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은 수많은 대학생의 고민이다.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해 방학 때마다 각종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준비한다. 어떤 이들은 스펙 쌓기보다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수년 간 이어지는 불합격에 포기하게 되면 그 시간들은 취업에 불리한 ‘공백기’로 남는다. 이대학보는 이러한 과정을 견뎌내고 ‘사회초년생’이 된 인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롯데백화점 F&B(Food&Beverage) 계열 입사 6개월 차 직장인 정민정(식영∙20년졸)씨를 만났다.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던 정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품 분야로 다시 방향을 정해 나아가고 있다. 

“졸업 전 ECC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 정민정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품 분야에 전념하여 현재 롯데백화점 F&B 계열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졸업 전 ECC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 정민정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품 분야에 전념하여 현재 롯데백화점 F&B 계열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다. 이승현 사진기자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고등학생 시절 정씨는 당장 눈앞에 주어진 입시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뒤로 미뤘다. 대학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 ‘특별한 관심 분야가 없으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공부하자’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다. 실생활과 밀접한 식품영양학은 공부할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진짜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그 일 마저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주변 친구들이 가장 많이 준비하고 있던 전문직 시험으로 눈을 돌려 공부를 시작했다.

전문직 시험 준비는 끝없는 활자와의 싸움이었다. 전문직 시험에 붙더라도 계속해서 이 분야를 공부하며 살 자신이 없었다. 정씨는 활자를 보며 공부하기보다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발굴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 시험 준비를 그만두자, 정씨가 치열하게 공부했던 약 2년간의 시간은 이력서에 고스란히 ‘공백기’로 자리했다. 어떻게든 공백기를 채우고자 비서로 취직해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짜여진 일정에 맞춰 돌아가는 업무는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내가 몇 살이 됐는데도 적성에 맞는 직장에 취업을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정씨를 휘감았다. 정씨는 걱정의 해답을 직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찾았다. 세상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났는데, 즐겁고 행복한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 시야가 좁았다는 걸 느꼈어요.” 

저마다의 다른 속도를 깨달은 정씨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공백기를 보완할 수 있는 ‘나만의 뾰족한 점’, 즉 강점을 만들기로 했다. 전문직 시험 준비, 비서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식품 분야에 전념한 이유다. 

비로소 사랑하는 일을 찾아

비서를 그만둔 후 정씨는 스타트업 밀키트 바이어(buyer)로 일하며 식품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정씨는 유명한 음식점의 메뉴를 밀키트로 만들어 가정에서도 만들 수 있도록 ‘맛집’을 찾고 기획하는 업무를 맡았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일에서 흥미를 느끼는 정씨에게 딱 맞는 업무다. 더 큰 기업에서 일해보고자 전환형 인턴을 준비해 올해 상반기 롯데백화점 F&B(Food&Beverage) 분야에 합격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에는 식품 관련 광고를 담당하고 있다. 

정씨는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고자 노력한다. 상사가 젊은 신입사원에게 기대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 백화점이나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발로 직접 뛰며 아이디어를 찾아야 하는 노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니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백화점 식품관의 여러 매장을 섭외하고 관리하는 바이어로서의 능력을 갖추고자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맛집을 찾아가 음식 사진을 촬영하고, 후기를 정리해 올리는 일명 ‘먹스타그램’을 운영한다. 숨은 맛집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이다.

스스로를 즉흥적이고 추진력 넘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정민정씨. 인터뷰 사진 촬영에서도 즉각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서 즉흥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스스로를 즉흥적이고 추진력 넘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정민정씨. 인터뷰 사진 촬영에서도 즉각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서 즉흥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승현 사진기자

여유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정씨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은 ‘여유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쉽게 사지 못한 구슬 아이스크림을 맛별로 사는 경제적 여유, 그리고 남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경제적, 정서적인 여유 모두 포함된다. 그는 “20대 초반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지만 아직은 절반 정도만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지며, 사람들 각자가 갖는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이들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정씨는 ‘돈에 대한 책임감’도 지니게 됐다. “대학생은 학교에 돈을 내고 다니니 수업에 빠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회사는 제가 돈을 받으며 다니는 입장이니 빠지면 큰일 나잖아요.” 직장인에게는 고용주, 혹은 소비자의 돈에 응하는 실적을 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학생이 저지른 작은 실수는 용납할 수 있지만, ‘기브 앤 테이크’가 일어나는 기업 조직에서는 작은 실수의 영향이 크기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제 막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초년생이 된 정씨는 맡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맡은 일을 해냈을 때의 짜릿함도 느끼고 있다. “수많은 상품들 속에서 스타성 있는 상품을 가장 먼저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껴요.” 실제로 유명하지 않았던 맛있는 음식점을 정씨가 SNS에 공유한 이후 다른 유명인들이 다녀가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정씨는 “곧 유명해질 식당을 가장 먼저 찾아냈다는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막 좋아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이 저의 화양연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여러 가지 더 발견하고 온전히 즐기게 될, 30대에서 40대 정도가 제 화양연화일 것 같아요. 지금보다 그때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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