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똑똑, 여성학에 묻습니다’는 본교 여성학 전문가들이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칼럼 코너입니다. 이대학보 온라인 패널단 학보메이트에게 페미니즘과 관련해 묻고 싶은 질문을 받아, 그중 5개의 질문을 꼽았습니다.

네 번째 질문

페미니스트라면 탈코르셋을 해야 하나?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지만 화장을 하고 코르셋을 버리지 않는다면 페미니스트가 아닌 건지 궁금하다. 코르셋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서 언급된 해당 구절은 페미니즘의 명제처럼 여겨진다. 여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소위 ‘여성스러움’ 혹은 ‘여성성’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여성성이 규범의 결과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성성’은 무엇일까. 긴 생머리에 잡티 없이 하얀 피부? 나긋나긋한 말투와 조신한 몸가짐? 넘치는 모성으로 아이와 가족을 돌보는 것?

위에서 언급된 것들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성성’의 구성요소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맨 처음 언급된 외모와 관련한 부분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성별 이분법에 익숙한 많은 사람은 타인의 외형을 보고 가장 먼저 성별을 구분한다. 미디어는 특정한 외모와 몸을 지닌 사람들을 이상적인 여성/남성으로 만들어낸다. 몸은 성규범과 성역할을 체현하고 다시금 재현해내는 장이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되는 미적 기준은 몸에서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성규범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여성다움을 규범으로 제시하며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비정상’이라고 보는 것에 저항해왔다. 그렇기에 여성에게 요구되는 미적 기준에 도전하는 시도 역시 오래된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초기부터 등장했다. 미국 참정권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최초로 코르셋을 벗고 “자유의 옷(freedom dress)”으로 불렸던 짧은 바지(Bloomer)를 입었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지금의 탈코르셋 운동 또한 (젊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미의 규범을 ‘코르셋’으로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한다는 점에서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라면 탈코르셋을 해야 할까? 물론 페미니스트라면 여자라는 이유로 요구되는 착장이나 미적 기준에 반대하고 ‘꾸밈노동’을 그만두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해보기를 도전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은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실천이다. 몸의 치장을 달리함으로써 주변의 변화된 시선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일상이 어떻게 다르게 구성되는지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탈코르셋을 하지 않으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거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순 없다. 앞서 언급된 참정권 운동을 했던 여성들은 짧은 바지를 참정권 운동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곧 이를 포기해야 했다. 대중이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외형에 집중하며 비난과 조롱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다양한 방식으로 성별 규범에 도전할 수 있으나, 어떠한 실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여성다움이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구성된 미의 규범일 수 있지만, 이를 모두 타파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남성 중심적인 규범을 강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규범을 흔들어내는 것이지, 성별 규범을 다른 규범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탈코르셋 운동이 규정하는 ‘코르셋’은 주로 긴 머리, 색조화장, 하이힐 등으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여성스러운’ 차림새를 일컫는다. 한편, 지난해 국회의원 류호정이 본의회에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것이 논란이 된 것은 ‘여성스러운’ 옷차림이 공적이고 격식있는 차림새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시선에 벗어나고자 원피스를 벗어 던져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여성적인’ 치장이 폄하되는 것에 대해서 ‘탈코르셋’은 어떠한 이야기로 화답해야 할까?

김미현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박사과정

| 페미니즘 리부트를 관통하며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이 만드는 여성의 삶의 변화를 주요 연구 주제로 하고 있다.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알고싶은 독자들을 위한 필자의 추천도서

--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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