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본지는 1616호부터 1620호까지 학보메이트로부터 직접 여성학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변을 본교 전문가 선생님들로부터 들어보는 칼럼 코너 ‘똑똑, 여성학에 묻습니다’를 운영해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이에 1638호부터 1642호까지 코너를 확대 및 재연재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여성학과 관련된 학우들의 궁금증을 넘어 일상적인 고민 기반의 사연까지 폭넓게 답변을 들어봅니다.

 

두 번째 질문

새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현재 여성가족부는 존치되고 있지만,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페미니스트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궁금하다.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어온 여성가족부에 대한 공격이 선거 국면을 맞아 표를 얻기 위한 공약으로 등장한 것이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구조적으로 즉, 법 제도적인 성차별은 없으니 여성을 약자로 보는 여가부도 유지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남성을 역차별해서 갈등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여성운동은 한국의 낮은 ‘유리천장’지수와 같은 지표들을 통해 구조적 성차별 종식론을 반박하고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는 피해자와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부모 여성 등 정책 수혜자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드러냈다.

여가부 폐지론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도 등장했다. 많은 폐미니스트들은 2008년에도 그리고 최근 폐지 국면에서도 여성가족부의 정당성과 여성운동이 국가 제도를 통해 이루고자 한 성평등 실현을 위해 여성가족부 강화를 주장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찬반의 어느 입장에 서기보다 왜 정권이행기에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국가 기구의 폐지나 개편, 축소가 이야기되는지를 다시 질문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기획재정부나 법무부, 산업자원부와 같은 부처가 아니라 여성가족부인가를 주목해 보면, 정부 관료조직의 위계 구조를 볼 수 있다. 정책기구의 권한은 소관 법률과 예산, 공무원 정원으로 드러나는데 여성가족부는 정부 예산의 0.2%에 불과한 소위 ‘힘없는’ 부처이다. 정권 이행기의 조직 개편은 집권 정부의 힘을 내부적으로 관료사회에, 외부적으로는 지지 세력에 가시화하는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여성정책을 주변화하고 정치적 도구로 삼은 데에 일차적인 문제가 있다.

나아가 정부를 탈중립적으로 바라보면, 여성에게 구조적 평등을 보장한다고 하는 제도와 행정기구의 젠더를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언뜻 행정 부처들의 고위직 관료들을 떠올려보면 ‘검은 정장을 입은 50대 남자’가 이미지화된다. 조직의 고위직을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여지는 업무 관행과 문화, 비공식적 상호작용과 특정 직위에 대한 해석에는 조직 구성원의 젠더화된 인식이 내재해 있다. 페미니스트 정책/정치 연구자들은 정부 부처 고위직의 여성 비율이나 전체 공무원의 여성 비율을 지표 삼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위가 남성의 자리인 것처럼 인식되는 제도의 남성성 규범을 비판해 왔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정치학자 너말 퓨어(Nirmal Puwar)는 영국 정부와 의회가 백인 남성을 표준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제도 내부의 여성들은 ‘공간 침입자’ 같은 경험을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고위직에서 여성성을 감시 받고 능력을 과도하게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느낀다. 정부 내의 여성가족부도 이러한 공간 침입자와 같은 위치에서 있다. 유독 여성가족부 장관은 옷차림이나 언행에 주목을 받았고, 여성가족부는 업무 능력에 대한 언론의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국가 권력을 집행하고 공적 자원을 배분하는 권위 있는 역할에 여성이 부적절하다고 보는 젠더 편견에 기반해 있다. 그래서, 여성가족부 폐지론에 대한 저항은 한국 관료제의 남성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서 페미니즘 이슈이다.

다음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여성정책기구의 기능 축소를 통한 ‘여성’ 정책의 보수적 회귀로 볼 수 있다. 새 정부는 국정 운영의 원칙을 “국익, 실용, 공정, 상식”으로 제시하고 110개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여성가족부는 그중 2개 과제만을 담당한다. 48번 과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을 법무부, 농식품부와 함께, 64번 과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을 법무부, 방통위와 함께 담당한다. 단독 추진 부서로는 1개의 과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여성가족부가 업무적으로 관여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청년 주거·일자리·교육 등 맞춤형 지원은 국토‧금융‧고용‧중기‧교육‧국방‧국조실이,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한다. 여성의 삶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청년, 주거, 노동 정책 영역은 협업 부서도 되지 못했고 범죄 피해자, 가족 정책도 다른 부서와 함께 추진한다. 국방부가 단독 과제를 5개나 추진하고 협업부서로 2개 지정된 것과 대조적이다. 국정과제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부 부처별 업무 평가의 근거가 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추진하는 5년간의 정부 핵심 업무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새 정부의 주요 업무가 무엇인지, 국정 운영을 주도할 부처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정과제를 살펴봤을 때 여성가족부는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역할과 지위가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새 정부 여성정책은 범죄 피해자와 한부모 가족 같은 가시적 소수자에 대한 보호 위주의 여성 정책으로 회귀할 것임을 시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정책의 목표를 성평등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성평등의 개념은 열려 있다. ‘무엇이 평등이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성평등을 실현하는 전략들 속에서 결과적으로 구성되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남성과 같아지거나, 여성만의 차이를 보장받거나 사회 전반을 바꾸는 변혁이 될 수 있다. 여성정책이 여성들의 전통적 성역할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젠더 요구라는 개념은 여성들의 가족 내 돌봄 역할을 지원하고 단시간이라도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오늘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전략적 젠더 요구는 그러한 요구를 만들어 내는 젠더 권력관계를 비판하고 가부장적 규범과 제도에 도전하는 변혁적 내일을 구성하는 전략이다. 여성정책은 실질적/전략적 층위의 정책들을 동시에, 다양하게 추진함으로써 성평등한 사회의 ‘여성’을 구성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여성정책이 여성의 실질적 젠더 요구를 충족하는 사업으로만 회귀할 때 여성의 자리는 다시 가족 내부로 한정될 수 있다. 성평등의 의미도 그만큼 좁아진다.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이 “국익, 실용, 공정, 상식”임을 상기해보면, 1987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사회’를 거부하는 유명한 어록 “사회라는 것은 없다. 남성과 여성의 개인들 그리고 가족들이 있을 뿐이다”가 겹쳐진다. 이 발언은 영국 신자유주의 정부가 사회나 국가의 책임을 뒤로 물리고 개인을 강조한 대표적인 말이다. 국가는 기업처럼 이익을 추구하고 공공재의 중립적 분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처는 중산층을 정치적 지지층으로 하고, 이민자에 대해서는 시민권 제한, 복지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예산을 삭감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황망한 풍경은 탄광 노동자를 내부의 적으로 규정한 대처 정부 시대가 배경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이익을 옹호하고 경쟁을 관리하는 것 이상이야 한다. 정부는 여성의 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 디지털 성폭력, 고용, 저출생, 재생산권 같은 이슈에 성평등 관점을 반영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있다.

정리하면,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여성정책 주변화, 관료제의 남성성에 대한 도전, 여성정책의 보수적 회귀에 대한 문제 제기로서 페미니즘 이슈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모든 정책과 모든 행정 부처에 성평등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를 포함해 모든 정부 정책에 대한 페미니즘의 지속적인 개입과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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