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근린공원을 찾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백가은 기자
백련근린공원을 찾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백가은 기자

서대문구 홍은동 대로변에서 ‘논골 마을’이라고 적힌 나무 표지판을 따라 10분쯤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도심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곳에서 주민들은 숲속 정자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공원에 흐르는 계곡에서 물고기를 관찰하며 생태 체험을 한다. 백련산에 위치한 백련근린공원은 전 연령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생태공원이다. 홍은동에 15년째 거주 중인 장미순(53·여)씨는 “공기가 맑고 서울 같지 않게 풍부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주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던 공원이 본래 기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서대문구는 2022년 9월 백련근린공원에 파크 골프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8월22일 직능 단체장 초청 구청장 차담회에서 관내 파크 골프장 설치가 건의된 지 약 3주 만이었다. 2023년 1월 서대문구는 골프장 조성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현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 예산을 신청하고 실시설계용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은 없었다.

 

4월28일 백련근린공원에서 파크골프장 건설반대 주민비상대책 위원회와 주민들이 파크골프장 조성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백가은 기자
4월28일 백련근린공원에서 파크골프장 건설반대 주민비상대책 위원회와 주민들이 파크골프장 조성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백가은 기자

소식을 들은 동네 주민들은 반발했다. 일부 주민은 ‘파크골프장 건설반대 주민비상대책 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비대위에서 진행 중인 서명 운동에는 현재 온라인으로 약 1800명, 수기로 약 400명이 참여했다. 날 맑던 4월28일 오후, 산책하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던 공원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매주 일요일 오후2시 백련근린공원에서 열리는 파크골프장 조성 반대 집회였다. 이번이 8번째, 주민 약 30명이 집회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장성암 비대위 원장은 “파크골프장 조성은 우리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이고 절대 뺏길 수 없다”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서대문구가 발표한 추진 계획에 의하면 1~7월 내로 주민 설명회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4월27일 기준 주민 설명회 일정이 확정된 바는 없었다. 이에 관해 김희철 비대위집행위원장은 “공사 전에 하는 설계용역이 실시설계용역인데 그걸 주민 의견 수렴 전에 하는 것은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백련공원 내 계곡에서 아이들이 생태 체험을 하고 있다. 백가은 기자
백련공원 내 계곡에서 아이들이 생태 체험을 하고 있다. 백가은 기자

백련근린공원은 주민들의 동네 쉼터이자 생태학습장이다. 김 집행위원장은 “논골 마을 내 어린이집에서 매일 방문할 정도로 좋은 자연체험학습장”이라고 말했다. 공원 내부에는 백련산 유아숲 체험원 운영실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은 그곳에서 갖가지 곤충과 식물, 동물들을 오감으로 관찰할 수 있다. 노인들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전에는 주민들이 텃밭을 가꿀 수도 있었지만 백련 파크 골프장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불가능해졌다. 공원 앞 주택에 사는 김근숙(66·여)씨는 “아름다운 공원을 조성한 지 1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막대한 돈을 들여 꾸며 놓고 주민들의 진짜 쉼터를 무너뜨린다는 게 말이 되냐”며 분노했다.

동네 쉼터가 사라지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파크골프장을 조성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잔디 관리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김씨는 “인왕산에서 불이 났을 때도 냄새와 연기가 이 곳까지 왔었다”며 “집 바로 앞에서 농약을 뿌리면 다 마시게 돼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불안한 마음을 전했다.

 

백련근린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주민. 백가은 기자
백련근린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주민. 백가은 기자

매일 백련근린공원을 찾아 반려동물과 산책한다는 장씨는 “이런 곳을 보호 구역으로 지정해도 시원찮을 판에 파괴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민병인(45·여)씨는 “지금 우리는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단계에 있는데 오히려 산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련근린공원 파크골프장 조성은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킨다. 자연환경 파괴는 호수나 토양 등 오염 범위가 지엽적인 생활환경오염에 비해 해당되는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생태계 다양성을 훼손했을 때 생물종에게 미치는 영향 정도가 크다. 더구나 도시의 녹지는 상대적으로 큰 가치를 갖는다. 주거공간이 밀집돼 있고 오염이 많이 발생하는 도시의 특성 상 녹지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도시 녹지는 환경 정화와 물 저장 기능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상돈 교수(환경공학과)는 “도시 녹지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발생시켜 많은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등 환경 정화의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산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수를 조절하는 것은 물을 저장하는 식물의 뿌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녹지가 훼손된 지역은 토양이 건조하고 풍향이 일정하지 않고 강수량이 적게 나타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도심의 생태 보전 지역은 필수적이다.

“백련산과 우리 학교 기숙사가 위치한 안산은 홍제천을 통해서 연결됩니다. 안산은 생태 보전 지역이고, 홍제천에는 생태 하천이 조성돼 있어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다는 점에서 가치가 커요.” 서대문구가 조성하려는 파크골프장은 6000제곱미터로, 축구장 하나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이 교수는 “이 정도 크기의 골프장 개발은 홍제동과 홍은동 주민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녹지를 빼앗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대문구 주민들의 1인당 도보 생활권 공원 면적은 3.56제곱미터로, 서울시 자치구 중 최하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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