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해가 지고 예외 없이 일찍 문을 닫은 상점의 모습. <strong>이수영 선임기자
해가 지고 예외 없이 일찍 문을 닫은 상점의 모습. 이수영 선임기자

영국은 겨울이 되면 해가 아주 짧아진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계절마다 낮의 길이도 더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는 오후 4시에도 하늘이 어둑해진다는 말마따나 9월의 영국은 밤이 길어지고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하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짧은 해보다도 더 짧게 것은 바로 가게의 영업시간이다.

오후 6시 57분. 센트럴 랭커셔 대학교(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 800m 근방 식료품점들의 평균 폐점 시간은 7시를 넘지 못한다. 이 숫자마저도 늦게까지 영업하는 대형 체인 2곳으로 인해 늘어난 것으로 대부분의 가게는 4시에서 6시 사이 문을 닫는다. 영국을 대표하는 드럭스토어(drugstore) 부츠(Boots), 교환학생의 세간살이를 책임지는 가구 가게 윌코(Wilko), 다양한 책과 문구류를 찾아볼 수 있는 서점 워터스톤스(Waterstones)까지. 거대 프랜차이즈든 작은 동네 식당이든 상관없다. 도심 대부분의 가게는 6시를 넘기지 못한 채 영업을 종료한다.

유동 인구가 증가하는 주말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많은 가게가 일요일에는 오전만 영업하거나 쉬기 때문이다. 평일 평균 폐점 시간을 책임졌던 대형마트들도 주말에는 예외 없이 일찍 문을 닫는다. 서너 시에 영업 종료 표지를 내 거는 가게들 덕분에 느지막이 일어나 밀린 장을 보러 나간다면 닫힌 문들만 마주하기 일쑤다. 이러한 영국에서 지내다 보니,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내게, 해가 지면 문을 닫는 가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불편함이었다. “편의점이 어떻게 24시간이 아닐 수가 있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영국의 ‘짧은’ 영업시간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유럽 내 국가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은 이를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스웨덴의 경우, 영국보다 더 일찍 닫는 것이 보편적이며 일요일 영업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한다. 모든 가게가 최소한 오후 10시, 못해도 밤 8시까지 열려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는 알고 보니 상당히 한국적인 정서였다. 나는 내 불만을 의아해하는 친구들을 향해 “모든 가게가 새벽까지 여는 것은 아니라도 최소 10시까지는 잘 닫지 않는다”며 한국의 편리한 인프라에 관해 설명했다. 그렇게 내 한국 예찬론이 펼쳐지던 중, 한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넸다. “난 그렇게까지 편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일찍 연 가게가 늦게까지 하면 일하는 사람들은 쉬는 시간이 없잖아. 그렇게까지 편해지고 싶지는 않아.”

그렇게까지. 이 짧은 단어는 내가 불만 가졌던 많은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가게를 일찍 닫는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까지” 많은 손님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늦게 영업을 시작해도, 밤 12시 전에는 문을 닫는 펍(Pub)도 마찬가지다. “그렇게까지” 일했다가는 내일이 온전치 못할 수 있기에, 일이 하루의 전부가 아닌 일부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은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들이 하루 종일 일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며 간접적으로 휴식을 용인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보장한다. 제공되는 편리함의 질이 아닌 ‘누가’ 그 편리함을 제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삶의 형태는 이전의 내가 접해왔던 성장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 아닌 왜 일하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방식이자, 자기 삶을 소비해 사회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상이기도 했다.

오후 8시 30분, 물을 사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한국이라면 누구보다 저녁 장사가 한창인 시간이지만 내가 마주한 것은 굳게 닫힌 문들이었다. “죄송하지만 오늘 영업은 종료되었습니다.” (“Sorry, we’re closed”)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손님이 왕이 아닌, 서로가 공생관계임을 깨닫는 사회에서 문을 닫는 것은 당연한 행위다. 우리의 휴가가 죄송할 필요 없는 것처럼, 그들의 휴무에도 불편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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