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영국 센트럴랭커셔대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이수영 선임기자가 2022-2학기 '이수영의 영국 갈 결심' 칼럼을 제작기간 중 매주 연재합니다. 영국 대학에서의 흥미진진한 일상을 전합니다.

영국에서 국적이 아닌 마음으로 연결된 친구들. <strong>이수영 선임기자
영국에서 국적이 아닌 마음으로 연결된 친구들. 이수영 선임기자

 “영어 이름은 사대주의의 산물이야.” 한국에서만 자라온 나는 다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현지인을 배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을 발음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까지 만들어가면서까지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국에 와서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인 지 두 달,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름’을 통해 내가 다른 공간과 문화권으로부터 왔다는 즐겁지 않은 현실이 내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

내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도시지만, 학교 내 한국인들이 많아 인종적으로 묶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들도 내가 겪은 인종차별의 경험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곳에서 머무르는 첫 달, 이미 다섯 번이 넘는 직접적 인종차별을 당했다.

인종차별의 경험은 시간과 장소, 모두 특정하기 어렵다. 어떤 시공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저녁, 동네 마트 앞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젊은이들은 나와 친구를 보며 니하오라 외쳤고, 교외 아울렛에서 우릴 따라다닌 아이들은 백주대낮에 눈을 찢고 소리를 질렀다. 영국인, 즉 백인들과 함께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영국 출신 비아시아인 친구들과 같이 학교 학생들이 많이 간다는 펍(pub)에 갔지만 술을 마시던 두 중년 남성이 위협적으로 우리를 불러댔다. 영국인 친구들이 우리를 도와줬어도 여전히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입을 가리고 내게만 보이도록 외치던 ‘차이나’. 우리가 펍에 들어와서 한 거라고는 앉아서 술을 마신 것뿐이었다.

직접적인 인종차별이 아니어도 ‘다름’이 부각되는 순간은 많았다. 출석을 부를 때부터 나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 단어에도 존재하는 음절로 구성된 내 이름을 부른 교수들은 한 번씩 이름을 다시 물어봤다. 런던이나 맨체스터 등 대도시로 놀러 가면 내게 웃으며 니하오라 외치는 상점 주인이 있었다. 아마 중국인인줄 알고 친근감을 표시하는 호객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호의로부터 비롯됐다해도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뭉뚱그려 생각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예민해서 괜히 크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백인이었으면 상황이 정말 달라졌을까? 이러한 의문은 간접적인 인종차별을 겪을 때 더욱 많아졌다. ‘차별’이라 명시할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은 나를 헷갈리게 했다. 대부분의 교환학생이 모인다는 환영 파티에 백인인 독일 친구들과 함께 가자 수많은 비아시아인 친구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화가 끝날 무렵이면, 나는 그들에게 철저한 타자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번호를 물어보며 다음번에 놀러 오라며 끝나는 대화가 내게는 만나서 반갑다는 친절하지만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인사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처음은 ‘못생긴 아시아인’이기 때문일까 하고 화장을 시작했다. 몇 년만에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렌즈를 끼고, 아이라인을 그려봤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미국식 악센트를 써서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r’ 발음을 적게 하고 영국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단어를 써봤지만 내 생김새와 행동 속 아시안 성(Asian-ness)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트에 줄을 서 있을 때도, 식당에서 밥을 기다릴 때도 묘한 시선은 계속됐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니?”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지만 날 바라보던 아이들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계속 응시했다. 다르다고 외치는 듯한 눈빛, 조롱인지 신기함인지 알 수 없는 무지, 그리고 무례하게 궁금해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권력. 나는 이곳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실을 가장 숨기고 싶어 했다.

외국 브랜드 옷을 입고 영어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고민, 모든 것이 내 인종 때문은 아닐까 걱정하며 작아지는 나날들 속에서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질문의 끝은 생각의 시작, 내 이름으로 돌아갔다. 외국인을 만나도, 영어학원에 갈 때도 나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고수했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도 이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국인다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듯 영국에서도 당당해지면 되는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여전히 나는 인종차별의 경험들로부터 나를 다져나가는 중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반응하고 불쾌해하지만, 동시에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한국에서 온 걸 흥미로워하는 영국인부터 한국인까지. 국적에 굳이 우열을 두지 않은 채, 내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과 함께하게 됐다. 교환학생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이국적’ 경험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소수자의 경험이 주는 분명한 ‘이국적’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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