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항상 접할 수 있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 생명이 있지만 움직이지 않아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바로 식물이다. 그러나 식물은 무수한 생명력과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식물의 경이로움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식물 박사’ 김진옥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에코과학전공 박사·18년졸)과 소지현 본교 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박사·20년졸)이다. 본지는 25일 오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두 학예연구원을 만났다. 

 

‘극한 식물의 세계'를 공동 집필한 김진옥씨(왼쪽), 소지현씨.  이자빈 사진기자
‘극한 식물의 세계'를 공동 집필한 김진옥씨(왼쪽), 소지현씨. 이자빈 사진기자

 

식물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

김씨와 소씨 모두 본교에서 식물분류학을 공부했다. 김씨는 식물분류학을 “식물의 이름을 불러주는 학문”이라고 소개했다. 식물을 찾아서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고 만약 이름이 없다면 새로 지어주기도 한다. 소씨는 “식물을 분석해서 공통 조상을 찾고 계통을 밝혀내는 일이 주된 업무”라고 말했다. 김씨와 소씨는 최근 ‘극한 식물의 세계’라는 책을 함께 집필했다. 책은 식물이 지구에 처음 등장한 이래 오늘날까지 어떻게 진화했는지 살펴보고, 극한의 진화를 거치며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을 소개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구 곳곳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식물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식물 중 김씨와 소씨는 ‘남개구리밥’을 가장 인상적인 식물로 꼽았다. 남개구리밥은 한국의 연못이나 논 위에 떠 있는 개구리밥의 한 종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알려진 남개구리밥은 길이, 너비, 두께가 모두 1mm가 채 되지 않는다. “연필로 종이에 점을 찍어 놓고 그 점이 남개구리밥의 크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그런데 이렇게 작은 식물인데도 이 안에서 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게 놀랍죠.” ◆출아법으로 번식하는 남개구리밥은 2~3일이면 자신의 몸에서 싹을 틔워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낸다. 소씨는 “남개구리밥 1개가 지구 전체를 뒤덮는 데는 2개월밖에 걸리지 않고, 지구 부피만큼 자라는 데에는 75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알려진 남개구리밥 제공=김진옥씨
'세계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알려진 남개구리밥 제공=김진옥씨

 

 

지구는 식물의 행성

김진옥씨는 “식물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생산자다"며 식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자빈 사진기자
김진옥씨는 “식물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생산자다"며 식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자빈 사진기자

식물은 우리에게 산소를 비롯해 생명을 이어주는 음식과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재 등을 아낌없이 내준다. 그러나 식물의 가치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김씨는 “우리가 식물을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식물은 훨씬 놀랍고 경이로운 존재”라고 말했다. 식물이 생겨났기에 1차 소비자, 2차 소비자, 그리고 인간까지 존재할 수 있다. 식물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가장 낮은 단계에서 돕는 생산자인 셈이다. 생태계에서 식물이 사라지면 다른 생명체들도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다. 소씨는 식물 보존과 관련해 ‘생물다양성’ 개념도 강조했다. 최근 기후위기로 생물들이 적응하기도 전에 자연환경이 급변해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소씨는 “식물을 비롯한 생물다양성을 보존해서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멸종위기종 조사원이기도 하다. 식물이 있는 곳이라면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그리고 일본 북해도에서 러시아 사할린까지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 식물을 찾아다니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른다. “한 종이 멸종된다는 것은 단순히 안타깝다고 언급하고 넘길 수준이 아니에요.” 모든 생명체들은 사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가 사라지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소씨도 “멸종되면 그 생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생물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 김진옥씨 제공=김진옥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원 김진옥씨 제공=김진옥씨

 

식물과 함께 걸어온 나날들

김씨와 소씨 모두 오랜 시간 식물을 보며 하나의 길을 걸어왔다. 무언가를 꾸준히 연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묻자 김씨는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을 텐데 나는 그게 식물이었다”며 “좋아하는 걸 찾으니 계속 연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소씨는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보고 싶은 것처럼 식물이 너무 소중하고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이화가 키웠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생의 오랜 시간을 본교에서 보냈다. 김씨는 “이화에 있었기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둘은 이화가 ‘식물’ 자체의 특성과도 비슷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식물은 독립 영양 생물이다. 양분을 먹고 사는 동물과 달리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내는데 나중에는 그 자체가 지구의 밑거름이 된다. “저희도 이화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라서 나중에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거죠.”

 

소씨는 좋아하는 식물로 본교 중강당 옆의 계수나무를 꼽았다. 가을이 되면 계수나무에서는 달고나 향기가 난다. 제공=김진옥씨
소씨는 좋아하는 식물로 본교 중강당 옆의 계수나무를 꼽았다. 가을이 되면 계수나무에서는 달고나 향기가 난다. 제공=김진옥씨

 

김씨와 소씨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길 바란다. 식물분류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는 소씨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서 식물 다양성을 알리는 일을 이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산속에서 식물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김씨도 식물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식물이 사라진 지구는 상상할 수 없어요.

식물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료이자 친구랍니다.

 

◆출아법: 모체에 생긴 작은 돌기가 떨어져나오면서 새로운 개체가 생겨나는 생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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