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화인의 네트워크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바쁘게 살다가도 이화를 위해서라면 한순간에 모인다. 본지는 코로나19 사태에도 학교 선후배 교류가 지속된 이화인 클럽들을 조명한다. 1642호에서는 여성 문인 네트워크와 후배들의 문예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이대동창문인회’ 소속 문인 세 명을 만났다.

 

이대동창문인회 소속 문인 김선주씨, 김소엽씨, 임완숙씨(왼쪽부터). <strong>김나은 사진기자
이대동창문인회 소속 문인 김선주씨, 김소엽씨, 임완숙씨(왼쪽부터). 김나은 사진기자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잠재력 있는 후배를 기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문인회에서 소통하며 함께 발전해나가요.”

이대동창문인회(문인회)는 등단 문인으로 구성된 동문 모임으로, 여성 문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문예 창작에 관심 있는 후배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한다. 본지는 이들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회장인 시인 김소엽(영문·65년졸)씨와 소속 회원 소설가 김선주(불문·65년졸)씨, 시인 임완숙(국문·68년졸)씨를 서울시 중구의 시민 문화공간 ‘문학의 집’에서 만났다.

 

이화 정신 보전 위해 36년간 이어진 끈끈한 연대

창립 36주년을 맞이한 문인회는 문단에 등단한 약 270명의 이화인 모임이다. 이화문학상 시상, 연말 작품집 출판 등의 이화인 네트워크 강화와 장학금 기탁 등 후배 문인 양성 활동을 한다. 문인회는 시, 소설, 수필, 번역, 희곡, 아동문학, 평론, 시조 등 문학 전 분야를 아우르며 방송 및 드라마 작가도 소속돼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문인회의 연대는 끊기지 않았다. 매년 작품집을 발간했으며 정기 총회와 이화문학상 시상도 꾸준히 진행했다. 이화문학상은 문인회에서 당해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으로 24년 넘게 시상이 이어져 왔다. 문인회는 매년 작품집 발간을 통해 서로의 글과 생각을 공유하며 연대의 낙을 느낀다. 매해 이사회에서 새로운 주제를 정하면 문인 약 80명의 수필을 모아 작품집을 출간한다. 지금까지 맛, 멋, 향기, 첫사랑, 잊지 못할 사건 등 다양한 주제가 선정된 바 있다. 김소엽 시인은 “기쁜 일을 함께 축하하는 것도 친목에 좋지만 수필집을 공동으로 발간하며 유대 의식이 강화됨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인회는 여성 문단사를 이끈 본교 출신 선배 문인의 활약을 알리고 보전하는 사명도 가진다. 김소엽 시인은 “일제강점기부터 애국 운동과 나눔의 정신을 글로써 실천했던 선배님의 행보를 계승해 문인회도 이화 정신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임완숙 시인도 “조경희, 전숙희, 나영균, 강성희 선생님등 이화여대 선배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여성 문단사는 없었을 것”이라 덧붙였다.

“우리나라가 여성 문인의 불모지였던 시기 여성 문학의 싹을 틔운 것은 우리의 선배님입니다. 여성의 권리와 자긍심을 한 몸에 지고 황무지를 개척했던 이화 정신을 이어 나갈 것입니다.”

 

이대동창문인회 소속 문인 임완숙씨, 김선주씨, 김소엽씨(왼쪽부터). <strong>김나은 사진기자
이대동창문인회 소속 문인 임완숙씨, 김선주씨, 김소엽씨(왼쪽부터). 김나은 사진기자

뉴미디어 등장에 대비해 문학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다

끈끈한 동창 네트워크를 갖고 있음에도 김소엽 시인은 “이대동창문인회의 고령화로 존속에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인터넷 발달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출판 시장의 입지가 줄었고 전업 작가 활동이 점차 힘들어져 청년층이 문인회에 가입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문인회 회원들은 40대 한 명과 50대 4명을 제외하면 모두 60대 이상이다. 이에 대해 김선주 소설가는 “문인 단체의 고령화는 우리 문인회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30대는 대부분 일과 가정생활로 바쁘게 보내다가 한숨 돌릴 때쯤 되면 50대가 돼 문인회에 들어온다”고 문단계 전반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고자 문인회는 후배 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8년부터 매 학기 100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문예 창작 활동을 하는 재학생의 등록금을 지원해 금전적 부담 없이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고령화뿐만이 아니다. 뉴미디어가 등장하는 상황 속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이들은 새로운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김소엽 시인은 “지금은 책이 전혀 팔리지 않는 시대라 전업 작가들이 생업을 따로 두고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며 전업 작가 위기 시대에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에서 정보를 손쉽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시간을 들여 책 읽을 필요가 없다”며 “과거 흥행했던 출판사들도 쉽게 부도가 나버리고 작가 지망생 수 역시 줄고 있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김소엽 시인은 학생들에게 신문명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문학이 살아남을 돌파구를 모색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오히려 글을 보여줄 기회가 많아졌다”며 “독서 인구는 줄었을지라도 젊은 세대가 새로운 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선주 소설가 역시 책 대신 드라마, 영화, 웹 소설 등 새로운 방식으로 문학이 소비되는 흐름에 대해 “꼭 전통적인 것만 옳다고 고집할 것은 아니다”라며 “다양한 방법으로 문학을 공유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그는 “예컨대 웹 소설도 문학적 사고와 글쓰기가 선행돼야 연재될 수 있다”며 이러한 변화도 결국 글쓰기가 기초가 돼야 함을 강조했다.

“새로운 매체가 세상을 변화시킬지라도 모든 매체의 근간이 되는 문학은 흐르는 강물처럼 지속될 거예요.”

이들은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 역시 아끼지 않았다. 김선주 소설가는 문인이 되지 않더라도 항상 글과 가까이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글을 쓰면 깊은 사고와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며 “어디에 등단하겠다는 목표를 갖기보다 항상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르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임 시인 역시 이에 동의하며 “작품을 만들기까지 과정은 각자 다를지라도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책을 많이 읽는 것뿐 아니라 여행을 가거나 영화도 보며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한다”며 체험 없인 작품이 탄생할 수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문인회 차원에서 이들은 작가 지망생 후배들을 위한 네트워킹에 지속적으로 박차를 가할 계획임을 전했다. “이화의 후배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작가로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뛰어난 후배 작가를 양성하기 위한 여러 방안에 대해 앞으로도 고민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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