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른 방향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이수영 선임기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이수영 선임기자

80일. 터무니없이 짧아 보이는 시간이지만 거의 한 학기에 다다르는 시간이다. 어느새 영국 땅을 밟은 지 80일이 됐다.

지낼 수 있는 기간의 절반이 넘어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제는 귀국 날까지 남은 시간보다 이곳에서 보낸 날이 더 길어졌다. 크리스마스를 주축으로 긴 방학을 가지는 유럽은 12월 초가 지나면 학교에 간다는 느낌도 희미해진다. 그렇게 계산해보니 내게 남은 시간은 2주 남짓. 내 인생의 거창한 전환점이 되리라 예상했던 교환학생은 별것도 없이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교환을 가기 전, 이미 갔다 온 수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었다. 이민이라도 가는 사람인 것처럼 하루걸러 사람을 만나며 그들에게 물었고, 그들은 내게 답했다. “네가 하는 만큼 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야.” 소중한 휴식이자 외국에서의 삶을 경험한 사람도 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안타깝게 빨리 돌아와야 해 아쉬움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긍정적으로 교환학생을 묘사한 몇몇과 달리 그 시간이 부담스러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과 인생에 남을 만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게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아.” 인간관계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적응하려 하면 귀국 날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던 나는, 어떠한 새로운 문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고 설렜다. 허나 학생의 대부분을 보낸 지금, 교환학생을 갔다 온 이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한국과는 다르나 결국은 사람 사는 곳에 불과한 ‘외국’은 고통스럽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토록 요구하고 이를 극복한다면 그만큼을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이다.

정해진 것 하나 없이 당신에게 주어져 버린 시간을 보다 소중히 쓸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줬던 몇 가지 생각을 소개하려 한다.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다른 나라로 파견 중인 취재원들로부터 소중히 얻어온 얘기들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동하세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아요.”

교환학생을 상상하면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이 그려진다. 하지만 예상보다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아무런 이유 없이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적극적인 만큼 그들도 다가올 확률이 높아진다. 교환학생 첫 달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 거의 매일 약속이 있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학교에서 개최하는 새내기 행사에 참여하고, 플랏메이트(flatmate)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친구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예산을 세우세요. 하지만 돈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마세요.”

교환학생은 돈이 많이 든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외식은 최소 15000원부터 시작이며 교환학생의 꽃이라 불리는 여행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숙소비와 비행삯, 이외에도 자잘하게 드는 비용들을 생각한다면 예산을 세워 계획적인 소비를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돈에 굳이 스트레스받지는 않기를 바란다. 한 푼에 일희일비하다가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에 압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의 삶, 특히 여행 중에는 내가 주재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비행기를 놓치거나 환불이 불가능한 기차표를 잘못 끊는 등, 시간을 위해 비싼 선택지를 고르기도 한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미 잃은 돈보다도 나의 목표에 집중한다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예산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목표를 세우세요. 여행이든 친구든”

많은 학생은 빠른 한국의 삶에 치이다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얻는 갑작스러운 여유에 당황한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데, 뭘 하지? 영화를 봐도 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황의 시간을 줄이려면 교환학생에 오기 전 내가 무엇을 이루고 싶고, 어떤 목표들을 달성하고 싶은지 몇 가지의 버킷 리스트를 적어오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교환 초기, 한국에서는 얻기 어려운 소중한 자유 시간들을 더 의미 있게 사용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교환학생이었지만, 막상 여유를 맞닥뜨리니 내 마음은 불안해졌다. 매주 자신을 재정립하며 어떻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아무리 느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해도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은 의미 있다는 상투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내 방향을 찾으면 그걸로 그만.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당신도, 당신만의 나침반을 준비한다면 헤매는 과정마저 여행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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