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와 독도를 처음 언급한 국내 사료 「삼국사기」. 울릉도와 독도가 우산국이라는 이름으로 고려나 조선에 속해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울릉도와 독도를 처음 언급한 국내 사료 「삼국사기」. 울릉도와 독도가 우산국이라는 이름으로 고려나 조선에 속해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독도는 우산도, 가지도, 삼봉도, 석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다양한 우리나라 사료들에 기록돼 있다. 독도 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사기」 중 지증왕 13년 6월 기록에 울릉도와 독도가 처음 등장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울릉도와 독도는 당시 우산국이라는 이름으로 신라의 영토로 편입돼 독자적인 소국으로 존재했다. 이후 자료인 「고려사」에서도, 조선 초기 대표적 지리지인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도 독도가 고려나 조선에 속해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지리지뿐 아니라 일본의 지리지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을 목적으로 제작된 일본의 「조선국리지리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최초로 우리식 표기를 사용해 조선의 영토로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이 러시아 지도를 참고해 만든 「조선동해안도」, ‘태정관 지령’ 등에서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돼 있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인이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에 보여주는 사건도 있었다. 숙종 재위 당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으로 지켜낸 안용복은 두 차례의 일본 방문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울릉도에 있는 안용복 기념관의 대내외적 자료들이 당시 정세를 보여주고 있다. 기념관의 대표적인 자료인 메이지 정부 시절 조선의 사정을 조사한 ‘조선국교제시말 내탐서’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방문한 결과로 독도가 조선의 땅이 됐다고 기술돼 있다.

역사 기록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권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일본은 두 섬을 드나들며 약탈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1900년 10월 울릉도와 죽도, 독도 등 주변의 도서들을 모수 울도군으로 승격하고 강원도로 편입시켜 조선의 땅임을 명확히 했다.

일본은 ‘죽도도해금지령’에서 독도의 도해를 금지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로 표기된 점 등을 근거로 독도를 일본의 영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죽도도해금지령에는 “죽도(울릉도) 내의 송도(독도)”라고 표기돼 있어 독도가 포함돼 있다. 또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지방정부에서 고시한 것으로 대한제국에 알리거나 관보에 게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반면 시마네현 고시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대한제국의 관리와 일본 관리의 공동조사를 통해 반포한 후 관보에 게재해 해외에도 알렸다. 칙령 제2조에는 을도 군수의 관할 구역으로 울릉도와 죽도(댓섬), 석도(독도)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는 독도가 우리 영토에 속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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