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2년째 지속되는 총학생회(총학)의 부재, 인력 부족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자치 단위, 후보가 없어 결성되지 못한 단대 학생회까지. 우려의 목소리로 제기되던 학생 자치 문제는 코로나19를 거쳐 현실로 드러났다. 현상을 향한 분석에서 더 나아가 자치의 필요성을 되묻는 지금, 본지는 그 대안을 찾기 위해 2월11일~20일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Uppsala University)을 방문해 총학, 과학기술대학학생회(UTN·Uppsala Teknolog-och Naturvetarkär) 그리고 스튜던트 네이션(Student Nation)까지 총 세 곳의 학생 자치 조직을 취재했다.

학생회실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수많은 피켓들. 스웨덴 웁살라 대학 루이스 잉예마손 (Louise Ingemarsson) 총학생부회장은 웃으며 얘기했다. “지난 이자율 인하 시위 때 들던 피켓이에요.” 학생 대출 이자율 인상이 결정되자 웁살라 총학 측은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한국이라면 학생회의 사안이 될 수 없어 보이지만 웁살라 학생들에게는 다르다. “교육과 연관되죠. 대출 유무로 교육의 질이 달라져서는 안 되니까요.”

 

웁살라 대학 학생회실에 놓인 시위용 피켓. 학생 대출 이자율 인상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strong>이수영 기자
웁살라 대학 학생회실에 놓인 시위용 피켓. 학생 대출 이자율 인상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수영 기자

본교 총학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 지 2년째, 웁살라 총학은 거리에 나가 시위하고 지역 라디오와 해결방안을 논의한다. 상반된 풍경이다. 신자유주의 열풍과 코로나19가 스친 것은 스웨덴도 마찬가지인데, 무엇이 이들을 움직일 수 있게 했을까?

 

법으로 보호되는 학생 대표성, 정치적 효능감 키워

학생 혼자서 거대한 대학 조직과 맞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하지만 학생회나 부서에 속함으로써, 전 더 많은 힘을 가질 수 있었어요.

실제로 자신의 문제와 입장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웁살라 과학기술대학 학생회 학생복지부서 카이사 뱅겔린(Kajsa Wengelin) 연락관은 학생회 동참 이유로 ‘변화’를 답했다. 학교가 모두에게 안전한 생활 공간이자 일터로 존재할 수 있도록 바꿔내고 싶다는 것이다. 2022년 동안 휴학을 결심하고 학생회 활동을 시작한 뱅겔린 연락관의 생각처럼, 스웨덴에서 학생회는 현실을 바꿀 힘이 있다. 학생회는 국가, 대학,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지자체, municipality)가 인정하는 ‘학생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고등교육법령 7절(The Swedish Higher Education Act Section 7)에 따르면 학생들의 상황이나 수업, 프로그램과 관련한 결정과 준비가 이뤄질 때 학생들은 본인을 대표할 자격이 있다. 학생 대표성(student representation)이 대학 자율에 맡기는 사안이 아닌, 법적 의무로 보장되는 것이다. 단순 강의평가부터 대학 내 상위 논의까지, 모든 수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생 의견은 일정 수준 이상 반영돼야 한다. 한국 학생회가 그토록 요구했던 커리큘럼 내 학생 의견 보장이, 스웨덴에서는 법으로 보호되는 의무 사항이다.

잉예마손 총학생부회장에 따르면 정부나 지자체 또한 학생 관련 법안이나 정책을 시행하기 전, 학생회에 제안서를 보내온다. 학생회는 학생 당사자이자 학생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됐기에 그들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샬델라(Nicholas Cialdella) 버디 코디네이터는 “이곳 대학 학생회들은 국가적, 정치적 수준에서 훨씬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며 “대학 학생회는 대학 내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다른 국가들과 다르다"고 얘기했다. 그에 따르면 학생회는 정부 정책 실행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스웨덴 중앙 정부가 지자체에 할 일을 배당하면, 학생회가 제대로 이행하는지 이중 점검하는 방식으로 국정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빈번하게 쏟아지는 협업 요청에 잉예마손 총학생부회장은 “학생 의견이 전부 반영되지 않는다 해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독특한 일"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전역에 시행될 법안을 제가 직접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은 학생회로서 유익(beneficial)해요."

 

돌로레스 포스 총학생부회장이 스웨덴의 정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strong>이수영 기자
돌로레스 포스 총학생부회장이 스웨덴의 정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수영 기자

정부 및 지자체가 학생회 지위를 인정하는 방법에는 금전적 지원도 포함된다. 돌로레스 포스(Dolores Fors) 총학생부회장에 따르면 현재 웁살라 총학은 주택 부족과 학내 다양성 보장(ESMeralda)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택 유무, 성장 배경 등으로 교육 수준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기조에 따라 시행되는 해당 프로젝트들은 국가와 지자체, 대학 세 곳 모두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다.

포스 총학생부회장은 “돈은 프로젝트에 묶여있다”며 효율적 지급 방식을 강조했다. “돈을 받는다고 해서 저희 예산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상위기구의) 예산 내 운용되죠.” 정부와 지자체는 학생회에 프로젝트를 위탁하고 직접적으로 지원하며 재정 안정성을 제공하고, 학생회의 효능감을 보장한다.

 

정규직 통해 부원들 삶도 지속 가능토록

점점 사라지는 학생회 지원자들, 과도한 업무로 지속 불가능하다 평가받아온 학생회의 조직적 문제에 웁살라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하로 덤 그라우(Haro De Grauw) 박사과정 학생대표에 따르면 스웨덴 또한 개인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스웨덴 청년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계산적(transactional)으로 변하고 있죠.” 노조를 비롯한 사회 내 다양한 하위집단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스웨덴이지만, 그는 “장기적인 공동 목표보다 단기적인 개인 이익을 중시하는 시대에 도달했다”며 사회 변화를 진술했다.

 

총학생회 건물 내 근무 중인 하로 덤 그라우 박사과정 학생대표 <strong>이수영 기자
총학생회 건물 내 근무 중인 하로 덤 그라우 박사과정 학생대표 이수영 기자

코로나19는 문제를 악화시켰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며 학생회의 존재부터 다시 인식시키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라우 박사과정 학생대표는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를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빌딩을 걸어가며, 공지사항 게시판을 스쳐 지나가며 학생회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조직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어요. 이젠 그런 창구 자체가 차단됐죠.”

비대면 학교생활로 학생들이 학생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과 학생회를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개인주의적 분위기의 확산까지. 학생 자치 조직의 인력난은 스웨덴에도 동일하게 제기된 문제임에도 웁살라 학생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달라지는 사회 분위기에도 웁살라 학생회가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정규직'(full-time worker)이었다.

웁살라의 학생회는 크게 선거를 통해 채워지는 ‘선발직’과 학생회에게 임금을 받고 고용되는 ‘정규직’으로 나뉜다. 그리고 모두 학교로 하여금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보장받는다. 샬델라 버디 코디네이터는 스웨덴과 자신의 모국인 미국의 학생회를 비교하며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미국 학생이 학생회를 시작하고 싶다면 모든 일들을 자기 혼자 해내야겠죠. 하지만 정규 업무시간을 채워 일하는 직원이 존재한다는 건, 설사 그들이 그리 긴 시간을 일하지 않을지라도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스웨덴의 학생회는, 직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말 전문적인 조직처럼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거든요.”

웁살라에서 휴학을 하고 학생회에 전념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학생회 업무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학업 병행보다 오로지 학생회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재학생과 휴학생, 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은 학생회원으로 취급하지 않는 본교의 총학생회칙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2020년 본교 제53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인은 휴학으로 인해 당선이 취소됐고, 전 학생회 구성원 ㄱ씨는 학교에 매일 살다시피 상주하며 학점을 1점대로 유지해야 했지만, 웁살라의 학생대표들은 불이익 없이 휴학을 택할 수 있었다.

 

학생회실에 앉아있는 루이스 잉예마손 총학생부회장 <strong>이수영 사진기자
학생회실에 앉아있는 루이스 잉예마손 총학생부회장 이수영 사진기자

잉예마손 총학생부회장은 정규직을 통해 대학이 학생회의 필요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가 인정하는 거죠. 공부를 쉬고 학생회 일만 하면서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걸. 그렇게 엄청난 양은 아니지만, 일반 학생보다는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받음으로써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학생회를 위해 1년간 휴학을 결정했다는 벵겔린 연락관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버리는 시간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저는 미생물학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쪽으로 나아갈 생각이에요. 학생회가 제 진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있죠. 하지만 변화를 일궈내고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은 지금 제게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1년을 완전히 버렸다고 표현할 수는 없어요.

 

학생 문제가 사회 문제로, 학생 자치의 새 국면

스웨덴 국가학생회(SFS·The Swedish National Union of Students)에서는 최근 의대 학생들의 휴식권이 뜨거운 감자였다. 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진행되는 인턴십 날짜가 크리스마스와 겹치기 때문에 의대 학생들이 일 년 내내 쉴 수 없다는 것이다. 휴일이라도 공부를 멈출 수 있어야 한다며 공부가 아닌 ‘쉴’ 권리를 학생들이 주창하고, 이를 국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놀라운 광경이다. 정부의 지시를 학생이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한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1988년 본교에 입학한 오지은 전(前) 총학생회장은 1980년대 한국 대학의 학생회를 떠올렸을 때 뜨거운 시기였지만 안타까움도 많았다고 기억했다. 학생 자치 조직이 가장 활발했다고 평가받지만, 해결해야 하는 거대 정치 의제에 묻혀 많은 변화의 목소리가 떠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 전 총학생회장은 “총학을 꾸릴 때 자주적인, 생활 밀착형 학생회를 함께 만들자는 의식이 강했지만, 미시적 문제제기들은 끝내 거대 정치 이슈에 휩쓸려 하기 힘들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회의 미온적 태도도 마찬가지다. 오 전 총학생회장은 “학생회는 자기가 자기 힘으로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학교가 학생을 전문가로 인정해 협업을 요청하는 등의 일은 없었다"며 “(감옥에 가는 등) 학생 운동의 실질적 위험성으로 인해 학교에서도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선을 그은 상황”이었다고 얘기했다.

학생 자치 조직의 부흥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판단한 시선도 있었다. 고민희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학생 자치 조직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며 “이는 학생운동과 같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됐기 때문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공동으로 해결할 시민 의제가 있었기에, 일종의 학생 지부로서 학생회가 활발히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국적 의제의 학생 지부로서 결집한 학생회는 공동 의제가 사라지는 순간 추동력을 잃고 만다. 조무형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학생들의 비정치화 혹은 탈정치화가 가속화되고, 공동체 활동보다는 개인 학업과 진로 준비 등으로 학생들의 강조점이 옮겨짐에 따라 학생 자치 조직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많이 약해지게 됐다”고 현 상황을 해석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가 드러난다.

스웨덴 학생회 또한 학생들의 정치적 입장 표명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하지만 스웨덴 사회는 학생의 사안을 중요 주제로 인식한다. 클라라 프뢰베그(Klara Fröberg) ◆학부 코디네이터(faculty coordinator)는 웁살라 총학에 대해 시민단체 성격이 더 강하다고 얘기했다. “학교와 분명히 연관된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맞죠. 하지만 학교에 속한 단체는 아니에요. 학교로부터 돈을 지원받지만, 완전히 분리된 단체죠.”

 

클라라 프뢰베그 학부 코디네이터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trong>이수영 기자
클라라 프뢰베그 학부 코디네이터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수영 기자

그라우 박사과정 학생대표는 “독립성을 보장받은 학생회는 조직적으로도 사회가 원하는 결과물을 생산할 만큼 성숙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직원들을 비롯해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 웁살라 학생회가 거치는 여러 제도적 절차는 사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의 양질의 결과를 도출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프뢰베그 교직원 코디네이터 또한 “웁살라 학생회는 학생 의견과 정부, 학교 등 조직 이견을 조율하고 전달하는 중간자리에 서 있는 듯하다”며 “이 기반에는 사회가 학생회의 의견을 믿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전제돼 있음을 느낀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는 게,

웁살라 총학생회의 주목적(main goal)이에요.

학생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학생 자치 조직의 목적을 묻는 말에 포스 총학생부회장은 ‘교육'이라 답했다. 하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교육'은 단순히 수업권만을 포함하지 않았다. 수업을 지탱하기 위한 안정적인 거처, 수업 내 받는 대우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교내 다양성. 학생이 학생으로서만 평가받을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낼 수 있는 환경까지. 이 모든 것은 ‘교육'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더욱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이를 위해 필요한 제반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웁살라 학생회의 회의는 오늘도 계속된다.

 

◆학부 코디네이터(faculty coordinator): 일터 내 학생 대표성(student representation), 교육 품질 문제 등을 책임지며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느끼는 학생들을 상담하는 직무. 이외에도 단과 대표들의 전체적인 교육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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