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9월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후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이수영 선임기자
9월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후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이수영 선임기자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약 71년의 재위 기간, 백발이 된 왕세자는 드디어 즉위 차례에 다다랐으며, 영국인들에게 가장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여왕은 숨을 거뒀다.

당연하게도, 현지 반응은 뜨겁다. 재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영국 사회 여러 방면에서추모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BBC, 스카이뉴스 등 영국 여러 언론사는 스코틀랜드부터 런던까지 여왕의 시신 운구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다. 장례식이 이뤄지는 19일은 공휴일로 선포됐으며, 현지 대학들이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가게 또한 열리지 않는다는 공지가 내걸렸다. 영국 최대 대형마트 브랜드인 테스코(TESCO)는 추모의 의미로 19일 모든 점포를 운영하지 않으며, 편의점 형태인 테스코 익스프레스만 영업시간을 대폭 단축해 개점한다고 밝혔다.

영국인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에 추모는 녹아있다. 맥주 한잔 걸치며 축구 중계를 보기 위해 찾은 펍에서도, 경기 시작 전 묵념 하는 영국인을 찾을 수 있었다. 전광판이 있는 가게라면 검은 화면과 여왕의 초상이 그를 기리는 문구와 함께 방송되고 있다. 심지어 버스 전광판에서도 버스 숫자가 등장하기 전 “HM The Queen”(Her Majesty the Queen)과 같은 문구를 띄울 정도로, 그들이 느끼는 여왕을 향한 충성심과 애정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몰아치는 슬픔과 거룩한 감정 속에서 나는 오히려 다름을 느낀다. 여왕의 죽음으로 인해 마트 영업시간이 짧아지고, 여행지들이 문을 닫으며 내 생활은 강하게 영향 받지만, 영국인만큼의 슬픔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발음, 출신지, 성씨 따위로 표현되는 영국 문화의 수직성과 이를 대표하는 왕실의 위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지를 먼저 신경 써야 하는 내게, 계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관광자원이자 훌륭한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여왕에 대해 끊임없이 눈과 귀로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들이다. 곳곳마다 붙어있는 추모 문구와 꽃들로부터 느껴지는 생경한 이방인의 경험, 함께 여왕을 추모할 수 없는 나 또는 우리는 교환학생이기 때문이다.

파비엔 피셔(Fabienne Fischer·19)는 여왕의 죽음이 슬프기는 하지만 그것뿐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온 그에게 영국 여왕의 죽음은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의 떠남, 그 이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부분에 슬퍼하며 묵념의 시간을 갖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나와 교환학생 친구들은 술잔을 작게 부딪치며 장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얘기했다. 정체성의 한 부분이 상실되는 거대한 사회적 경험 가운데, 사라질 부분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가 머무르는 사회와 나의 차이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교환학생을 통해 나나 많은 사람이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동경해오거나 흥미를 느꼈던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아보는 박진감 넘치는 모험보다 ‘구성원’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순간을 맞이하는 것에 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소속이 아닌 다름을 인지하는 순간들, 나를 배제하는 사회 또는 나 자신이 이 사회에 소속될 수 없음을 느끼도록 하는 나의 문화적 차이는 수없이 존재한다. 언어, 휴일, 즐겨 듣는 음악부터 방을 치우는 방식까지. 다른 집단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어떤 부분은 강화되고, 또 어떤 부분은 융합돼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교환학생들은 그렇게 여왕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지만, 추모에는 함께하며 자신의 방식과 사회의 방식 그 어딘가에 부유하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기대한 것이 적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따스한 환대와 성공적인 정착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매 순간 내가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앞으로의 내가 더 넓고 다양해질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매순간 사회와 내가 다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존재할 수 있는 집단. 우리는 교환학생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