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화인의 네트워크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바쁘게 살다가도 이화를 위해서라면 한순간에 모인다. 본지는 코로나19 사태에도 학교 선후배 교류가 지속된 이화인 클럽들을 조명한다. 1634호에서는 10년 넘게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이어온 ‘이화법조인회’ 소속 변호사 세 명을 만났다.

 

이화법조인회 소속 이지은씨, 이선희씨, 최수령씨.(왼쪽부터) <strong>송하연 사진기자
이화법조인회 소속 이지은씨, 이선희씨, 최수령씨.(왼쪽부터) 송하연 사진기자

“모욕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나요?”, “부동산 매도 계약 후 잔금을 못 받았어요.” 법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화 구성원은 이화법조인회의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무료 상담)를 이용한다. 대외협력팀의 ‘이화인의 재능기부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본교 출신 법조인 모임 이화법조인회는 10년 넘게 무료 상담을 이어왔다. 이에 더해 이화인들의 연대와 여성 법조인 네트워크 형성에도 힘쓰고 있다. 본지는 이화법조인회 소속 이선희(법학·73년졸)씨, 이지은(법학·98년졸)씨, 최수령(법학·97년졸)씨를 강남구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만났다.

 

후배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화법조인회

이화법조인회는 본교 출신 검사, 변호사, 판사 등 약 2000명의 법조인으로 이뤄져 있다. 대외협력팀은 2011년 9월부터 발전기금 홈페이지에 ‘무료법률상담’ 게시판을 운영해 본교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이 이화법조인회의 무료 상담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0년 동안 약 1700건의 온라인 상담, 약 700건의 오프라인 상담이 이뤄졌다.

“다른 법률 상담보다도 학교 재능 기부를 훨씬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10년 동안 무료 상담을 진행해 온 이지은 변호사는 “후배들이 보통 사회 초년생 때 발생하는 취업, 주택 관련 문제로 상담할 때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더 많은 애정을 갖고 더 열심히 답변을 쓰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무료 상담 서비스에 10년 동안 참여한 최 변호사도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경우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개인 연락처를 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상담 분야에는 제한이 없다. 이지은 변호사는 “현재 44명의 담당 변호사가 있어 전 분야를 다룰 수 있다”며 “담당자가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변호사가 투입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자 문제처럼 국내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은 타 대외기관을 소개해준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무료 상담을 진행하며 보람을 느낀다. 최 변호사는 회식자리에서 불편한 요구를 받고 법적 조치가 가능한지 의뢰했던 사회 초년생 후배를 떠올렸다. 그는 “법적 문제를 넘어 회사에서 버티기 위한 여러 처세법들을 알려주는 인생 상담을 했다”며 “후에 의뢰인이 회사생활 잘하고 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활동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다

이화법조인회에서는 무료 상담뿐만 아니라 여러 네트워킹을 진행해왔다. 10년간 회장을 담당한 이선희 변호사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여러 직군의 법조인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장학금을 모금한다”고 전했다.

이화법조인회는 공익 실현을 위해서도 노력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6년 본교 입학 비리 사건이다. 이지은 변호사는 “시위에 참여한 후배들이 경찰서에 출석하는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공익 변호사 지원을 했다”며 “이화법조인회에서 공익 변호사 팀을 꾸린 뒤 분쟁에 연루된 학생들이 모두 무혐의 및 불기소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화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서도 이화법조인회는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소년 범죄로 인해 ◆그룹 홈(group home system)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진행했다. 이지은 변호사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아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대전에 있는 아이들을 서울에 데리고 와 문화활동을 체험하고 일대일 멘토멘티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법조인회는 일반 의뢰인들뿐만 아니라 같은 법조인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지은 변호사는 “재능기부는 연대의 기초가 된다”며 “여성 법조인들 역시 법률 시장에서 말 못 한 고민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이어 “후배 법조인들이 성추행 문제 등에 노출되기도 한다”며 “후배들을 위해 비밀을 유지하며 권리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이화법조인회가 도와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 중심적 법조계는 옛말, 변화했지만 한계는 남아있다

법조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가 2013년에 도입된 이후 2021년 처음으로 여성 법관 임용 예정자가 남성을 앞섰다. 법조계 내 성차별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남성 중심적인 법조계를 기억한다.

이선희 변호사가 법조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80년대에는 법조인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그는 사법시험에 붙었을 때 “이제 결혼 안 해도 되겠네”라는 말을 들었고 출산 후 출근해 상사로부터 “이제 아이 더 안 낳아도 되겠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남성들은 결혼도 하고 자식도 둘 이상이면서 왜 나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도 이선희 변호사는 묵묵히 싸웠다. “여자 판사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상사의 말에 이 변호사는 “똑똑한 며느리 들어오면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라 당차게 응수하곤 했다. “그렇게 서로가 여성의 울타리가 돼주며 장애물을 걷어가는 것이지 어느 날 세상이 흑에서 백으로 바뀌지는 않더라구요.”

작은 노력이 모여 현재는 법조계에 많은 여성이 진출했다. 최 변호사는 “지금은 재판에 가면 판사, 검사, 변호사, 계장, 사회자 모두 여성인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며 “최근에는 여자 법조인이 섬세하다며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성 법조인들은 여전히 취업과 승진의 과정에서 유리천장을 실감한다. 이선희 변호사는 아직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분위기를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제 나이 또래까지도 아내와 남편이 같은 전문직 종사자임에여도 여자가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지은 변호사는 “일가정양립위원회에서는 가정을 잘 돌보는 남자 변호사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다”며 “이는 법조 사회가 사회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비록 법조계의 남성 중심적 경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최 변호사는 그럼에도 변호사만큼 여성에게 좋은 직업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젊은 변호사들은 휴직 시기에 공부하고 복직한다”며 “변호사는 자격증이 있어 경력 단절은 피해 갈 수 있으니 많은 여성이 법조인에 도전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세 변호사는 “법조인을 꿈꾸는 이화인이라면 망설임 없이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고 입 모아 말했다. 이지은 변호사는 “네트워크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라며 “선배들은 언제나 도울 준비가 돼 있으니 고민하지 말고 노크해달라”는 힘찬 응원을 보냈다.

“주저하지 말고 선배의 손을 잡아주세요. 이화 울타리에서 같이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어려움이라도 함께 고민하며 헤쳐나가길 바랍니다.”

 

◆그룹 홈(group home system):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장애인이나 노숙자 등이 자립할 때까지 소규모 시설에서 공동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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