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혀있는 학문관 2층 총학생회실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굳게 닫혀있는 학문관 2층 총학생회실 김지원 사진기자

이기심, 스펙 경쟁, 개인주의. 학생 개개인에 대한 비판은 10년간 계속됐지만, 학생 자치가 위기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개인주의로 인한 결속력 약화가 원인이 맞긴 한 걸까. 본지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본교의 학생 자치 조직 구성원들을 만나봤다.

 

학생들 무관심하다는데… 온라인 속 의견은 쏟아진다

혹시 다들 중앙도서관 열람실 개방 시간을 24시간으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글을 써줄 수 있을까?

기성 언론은 학생들의 무관심을 비판했지만, 시선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순간 학생들이 마냥 자신의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 학생들은 활발히 학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채민(소비자·21)씨는 학내 사안에 관해 얘기할 때 친구들이랑 얘기를 나눈 적도 몇 번 있지만 "하게 된다면 학교 커뮤니티를 이용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커뮤니티 사이트 속에서 학생들이 다루는 사안들은 총학생회장 투표부터 봉사활동 내용 인정까지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다양한 주제들이다. 2020년 본교 공식 소통창구 ‘이화에 바란다’에 접수된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약 5000건. 교내 점자블록 교체 요청부터 학과 개설 제안까지 학생들의 생각이 어린 다양한 건의 사항은 학교를 향한 학생들의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와 모순되게 학생회 구성원들은 학생 자치에 대한 재학생들의 낮은 참여도를 지속해서 호소하고 있다. 강심미화 제52대 조형예술대학 공동대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자 1학기 학생회 활동 평가 설문조사를 올렸지만 30명이 채 참여하지 않은 적도 있다”며 “목표 인원을 달성하기 어려울 때 학생 자치의 위기를 실감한다”고 전했다. 손지원 스크랜튼학부 공동대표 역시 “행사 참여도가 낮을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학생회의 구조적 한계

그렇다면 학생들의 관심은 왜 참여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 본교 미디어센터에서 재학생 2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 이화 미디어 리서치 결과 보고'에 따르면, 총학 건립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전체 응답자 중 12%에 달하는 학생이 '역량 부족'이 문제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학생회가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며, 학생들의 복지 및 생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53%의 학생은 '신뢰도 부족'을 원인으로 꼽을 만큼 총학에 불신을 표했다.
 

'2022 이화 미디어 리서치 결과 보고' 중 일부 <strong>출처=본교 미디어센터
'2022 이화 미디어 리서치 결과 보고' 중 일부 출처=본교 미디어센터


학생들에게 '역량 부족' 평가를 받은 학생회는 이미 그 누구보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등록금 반환, 전공 수업 확충 등 수업권 보장에 대해 학생 만족도와 의견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대학평의원회, 단과 대학별 요구안 전달 등 학생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제도적으로 마련돼있지만, 해당 통로들이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적 논의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학생회로 활동하는 고충을 묻자 강심 공동대표는 위와 같이 답했다.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학생회 측이 먼저 행정실에 학생 의견을 전달하고 싶다고 요청해야만 의견이 교수회의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과 학생회도 답답함은 마찬가지다. 하영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공동대표와 윤시원 정치외교학과 공동대표에 따르면 과 학생회는 한 달에 한 번씩 학생회의 활동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교무회의에 제출한다. 학칙, 성적 비율 등을 결정하는 교무회의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과 사무실 직원의 입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지난 교무회의 진행내용 또한 서면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학생회 측에서 보낸 문서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하 공동대표는 “회의에서 문서가 어떻게 검토됐는지, 반려되는 게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제출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고 전했다. 윤 공동대표 또한 “타인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부분이 답답하다"며 “학교와 학생 간의 직접 의사소통은 학과장님과 혹은 학과 사무실과 과대 간 일대일 면담이 유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적으로 이를 보장하는 부분은 미진하다”며 의견을 덧붙였다.

2021년 본교에서 실시한 재학생 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 개설 다양성’ 부문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최하위권이었다. 개선 요구가 높은 사안에 대해 학생회는 계속해서 학교 측에 건의하지만, 반영 가능성은 미지수다. 정지우 뇌인지과학부 공동대표는 “전임 교수 확충, 전공 강의 증설 등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며 소회를 털어놨다.

 

대표에게 집중된 업무 체계, 구성원 모두에게 부담돼

무엇보다 현재 학생 자치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다. 업무가 부서별로 나눠지지 못하고 최종 승인 권한이 있는 대표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 학생회 공동대표들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카드 뉴스 제작부터 정문에서 진행하는 각종 오프라인 홍보까지, 공동대표들은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하는 상황에서 학업까지 병행해야 한다. 과거 단대 학생회 일원로 활동했던 ㄱ씨는 “학생회로 일할 당시 신입생 키트 배부 등 학교가 담당해야 할 업무까지 맡았다”며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방학 때도 매일 학교에 와야 했고, 학기 중엔 새벽 4시까지 일하느라 학점이 1점대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ㄱ씨에 따르면 학생 자치의 위기는 예견된 것이었다. ‘이렇게 힘든 일’은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집행부원 측은 맡은 업무가 부족해 오히려 문제라고 얘기했다. 특히 축제와 같은 큰 행사가 부재한 지금, 집행부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더욱 축소됐기 때문이다. 신산업융합대학 학생회 집행부원 정채은(융콘·20)씨는 “업무의 대부분이 대표들이 결정할 문제이거니와 회의도 대표분들만 들어갈 수 있다"며 “결정 권한이 없는 집행부원들에게까지 업무가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정작 하는 일이 크게 없으니 성취감이 떨어진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필요성은 알지만... 학생회는 여전히 멀다

사회적으로 승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공론이 많았어요.

1988년도 본교에 입학한 오지영 전(前) 총학생회장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했다. “지금은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학교에서 시험을 연기하는 건 어렵잖아요.” 어려워 보이는 이슈여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회적 경험과 분위기가 높은 참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보현(경제·21)씨는 작년 본교에 입학했다. 새내기였던 그는 대학 생활의 절반을 보낼 때까지 총학생회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다. 지난 2년간 총학생회가 결성에 실패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바빠서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학생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음에 정씨는 아는 것이 없기에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없다고 얘기했다. 필요한 사업에 대해 서명과 투표는 참여하지만, 학생회의 존재가 단체 채팅방 속 글로만 느껴지니 가깝게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채영(디자인·20)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학생의 의견을 전달하고 대표할 때 학생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김씨는 “어떤 일이 발생했다고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으니, 그런대로 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고 추측을 말했다. 학생회의 노고와 필요성에 대해 인정한다고 해도 어떤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이뤄지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학생회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는 어렵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생회의 존재를 느껴왔다는 정희정(과교·20)씨는 “학생회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좀 더 좋은 것을 제공하고, 학교와 학생 대표로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회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과 학생회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학생회가 있으면 변화는 있겠죠. 내가 교육받는 환경이 어쩌면 나아질 거고 대학 생활이 조금 더 재밌어질 테니까요. 근데, 학생회가 하는 일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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