 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아닌 한 학부 때 배우는 내용은 굉장히 포괄적이라는 거예요. 대학교 저학년 때의 공부가 직접적으로 본인의 직업과 연관 되는 경우는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학부에서 배운 전공은 의사소통을 하고 사고를 발전시키는 데 바탕이 되는 공부였어요. 직업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기초가 된 셈이죠.”

  오씨는 인터뷰 전반에 걸쳐 ‘전공에 얽매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건넸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학부의 전공은 평생의 직업과 직관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전공으로 보여주겠다는 마음보다는 지나온 경력으로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경력을 쌓아가는지가 더 중요해요. 물론 저도 IBM에 처음 취업할 때는 학교 타이틀과 제 전공이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회사는 아무도 신입사원에게 전문지식을 기대하지 않아요. 단지 그 사람의 역량을 볼 뿐이죠. 회사에서 필요한 건 대화능력, 빠른 이해력, 순발력이거든요. 이런 건 전공에서 배울 수 없는 능력이잖아요.”

 

  일관성 있는 경력을 통해 설득력을 얻어라

  중구난방식의 경력보다는 일관된 이야기가 있는 경력을 강조하는 그는 스스로가 ‘이야기 있는 경력’의 산 증인이다. 졸업 후 거친 4번의 경력들이 한 데 모여 오씨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처음 IBM 마케팅 부서에 취직한 이후 3년을 일하며 MBA를 준비했다. 해외취업을 위해서는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첫 직장으로 IBM을 택한 것도 제가 취한 전략이었어요. 국내 기업보다는 외국계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기 수월하다고 판단했거든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MBA를 준비했고 그게 전환점이 됐죠. 왜 프랑스 기업이 자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인 나를 데려와야 하는지, 그 이유가 필요했어요. 만약 해외취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저처럼 많은 나라 중에서 왜 하필 프랑스며, 왜 하필 그 분야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만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줄 수 있죠.”

  오씨가 졸업 후 거쳐 온 길은 현재 그를 설명하는 좋은 이야기가 됐다. 수많은 나라 중 한 곳 프랑스, 그중에서도 FT의 Luxury advertising(명품 광고)부서에 근무하게 되기까지 그의 경력 하나하나가 유기적인 연결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파리는 명품이 발달한 나라다. 또한 FT를 읽는 구독자 층은 40~50대 상류층이다. 도시의 특성과 구독자의 성격이 결합돼 FT 파리 지사는 Luxury magazine에 특화됐다. 그의 업무는 40~50대 상류층을 공략하고자 하는 기업을 상대로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잠재적 소비자가 구매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IBM을 퇴사한 이후에는 파리로 넘어와 MBA에서 럭셔리 경영을 공부했어요. 이후 MBA 석사과정을 병행하면서 셀린느와 샤넬 두 브랜드의 마케팅 부서에서 인턴을 거쳤죠. 말하자면 첫 직장, MBA 석사, 두 번의 인턴경험이 FT 취업으로 이어진 셈이에요. 실제로 FT가 제 경력사항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어요.”

 

  꿈꿔온 도시 파리, 편리함 대신 얻은 일상의 여유

  고등학생 때의 막연한 희망에서 구체적으로 해외취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교환학생이었다. 학부 3학년 때 1년 간 오스트리아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그는 한국인이 단 둘 뿐인 타지에서 견문을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오씨는 여행을 몇 달 다니는 것과 일 년을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교환학생은 결국 학생의 삶이잖아요. 부모님의 금전적인 도움으로 사는 것과 현지에서 돈을 벌며 생활하는 삶은 또 다르거든요. 내가 이렇게 1년 동안 재미있게 보냈는데, 실제로 여기서 살면 어떨까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도전하고 싶었고 그게 취업으로 이어졌죠.” 

  여러 박람회와 학원을 통해 본격적인 해외취업을 준비했다는 그는 이제 어엿한 파리생활 8년차다. 첫 직장에서 삼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꿈꿔온 파리의 사회인이 된 그에게 한국과 프랑스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들어봤다.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문화예요. 한국은 대부분의 회사가 위계적인 조직문화로 이뤄져 있죠. 프랑스는 직책에서 과장, 부장 등이 없어요. 물론 매니저가 있지만, 그렇다고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요. 아니면 아니다, 부당하면 부당하다고 말하죠. 업무 시간에 대한 개념도 달라요. 한국은 야근이 일상화 됐고, 상사 눈치를 보느라 일부러 늦게 퇴근하기도 하죠. 여기는 잦은 야근이 오히려 그 사람의 무능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오후 6시면 퇴근하고 여가를 즐겨요. 프랑스는 일과 여가의 밸런스가 잘 맞는 나라예요.”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득과 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 좋아요. 그게 원동력일 수 있죠. 그러나 그 환상이 깨지는 날에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밀려올 거예요.”

  수평적인 사내 분위기, 회식과 야근에 자유로운 회사, 의견을 말하는 데 스스럼없는 분위기…. 꿈의 직장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FT지만 오씨는 해외취업에 대해 마냥 낙관적이지 않았다. ‘헬조선’을 외치며 해외취업을 유일한 오아시스로 믿고 있는 청년들에게 오씨가 건넨 조언은 조금 무거웠다. 

  “한국의 청년들이 취업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아요. ‘헬조선’이라는 불만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순히 취업만을 생각하며 유럽에 오는 건 위험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있는데, 프랑스는 이미 너무 발달한 나라잖아요. 또, 고용된 사람을 해고하기 어려운 구조라 새로운 고용도 잘 생겨나지 않아요. 유럽의 젊은이들도 취업을 위해 아시아로 나가고 있어요. 이런 국외 상황을 모르고 무작정 해외취업에 뛰어든다면 감당할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해외취업의 장점만을 전부로 여기기에는 이쪽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한국에서 누리는 편리함을 포기할 각오가 돼있는지도 되물었다. 한국은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통화 한 번으로, 심지어는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그 흔한 편의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후 9시~10시만 돼도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한국의 서비스를 생각해보세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잖아요. 그 말을 뒤집는다면, 누군가는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지려면 그만큼 포기하는 게 있지 않겠어요? 프랑스에서 일을 좀 덜 하는 대신, 한국에서 누리는 편리함은 포기하는 거죠.”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막연하게 천국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오씨의 조언은 풍선처럼 부푼 마음을 가라앉게 할 대답일 수 있다. 그러나 오씨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힘줘 강조했다.

  “환상보다 먼저 정해야 하는 건 내가 해외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예요. 커리어에 대한 간절함이 있고, 국제적인 경험을 쌓고 싶다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세요. ‘내가 해외취업을 통해 쌓고 싶은 경력은 뭐지?’, ‘내가 원하는 직업이 있는 일자리는 어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정보를 찾아야 해외취업에 ‘정말로’ 성공할 수 있어요.”

 

  8년차 파리지앵이 말하는 현지생활 Tip

  ① 주거지는 안전한 구를 최우선으로, 직접 가볼 것

  “파리는 20개의 구로 이뤄져있어요.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생각 할 부분은 구역을 정하는 거예요. 구에 따라 치안이 천차만별이라, 안 좋은 구역은 아무리 좋은 집을 구해도 위험해요. 구를 고려해 집을 골랐다면 반드시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해요. 프랑스는 좁고 오래된 건물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사진과 다른 경우도 많아요. 요즘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도 많으니까 돈이 좀 들더라도 부동산을 통해 매물을 구하는 게 좋아요.”

 

  ② 어려움이 닥쳐도 절망하지 말 것, 자기만의 해결책을 만들 것

  “차이를 받아들이세요. 비판은 수용하되,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불어를 예시로 들면, 한국인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어민처럼 되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꾸준히 공부하는 거죠. 저도 프랑스에 온지 8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불어 공부 하거든요. 문화 차이에 부딪히면 현지인 동료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세요.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잘 관찰하고 그걸 바탕으로 자기만의 극복 방법을 만들어가는 게 좋아요.”

 

  ③ 해외취업 워밍업, 사소한 부분부터 국제적인 견문 넓히기

  “국제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가령 해외에서 사용할 메신저나 포털을 미리 사용해보는 식으로요. 한국인들은 보통 네이버나 카카오톡만 사용하는데, 구글이나 왓츠업처럼 국제적인 메신저나 포털을 미리 경험해 보세요. 외국 신문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보며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 내가 해외취업에서 적응할 수 있겠구나, 혹은 취업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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