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중심에서 아시아 영화를 알리다
런던의 중심에서 아시아 영화를 알리다
  • 배세정 기자, 김미지 기자
  • 승인 2019.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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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아시아영화제를 설립한 전혜정 동문, 자신만의 문화 철학으로 영화제 이끌어
2015년부터 5년째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전혜정 집행위원장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2015년부터 5년째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전혜정 집행위원장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극장과 영화관이 모여 있는 런던의 중심지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밤이 되면 극장들의 전광판이 반짝이는 이곳은 매일같이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유명한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 London East Asia Film Festival)가 시작된 후 매년 10월 런던 주요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포함한 아시아영화가 관객에게 소개되고 있다. 작년 10월엔 이곳 레스터 스퀘어의 한 극장에선 영화 ‘암수살인’(2018)이 개막작으로 소개됐다.

2015년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설립해 올해 다섯 번째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본교 출신 전혜정 집행위원장(무용·90졸)이다. 그는 런던에서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었다. 전 위원장은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창의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런던아시아영화제를 만들었다”며 “최근엔 런던 시장의 격려 메시지도 받고 런던시의 공식 문화 달력에도 런던아시아영화제가 소개되고 있다”고 웃었다.

“문화를 알리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영화제를 시작했어요. 다른 전문 영화제는 영화를 사고파는 게 목적이지만 저는 제삼국인 영국에서 영화를 통해 아시아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제 목표는 영국에서 대표적인 영화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 행사로서 아시아의 대표성을 갖는 거예요. 영화는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요.”

2019 런던아시아영화제 로고 제공=전혜정 위원장
2019 런던아시아영화제 로고 제공=전혜정 위원장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 위원장은 의도가 뚜렷하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그중 눈에 띈 건 배우 기획전. 유럽은 한국과 달리 감독 중심이라고 설명한 전 위원장은 배우를 홍보하는 것이 한국 영화를 알리는데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감독보다 배우의 스크린 복귀 주기가 짧아 관객이 더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에게 더 집중하기 위해 시상식도 신설했다. 작년에는 김윤석 배우가 남배우상을, 한지민 배우가 여배우상을, 김다미 배우가 신인상을 받았다. 이들은 직접 런던아시아영화제에 참여해 자리를 빛내기도 했다.

전 위원장은 여자 집행위원장이라는 특성을 살려 영화제 내에 ‘여자 이야기’ 기획전도 만들었다. 영화에서 ‘여성’을 조명한다고 하면 대부분 여자 감독들이 만든 작품을 다룰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 위원장은 아시아의 다양한 여성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로 섹션을 구성했다. 감독의 성별에 따라 영화를 분류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영국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관심에 부합하기 위한 취지다. 1회 때 영화제의 색깔을 만들고자 신설한 이 섹션은 영국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섹션 중 하나다. 

“나라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달라요. 영화에서 그게 처절하게 보여요. 작년에 여자 이야기 기획전에 북한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를 초청했어요. 사상과 체제를 넘어서 북한 일반인의 성공기를 다루는 영화인데, 주인공이 여자예요. 당시 감독들이 와서 얘기하길 자신들의 영화를 ‘북한’ 영화가 아닌 여성 이야기로 봐줘서 감동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전 위원장의 기획력은 학부생 때부터 돋보였다. 그는 학회장과 체육대 문화부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각종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는 “2학년 때는 단과대 축제에서 선배들과 쌍쌍파티를 기획했다”며 “분홍색 두루마리를 커튼처럼 장식하고, 당시 인기 가수들을 섭외해 기타치고 노래도 불렀다”며 추억을 되짚었다.

당시 세계적 문화 행사의 일환이 됐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전 위원장은 1986년에는 서울 아시안 게임,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 폐막식에 무용과 학생으로서 공연에 참여했다. 

“이화에서 자신감과 리더십을 배웠죠.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운 곳이고 학회장이란 기회를 통해 리더십을 배웠어요. 캠퍼스 안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전공 분야를 후회 없이 공부하면서 사회에서 제 역할을 꿈꿀 수 있게 해줬어요. 이화는 제가 먼 영국에서 문화 기획자로 설 수 있게 해준 곳이에요.”

지금은 영국의 대표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했지만, 지금까지 사라져 간 크고 작은 아시아영화제가 많았기에 시작할 때 걱정이 많았다. 이 때문에 2015년 첫 영화제를 1회가 아닌 0회로 시작했다. 전 위원장은 “1회를 시작했다가 관객의 호응이 없다면 깨끗하게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특히 영국은 Ground Floor가 0층인 것처럼 한국과 카운트 구조가 다르다는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0회는 영화 단 7편을 3일 동안 상영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개막작인 ‘베테랑’(2015)은 거의 매진됐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1회는 운이 좋게 1,700석이나 되는 극장을 무료로 제공받았다. 영화 상영 수도 7편에서 40편, 그다음은 53편, 그다음은 60편으로 점점 늘어갔다.

올해 제5회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준비 중인 전 위원장에겐 그만의 문화철학이 있다. “영국에서 문화를 알릴 땐 국가는 앞세우기보단 콘텐츠 자체에 집중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알릴 때 ‘한국’ 작품이란 걸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의 우수성을 먼저 알려야 해요. 이런 방식 자체도 문화예요. 영화나 전시 등 콘텐츠만이 문화라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해요. 콘텐츠를 소개하는 방식 자체도 문화가 될 수 있으니 거기서부터 메시지를 주고자 해요. 문화를 좁은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전 위원장은 앞으로 영화제를 제10회까지는 본인이 이끌고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그 이후엔 능력 있는 적임자가 그 자리를 이어나가길 바란다”며 “그때까지 아시아 문화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의 도시에서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는 저는 행운아예요. 지금까지 일해 온 경험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후배들에게 나누고 같이 나은 사회를 위해 문화가 담당한 몫을 함께 만들어 내는 플랫폼에 더욱 매진할 계획입니다. 저의 경험 그리고 후배들의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시너지를 발휘해 더 큰 세상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꿈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