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모둠 형태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들. 학생들의 나이는 다양하다. 이수영 선임기자
모둠 형태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들. 학생들의 나이는 다양하다. 이수영 선임기자

영어 학원에서나 쓸법한 둥근 테이블과 나이대를 가늠할 수 없는 10명의 학생. 교실이라 불러도 되는지 의문스러운 이 공간에서 교수는 천장에 사진을 붙이며 당부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데, 제발 학교를 이용하세요! 스튜디오는 여러분을 위한 공간입니다.” 한국 대학에 비해 작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오히려 학원에 가까워 보인다. 영국 대학이 내게 남긴 첫인상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사진 수업이었다. 본교에서 잘 열리지 않는 분야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 학번으로서 대면 실습이 어떨지 궁금했던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교실에 입장했다. 평가 기준에 대한 설명과 카메라를 이용한 간단한 실험. 평범해 보이지만 흥미로운 활동을 끝내고 지도를 기다리던 내게, 교수는 갑자기 일어서라고 말했다. 교실을 돌며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궁금한 기법이 있다면 대화할 것. 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를 뒤로하고 현지 학생들은 조심스레 의자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 또한 눈치 보며 일어섰지만, 그들만큼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질문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학 생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화장실과 발표를 제외하고 수업 도중 일어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과제를 공개해야 한다는 새 학기의 어색함을 드러냈지만, 그들의 불안과 내 당황은 결이 달랐다. 교실에서 갑자기 일어나 질문하는 상황이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영국 대학 수업에서 ‘참여’가 얼마나 기본적인 가치인지 보여주는 예시다.

이곳의 수업 형태는 크게 강의형인 렉처(Lecture)와 참여형인 워크숍(Workshop)으로 나뉜다. 하지만 수강 정원이 작고 실습이 많은 수업만 워크숍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80명이든 8명이든, 대부분의 과목에는 워크숍이 포함된다. 이는 수업 내용과 크기에 상관없이 학교가 강조하는 가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든 수업에서 교수들은 비슷한 목표를 제시한다. 서로를 존중하며 말할 수 있는 안전 공간의 구축과 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학생들의 열정적인 참여. 모든 것의 배경에는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배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대학의 믿음이 있다. 그리고 이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도 있다.

그렇다면 그 의지는 어떻게 발현될까? 아무리 참여를 원한다고 해도 100명의 사람이 한 번에 얘기할 수는 없다. 발표를 부탁하는 교수의 외침에도 교실이 고요한 것이 일반적인 풍경 아닌가. 학생들이 도대체 서로 무슨 말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영국 대학에서의 핵심은 환경 조성에 있다. 100명의 사람이 한 번에 얘기할 필요도 없다. 얘기하기 위해서 손을 들 필요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교수의 말을 끊으면서도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열렬한 참여를 끌어내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영국의 교실은 책상 배열이 다르다. 한국에서 보이는 일자형이나 일체형 책상은 찾기 어렵다. 대신 원형과 사각 테이블 등을 붙여 모둠 형태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렉처 수업일지라도 책상 배열은 동일하다. 그래야지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원탁에 앉았을 때는 어색한 웃음과 인사치레가 오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며 시시콜콜한 질문이나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면, 책상 배열의 진가는 드러난다. 물리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교수에 더해 내 앞에 앉은 다른 학생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과 같은 실습수업에서는 더하다. 그들이 어떤 재료를 택하고, 무슨 기법을 실험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원탁에서는, 서로가 필연적으로 서로의 레퍼런스가 되고 가장 쉽게 물어볼 수 있는 동료가 된다.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과 팀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교류가 어려웠던 한국과 상반된 모습이다.

교실 내 수평적 분위기도 큰 도움을 준다. 교수와 학생은 전수자와 이수자가 아닌 학습 공동체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허락없이 질문을 던지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무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영국에서는 대다수가 이러한 분위기를 권장한다. 어떤 궁금증이든 허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사소한 것부터 핵심 질문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실제로 학생들이 ‘어린’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20대 초중반에 몰려 있는 한국에 비해 현지 대학은 모든 과목에 교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직을 준비하거나 본인의 커리어 성장을 위해 대학으로 돌아온 사람들로, 교수보다 더 많은 현장의 경험을 공유하거나 교수진이 제공할 수 없는 지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전히 나는 수업 중 질문이 낯설다. 일어났을 때 표정과 몸짓이 신경 쓰이고, 질문이 바보 같은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떤가? 모두가 완벽하지 못함을 알고 있는 공간 속에서, 실패할 수 있는 용기는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곁눈질로 나와 같은 원탁을 탄 학생들을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아야지. “그러니까, So I just w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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