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며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대학보는 10대부터 70대까지, 저마다의 성실함을 담아 시간을 달리는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각 세대별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그들이 마주한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사회 초년생, 중년 비혼·기혼 여성,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30일부터 5주간 연재한다.

청소년들이 학업에 열중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입을 목전에 둔 고등학생들은 아침에 눈을 떠 늦은 밤 잠들기까지 대입 준비에만 집중하곤 한다. 21일 이대학보는 본교 사범대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이대부고) 전교 회장 박서진(17∙여)씨를 만났다. 중간고사를 마친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박씨는 활기가 넘쳤다.
 

본교 사범대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 전교회장 박서진씨가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전교회장 일은 오히려 공부를 하다가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본교 사범대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 전교회장 박서진씨가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전교회장 일은 오히려 공부를 하다가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승현 사진기자

 

지금 이 순간 그를 지탱하는 것

“중간고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게 이번 달 목표였는데 잘 끝냈어요. 이제 전교 회장 공약 이행을 위해 학생회 친구들과 회의 하려고요.” 박씨는 “몇 년 단위의 장기적 목표보다는 매일, 매주, 매월 할 일을 세워 지켜나가는 것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박씨는 지난 학기 전교 회장으로 선출돼 9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박씨는 시험이 끝난 직후였지만, 공약으로 내건 야구점퍼 제작을 이행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1학년 때 전교 2등을 해 교내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해 왔다. 전교 회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을 때 “성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변의 걱정도 따라왔다. 그러나 박씨는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기에 괜찮다”며 “전교회장 일은 오히려 공부하다가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공부도 학교생활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박씨는 “왜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찾기보다 주어진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이유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힘을 쏟아부었다면 성패에 상관없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정적인 박씨도 전교 회장의 업무로 인해 시험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는 문득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깊은 고민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쪽을 선택했다.

상위권 성적의 전교 회장인 박씨를 둘러싼 주변의 기대는 그를 더 열심히 살게 만들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정의한 저는 실제 제 모습보다 더 멋있고, 빛나고, 좋은 존재였어요.” 타인의 기대감에 부담을 느끼기보다 그 기대에 자신의 모습을 맞춰 나가려 노력한 것은 원동력이 됐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나타내는 소품으로 노트북을 꼽은 박서진씨. 그는 “친구들에게 (어떤 소품이 나를 나타내는지) 물어봤는데 평소 학교에서도 전교회장 일로 노트북 두드리는 일이 많으니 노트북인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자신을 나타내는 소품으로 노트북을 꼽은 박서진씨. 그는 “친구들에게 (어떤 소품이 나를 나타내는지) 물어봤는데 평소 학교에서도 전교회장 일로 노트북 두드리는 일이 많으니 노트북인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승현 사진기자

대한민국 모범생으로 살아가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

 학업과 전교 회장, 어느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매일 잠을 포기하면서 살아요.” 박씨가 할 일을 마치면 새벽이 된다. 학업 이외의 다른 업무를 하려면 새벽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잠은 뒷전이 됐다. 평일에는 보통 3시간 정도 잔다는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커피를 마시면 버틸 만하다”며 부족한 수면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잠을 포기하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그에게 “스위치가 꺼지는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그럴 때는 “야간자율학습이나 학원 일정이 있어도 우선 집에 가서 푹 잔다”며 “지쳐 있는 내 모습을 자책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체력을 보충한 뒤엔 다음 날부터 “하루 쉬었으니 조금 더 열심히 하자”고 생각한다.

 박씨는 자신의 가치관을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는 완전한 가치관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취미를 꼽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제 단점은 취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는 남에게 인정을 받거나, 해야 해서 하는 일과는 별개로 일 자체에서 흥미를 느끼고 행복한 순간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 밖에서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취미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취미를 찾을 시기를 대학 입시 이후로 미루고 있었다. 박씨에게 생긴 잠깐의 여유는 곧 쉬거나 자는 시간이 됐기에 취미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항상 뒷순위로 밀려난다.

박서진씨가 전교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대부고 학생회. 제공=박서진씨
박서진씨가 전교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대부고 학생회. 제공=박서진씨

서로 고민을 나누며 견고해진 우리들

 수면시간을 줄이고 하루 종일 학교에서 지내면서도 박씨가 힘든 매일을 버텨낼 수 있던 것은 친구들 덕분이다. “각자 자신만의 고민과 걱정이 있다 보니 오히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듯 박씨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학교 가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10분 남짓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실없는 농담을 건네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그가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소중함이다.

 박씨는 “고등학교에 와서야 누군가에게 힘듦을 솔직히 나누며 의지하는 것의 힘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중학교 시절 전국 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지만 실패했다. 바라던 목표가 한순간에 사라져 낙심했음에도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주변에 피해가 될 것 같아 스스로를 가뒀다.

그는 당시의 박씨에게 “주변에 있던 좋은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내려놓아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고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친구들에게 안정적인 쉼터 같은 사람, 이는 박씨가 평소 주변에서 닮고 싶다고 생각한 모습이자 타인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다.

“대학생이 됐을 때가 제 삶의 화양연화일 것 같아요. 항상 사람들 앞에 서서 제 존재를 드러내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대학생이 돼 원하는 공부를 하며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로를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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