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며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대학보는 10대부터 70대까지, 저마다의 성실함을 담아 시간을 달리는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각 세대별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그들이 마주한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중년 비혼·기혼 여성,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30일부터 5주간 연재한다. 

한 사람이 성장하며 스스로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기를 사춘기(思春期)라 부른다. 사춘기라는 한자어를 뜻 그대로 해석하면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많은 생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어떤 어른이 돼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채다솔(14·여)씨를 만났다. 그는 주위 어른들 사이에서 “요즘 사춘기라 그러니까 놔둬라”는 말을 들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틀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회갈색 떡볶이 코트가 잘 어울리는 채씨를 14일에 만났다. 

평소 조용히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채다솔씨가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평소 조용히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채다솔씨가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현 사진기자

 

성인과 아이 가운데 그 어딘가, 중2

채씨는 “초등학생 때와 달리 중학생이 되니 철학적인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책과 판타지 소설을 읽던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중학생이 된 후 심리학과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22년까지 “학교 가는 게 싫고 공부하는 것도 재미없다”고 느꼈던 채씨는 중학생이 된 후 심리학 분야의 책을 읽고 선생님,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이 멋있게 성장하고 원하는 곳에서 일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현재 “65% 정도 사춘기를 지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커갈수록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나이 드는 게 좋다”고 말했다. 채씨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할 수 없는 운전 면허 따기, 먼 훗날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성인이 된 모습을 상상한 채씨는 “운전 면허를 따서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놀러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장 2년 뒤 고등학생이 됐을 모습을 상상해 보면 “공부가 어려워지니 진도 따라가기가 힘들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런 걱정이 있음에도 주변에 잘 휘둘리지 않는 굳건함을 지닌 그는 “지금 하는 것처럼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춘기를 지나며 관심 분야의 책을 읽고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학교 수업과 독서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시작한 채씨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2030과 그 윗세대 여성들은 20대 중반이 넘으면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등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 타임라인을 좇아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채씨는 “취업이나 결혼을 해야 하는 적정 시기가 있긴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며 “여성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타임라인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2009년 태어난 채씨는 사회가 정한 여성의 타임라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살아온 것이다. 

 

인간관계가 그에게 알려준 것

“중1 때는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놀기도 했는데, 2학년이 되니 귀찮아져서 자주는 안 다녀요.” 채씨는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 침대에 누워 쉬는 것이 일상 속 즐거운 순간 중 하나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포기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혼자만의 방’을 답했다. 5년 전쯤부터 남동생 두 명에게 방을 양보하며 언니와 같이 방을 쓰게 됐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채씨에게는 자신의 방을 양보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포기였다.  

채씨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인간관계 형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채씨를 두렵게 만드는 것도, 성숙하게 하는 것도 인간관계다. 그는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마음의 법칙: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51가지 심리학’을 꼽았다. 채씨는 “‘일부 특성에만 주목해 대상을 판단하는 후광 효과’ 등의 책에서 나온 심리학 개념에서 인간관계 문제를 풀어내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채씨는 인간관계를 잘 쌓는 방법을 경험을 통해 찾고 있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 친구와 다투면서 ‘사람마다 다른 거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였어요.” 그 이후 채씨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다른 친구의 험담이 나오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피하고 항상 말을 조심한다. 올바른 인간관계를 쌓기 위함이다. “나를 싫어하는 친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죽을 때쯤 되면 제 주변에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남지 않을까요?” 이는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 맺는 것을 피하기보다는 늘 최선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 채씨가 내린 결론이다.

중학생이 된 후 심리학,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 중인 채다솔씨. 사진 촬영 중 짧은 쉬는 시간에도 책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중학생이 된 후 심리학, 철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 중인 채다솔씨. 사진 촬영 중 짧은 쉬는 시간에도 책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승현 사진기자

 

‘나’보다 ‘너’를 더 생각할 줄 아는 어른

채씨가 생각하는 ‘어른’은 나이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살피는 사람이다. 그는 “어른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50대~60대쯤 돼서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존경을 인생의 큰 가치로 꼽기도 한 채씨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존경할 만한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생활 속에서 많은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무렵,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할 만한 사람, 좋은 사람, 그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채씨에게 죽음은 두려움보단 호기심의 대상이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사회적으로든 가정적으로든 맡은 일을 모두 해냈을 때가 되면 좋겠어요.” 

또 채씨는 도예, 뜨개질 등의 만들기를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 그의 인생 목표 역시 할머니가 됐을 무렵 자신만의 멋진 창작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성공하는 것보다 할머니가 돼서야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고민 없이 말했다. 오랜 삶의 흐름이 담긴 작품이 그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채씨는 할머니가 돼 목표를 이룬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성숙해졌을 노년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 이외에 해줄 말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에게 화양연화는 삶의 큰 변화가 생겼을 미래일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변화일지 모르고 그로 인해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대학에 가거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처럼 인생이 크게 달라질 만한 일들이 새로운 행복의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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