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은 한국 청년들의 꿈이다. 누구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원하지만 주택 가격이 치솟으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다.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 이상이지만 여전히 전월세 주택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대다수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에 이어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 놓아 버린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들린다. 한국에서 자가 소유는 누구에게나 간절하지만 꿈 같은 일이 됐다.

오스트리아 빈(Wien)의 시민들은 자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빈 시민의 60% 이상이 사회주택에 거주한다. 사회주택(social housing)이란 사회적 경제주체가 공급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시민이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오랫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택을 뜻한다. 사회가 살 곳을 보장하니 굳이 내 집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빈의 사회주택 건물. 벽면에는 1952년부터 1953년까지 건립한 빈 지자체의 주거 단지라고 쓰여 있다. <strong>문예찬 기자
빈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사회주택 건물. 벽면에는 1952년부터 1953년까지 건립한 빈 지자체의 주거 단지라고 쓰여 있다. 문예찬 기자

사회주택 입주 시 시민들은 보증금 개념의 입주자 부담금을 지불하고 매달 임대료를 낸다. 임대료는 교통 입지 조건과 주거 단지의 시설 규모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건축에 들어간 비용만큼만 집세를 받는 비영리 주택법에 근거해 책정된다. 원한다면 임대한 집에서 평생 살 수도 있고 자녀에게 양도할 수도 있다. 빌린 집에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 질 높고 저렴한(affordable) 주거를 추구하는 빈으로 향했다. 굳건한 정책적 토대 위에서 안정적인 공동체를 이룬 싸륵파브릭(Sargfabrik) 사회주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타인에게 곁을 내주는 삶

싸륵파브릭 주택 건물의 모습. 주민들은 통유리창 밖 넓은 테라스에서 각자 좋아하는 식물을 기른다. <strong>문예찬 기자
싸륵파브릭 주택 건물의 모습. 주민들은 통유리창 밖 넓은 테라스에서 각자 좋아하는 식물을 기른다. 문예찬 기자

싸륵파브릭은 시민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에 의해 세워진 사회주택이다. 협동조합은 본래 관(棺) 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해 약 250명이 거주할 수 있는 공유 주택으로 바꿨다. 싸륵파브릭의 건축가이자 주민인 프란츠 슘니츠(Franz Sumnitsch)씨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는 주민들의 특성을 반영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집마다 큰 통유리창을 달고, 건물 지하엔 공용 수영장과 공연장도 지었다.

싸륵파브릭이 완공되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수요가 늘자 프란츠씨는 미스 싸륵파브릭(Miss Sargfabrik) 단지를 하나 더 지었다. 도로를 경계로 싸륵파브릭과 마주 보고 있는 미스 싸륵파브릭에는 도서관과 공용 부엌, 세탁실, 청년 밴드를 위한 지하 음악실도 생겼다. 1층 로비에는 주민들의 웃는 얼굴을 그린 그림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화가로 활동하는 한 입주민의 그림이었다. 폐쇄적인 아파트가 아닌 시골 마을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미스 싸륵파브릭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그림들. 주민들의 웃는 얼굴을 담았다. <strong>문예찬 기자
미스 싸륵파브릭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그림들. 주민들의 웃는 얼굴을 담았다. 문예찬 기자
싸륵파브릭 주택 단지에서 살고 있는 율리아(Julia), 베아(Bea), 해럴드(Harald)씨 가족(왼쪽부터). <strong>문예찬 기자
싸륵파브릭 주택 단지에서 살고 있는 율리아(Julia), 베아(Bea), 해럴드(Harald)씨 가족(왼쪽부터). 문예찬 기자

싸륵파브릭에서 사람들은 연결된다. 주민들은 개인 공간을 줄이는 대신 공용 공간을 넓게 사용한다. 19살부터 이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율리아 사그뮬러 쇤브룬(Julia Sagmüller Schönbrunn·45·여)씨, 그는 지금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율리아씨는 “조금 작은 집에서 살아도 옥상 정원, 도서관, 큰 부엌을 이용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공용 공간이 입주민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싸륵파브릭 단지로 들어가는 길은 주말이면 유모차 끄는 소리로 분주하다. 공용 수영장에서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기 수영 프로그램이 열린다. 협동조합은 수영장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연회비를 받아 공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쓴다. 이것은 지역 주민을 비롯한 이용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싸륵파브릭에서부터 트램(tram)으로 20분 거리에 살고 있는 나딘 로스니첵(Nadine Rosnitschek·41·여)씨는 “아기를 데리고 수영하러 온 지 두 달째”라며 “이곳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토마스 안델(Thomas Anderl·65·남)씨는 25년 동안 싸륵파브릭에서 살아왔다. 그의 아이들은 이곳 주민들과 함께 자랐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같이 넓은 커뮤니티였다”고 말했다. “모두가 모두를 알기 때문에 안전하고 완벽해요.”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가난한 자를 위한 건축은 저렴해 보여서는 안 된다.’ 빈 시가 추구하는 주택 건축의 모토는 ◆소셜믹스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에는 혐오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LH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엘사’라고 줄여 부르며 비하하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빈의 사회주택은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과 유사하지만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회주택을 짓는 시행사와 건축가들은 주택 외관은 다채롭고 웅장하게, 내부는 미래 주민들의 요구를 고려해 디자인한다. 주택을 통해 거주자의 사회적 신분을 짐작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프란츠 슘니츠(Franz Sumnitsch) 건축가가 미스 싸륵파브릭 단지 내 공용 도서관에서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strong>문예찬 기자
프란츠 슘니츠(Franz Sumnitsch) 건축가가 미스 싸륵파브릭 단지 내 공용 도서관에서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문예찬 기자

프란츠씨는 “거주자의 경제적 계층을 식별할 수 없도록 한 것이 빈 주택 역사의 결과”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심각한 주거난을 겪은 이후 빈은 새로운 주거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에서 직접 수많은 대규모 사회주택을 건설해 사람들이 살 곳을 만들었다. 당시 빈은 주택 가격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공공성을 띤 상품으로 전제했다. 임대료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통제하고, 변화하는 주거 수요에 공공기관이 직접 대응해 주택의 품질을 높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거를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빈에서는 진흥기금사회주택이 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인 시행사와 건축가는 주거 수요를 반영해 어떤 주택을 지을 것인지 아이디어를 낸다. 빈 시는 이를 선별해 주택 건설비의 약 3분의 1을 진흥기금 명목으로 지원한다. 여러 건설 주체들이 경쟁하면서 다양성을 살린 주택이 고안된다.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건축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싸륵파브릭도 이에 해당한다. 싸륵파브릭은 입주자 중심으로 설계된 공동체다. 주민들은 집과 집 사이 넓은 복도, 세탁실, 옥상과 수영장, 도서관, 공연장 등에서 만난다. 일상과 가장 맞닿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셜믹스는 사회적 계층이 양극화되는 것을 막고 화합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빈의 시민들은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생활하니 사는 집이 다르다고 차별받을 일도 없다. 지자체가 시민의 주거권을 보장한 것은 전체 주거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시민을 우선하는 주거 정책 덕분에 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거듭났다. 빈에서 활동하는 사회주택 전문가 이병훈 건축가는 말했다. “빈 사회주택의 실질적인 주인은 시민입니다.”

 

◆소셜믹스(social mix):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