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Personal Pronoun.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 부푼 마음으로 준비하던 영국 교환에서 내가 처음으로 받은 질문은 나를 무엇으로 부를 것 인가였다.

모든 이야기는 온라인 수업 등록(Class Enrolment)으로부터 시작된다. 국내 대학이 개인 신상정보를 묻듯, 영국에서는 수업을 듣기 위해 수업 등록이 필요하다. 내가 수학할 현지 학교(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8시간의 시차를 넘어 새벽에 도착한 메일은 온라인 수업 등록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해알리고 있었다. 나는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가득 찬 메일에 놀라 학교 사이트에 바로 접속했고, 아이디와 비밀번호 만들기, 제공받은 메일주소를 확인하는 등 일반 포털 사이트 가입과 다를 바 없는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나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는 창. 빼곡히 들어선 질문을 마주치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교환교가 내게 던진 첫 질문이 바로 “나를 어떤 대명사로 지칭하고 싶은가”였기 때문이다. 내가 부여받은 학번을 나타내는 칸 바로 이후, 그들은 이름보다도 먼저 대명사를 묻고 있었다. 세상에, 영국 대학은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단 말인가?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과 이름을 물은 후에는 내가 불리기를 원하는 이름(Preferred Surname)을 물었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주신 대로, 또는 나에게 주어진대로 불리는 게 아니라 영국에서는 어떠한 절차도 없이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니 민족(Ethnic Origin), 난민 여부, 종교, 성적 지향 등 인권 관련 교양수업의 강의계획서 같은 질문들이 계속됐다. “당신은 아프리카계, 라틴아메리카계, 아시아계입니까?”, “당신은 레즈비언, 무성애자, 팬 섹슈얼, 퀘스처너리입니까?”, “당신은 무슬림, 기독교, 배화교입니까?” 익숙한 단어들부터 처음 보는 용어들까지. 24년 동안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묻지 않았던 나의 ‘기본 사항’들에 대해, 바다 건너 영국 교환교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쩌면, 한국에서 이러한 질문을 듣는 것은 당연하게도 어려울지 모른다. 성적지향, 종교, 장애의 유무 등 다양한 나의 ‘기본 사항’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이 공개적으로 성적지향을 밝히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안이 아니다. 내가 이슬람교를 믿을 수 있다는 가능성, 거주 지위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 특정 지역에서 오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거나 한국 국적이지만 인종이 다를 수 있다는 다양한 정체성과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한국에서 허용되지 않고,고로 밝힐 수 없다. 그리고 아마도, 다름이 거의 유일하게 인정될 수 있는 순간은 배제와 멸시의 시간이 된다. 애자(장애인을 비하하는 욕), 더럽고 문란한 동성애자, 좋은 사람을 만나면 계도될 수 있을 거라는 무성애자 또는 여타 성적 지향성에 대한 무지, 개슬람(이슬람이 되는 것을 모욕으로 사용), 흑형 등 열거하려면 몇 페이지를 채워나갈 수 있을 만큼 수많은 혐오 발언(hate speech)과 편견은 대한민국 사회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증명한다. 나를 숨기는 것이 당연한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묻고 답할 수 없으며, 차이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렇게 서로의 한 부분은 가려지고 침식된다.

나는 교환학생을 통해 아시아인으로서 받을 인종차별과 무시가 두려웠다. 네오나치를 만나지는 않을까, 내가 한국인이라서,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잘하지 않아서 그들 사이 외톨이가 되고 ‘다른’ 사람이 돼 배척당하는 수많은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학습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영국 사회는 오히려 가장 적극적이고 당연한 방식으로 다름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질문을 통해 이 태도가 사회의 기준값이자 당연한 태도임을 제시했다. 어쩌면, 늦은 새벽잠을 해치는 메일로 시작된 수업 등록에도 내가 웃으며 답했던 이유가 이것일지 모른다. 아마도 6개월간 완전히 다른 문화권과 공간 속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경험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도 이 지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찾아야 할 미래, 그리고 느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어렴풋한 설렘이 다가온다. 나를 무엇으로 정의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곳, 지금 영국으로 떠나려 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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