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 하트와 환영 문구가 언제나 붙어있는 프레스턴의 한 펍. 이수영 선임기자
무지개색 하트와 환영 문구가 언제나 붙어있는 프레스턴의 한 펍. 이수영 선임기자

한국 내 퀴어 행사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 365일 동안 단 하루, 15만 명의 사람들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반나절의 자유와 혐오 세력의 맹공격을 맛본다. 그리고 또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자신을 숨기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로 가는거야?”

통계적으로 인류의 10%는 성소수자라는 글을 읽은 적 있었다. 그렇다면 내 친구 중 몇 명이 자신을 퀴어로 정체화할 수 있는 것일까. 지하철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 중, 자신의 성적 지향성이 사회 규범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정도 될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성소수자란 으레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알아도 존재하지 않는 척 해야 하는 사람들. 옆에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로 사회는 위협이라 얘기하니 어디에 있는지 알 수조차 없도록 자신을 숨겨야 하는 사람들.

그런 나라에서 살다 온 나에게 영국은 아주 당황스러운 공간이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어디서나 퀴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공개적인 애정행각을 하는 커플들부터 시작해 도시 크기와 상관없이 프라이드 플래그(Pride Flag)를 내건 가게들을 찾아볼 수 있다. 6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맞아 잠시 정치적 올바름을 채우려는 알량한 시도가 아니다. 영국에 입국한 9월부터 지금까지, 두 달 내내 창문에서 무지개색 하트를 지우지 않고 ‘모두를 환영합니다’(Welcome Everyone)를 적어놓는 동네 펍이나 2층 창가 테라스에서 맥락도 알 수 없이 무지개 현수막만 걸어놓은 동네 카페를 얘기하는 것이다. 프라이드 플래그는 친구 방 화분 위에서도 찾을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의 물병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단언컨대 영국에서 그 어떤 나라, 심지어 자국 국기보다도 나는 프라이드 플래그를 더 자주 마주쳤다.

 

랭커셔 주 소속 프레스턴 시에서 열린 퀴어축제에 랭커셔 경찰이 참여한 모습. 이수영 선임기자
랭커셔 주 소속 프레스턴 시에서 열린 퀴어축제에 랭커셔 경찰이 참여한 모습. 이수영 선임기자

학교와 지자체에서도 퀴어 관련 행사는 적극적으로 진행된다. 9월 신입생 주간, 학생회가 가장 크게 내건 행사 중 하나는 프라이드 위크였다. 학교 진행행사와 별개로 시에서는 프라이드 축제를 진행했다. 6월 행사가 코로나 등 이유로 불투명해지자 3개월을 기다려서라도 개최를 마무리한 것이다. 올여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오세훈 서울 시장이 기존에는 문제 된 적 없던 행정 절차를 이유로 퀴어축제를 불허하려 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반대로 동성애 ‘반대’ 세력들은 오 시장을 비난했다. 결론적으로 퀴어축제를 허용하며 그가 ‘동성애 시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학교와 지자체가 스스럼없이 퀴어축제를 허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주최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는 찰나였다.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사 내 프라이드 플래그. 에스컬레이터 방향을 나누기 위해 놓여진 구조물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수영 선임기자
맨체스터 피카딜리 역사 내 프라이드 플래그. 에스컬레이터 방향을 나누기 위해 놓여진 구조물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수영 선임기자

“여기서는 이 사람(퀴어)들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아시아 국가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과 관련 얘기를 하면 놀란 기색이 일쑤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퀴어란 앞서 말했든 365일 중 반나절 정도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위협받는 현실을 목도하고 온 우리에게, 매년 매 순간을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회의 포용성은 놀랍다. 길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 프라이드 플래그가 걸린 것을 보면 외국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기를 쓰며 들여옴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드 먼스에는 무지개 관련 SNS 글 하나 올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생각난다. 2004년부터 이미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청약 가점, 수술 동의, 재산 분할 등 사회 핵심 제도를 전통적인 가족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내 나라가 떠오른다. 프라이드 플래그로 기차 전체가 도색된 영국 대형 철도 회사의 프라이드 기차를 타며, 서울에서만 15만 명이 모이는데도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그리고 그러한 삶을 종용하고 눈 감는 사회가 생각난다. 이성 간 결합을 넘어 더 큰 가족을 인정한다는 생활 동반자 법은 2006년 국회에서 계류 후 결국 폐기됐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학생 인권 종합계획 1기에서 성소수자는 동성애 의무교육을 시행한다는 기독교 단체의 항의로 소수자 카테고리 안에 누락됐다. 그 많던 퀴어들은 어디도 가지 않았다. 이들을 보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일 뿐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