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똑똑, 여성학에 묻습니다’는 본교 여성학 전문가들이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칼럼 코너입니다. 이대학보 온라인 패널단 학보메이트에게 페미니즘과 관련해 묻고 싶은 질문을 받아, 그중 5개의 질문을 꼽았습니다. 이번 호가 마지막 연재입니다.

 

5번째 질문

최근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악으로 규정하고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이유로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는가? 인식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최근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욕설과 조롱 그리고 근거 없는 비난은 언제나 존재했다. 다만 오프라인 공간과 달리 온라인 공간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특성 때문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들이 보다 빠르게 생성되고 확산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행해지는 여성혐오적인 포스팅, 댓글달기, 이미지 공유하기 등의 활동은 반페미니즘을 표현하는 정치적 발화로 이해되기보다는 쉽게 휘발되는 가벼운 놀이문화로 치부되기 쉽다. 이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과 공격을 예방하거나, 반박, 비판하기는 더욱더 어려우며, 온라인 공간의 담론들이 과대대표 되는 상황에서 이는 다시 오프라인으로 재생산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쉽게 마주하게 되는 여성혐오적인 발언들,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 사이버 테러와 직접적인 공격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일까?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정말 바뀔 수 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며, 이를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원을 특정한 페미니즘의 아젠다 혹은 일군의 페미니스트 집단의 발화양식 문제로 진단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극단적이고 과격하며 모든 남성을 적대시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가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를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저항과 거부가 발생한다.

2021년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여성의 참정권은 너무나 당연한 보편적 시민권으로 이해되지만 불과 100여 년 전 서구에서 여성 참정권을 요구했던 페미니스트들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 탄압받았다. 한국에서는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여성은 혼인 전에는 아버지,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 그리고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인 호적에 입적해야했다. 명백한 성차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50년이 넘는 가족법개정운동이 이루어져야했으며,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의 근간이 붕괴된다는 거센 반발에 맞서야했다. 이처럼 여성 참정권 운동부터 호주제 폐지운동까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페미니스트들은 “극단적이고 과격하다”고 비난받았다. 또한 이제까지 여성운동의 성취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문화적 변화들이 당시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페미니즘 운동의 목표와 주장들이 당시에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제까지 여러 사회에서 성차별적인 제도와 관습, 성폭력적인 문화, 불평등한 젠더관계를 바꿔나가기 위한 모든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저항과 거부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하고 한 사회 내의 젠더관계가 재구조화되는 과정,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일으키는 모든 과정은 기존의 질서 속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던 모든 이들에게는 페미니즘이 공포와 적개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 어떠한 반발도 부정적인 인식도 없는 페미니즘은 정말 페미니즘이 맞느냐는 질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 공감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보다 더 많아지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페미니스트들이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작업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내용이 실제로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지, 누가 왜 이러한 인식을 생성하고 확산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페미니즘을 비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페미니즘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1년 온라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과 저항은 딱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김선혜 여성학과 교수

|본교 여성학과 교수로, 주요 연구 관심사는 재/생산 노동, 과학기술과 젠더, 초국적 의료산업, 성과 재생산 권리와 건강 등이다.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알고싶은 독자들을 위한 필자의 추천도서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페미니즘의 책 (하나 맥켄 외 편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사라 아메드)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