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시위대가 숭례문 앞을 지나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시위대가 숭례문 앞을 지나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2022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도심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급히 지하철과 방공호에 숨어들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전화벨이 울렸다. “마리야, 가족들 괜찮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고향에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이었다.

본지는 4일, 동대문역 인근 카페에서 마리야(Mariia∙패션디자인전공 석사과정∙21)씨를 만났다. 2016년에 한국에 와 2021년 2학기 본교 대학원에 입학한 마리야씨는 고국의 현 상황을 담담히 풀어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진짜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마리야씨는 한국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고 전쟁이 선포됐음을 알게 됐다. 전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지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그는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의 시초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남쪽에 위치한 ◆크름반도(Crimean Peninsula)를 본국에 합병했다. 이는 또 다른 대립의 계기가 됐다. 러시아 서쪽과 국경을 맞댄 ◆돈바스(Donbass)를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친러 반군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의 교전이 벌어졌다.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가입 문제가 전쟁의 불씨가 됐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과거 공산권 국가들이 연달아 미국과 유럽 주축의 나토에 가입하며 러시아는 압박을 느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헌법에 나토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고 2021년 10월 블라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로이드 오스틴(Lloyd Austin)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나토 가입을 논의했다. 그러나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지대였다. 위기를 느낀 러시아는 2021년 10월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러시아군을 대규모 배치한 후 2022년 2월24일 수도 ◆크이우(Kyiv)를 중심으로 미사일 공습을 시작했다.

마리야씨는 참담한 전쟁을 겪는 고국의 사진을 보여주며 시름했다. “아빠가 사진을 보내줬는데 편의점에 음식이 없어요.” 아버지가 보내준 편의점 사진 속 진열대는 텅 빈 상태였다.

“사람들이 지하철에 피신해 있어요. 병원도 지하에서만 운영해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굉음과 총성에 사람들은 지하에 숨어 전쟁이 끝나기만을 염원하고 있다.

직접 만든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마리야씨. 김나은 사진기자
직접 만든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마리야씨. 김나은 사진기자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들

마리야씨의 고향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크이우로, 침공 시작부터 맹렬히 공격받은 도시 중 하나다. 건물 지하 방공호에 숨어 지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족들은 크이우에 남았다. “차를 타고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서 남아있겠다고 말했어요.” 마리야씨의 아버지는 54세의 나이로 자원입대를 택했다.

전쟁 소식을 들은 마리야씨는 바로 가족들에게 전화했다. 어머니는 놀란 딸을 되레 안심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끝까지 버틸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나 통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크이우에는 폭탄이 투하되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한데 지금 폭발 소리가 나서 우리는 지하로 내려가야 해.”

마리야씨는 작은 휴대폰을 꼭 쥔 채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지낸다. “뭐 하고 있어? 괜찮아?”, “괜찮아. 우리 딸은 뭐해?”, “작품 만들었어. 잠은 잘 잤어?”, “폭발 소리 때문에 잘 수가 없어.” 가족들과 주고받은 텔레그램(telegram.org) 메신저에는 서로의 안전을 염원하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마리야씨는 가족들과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고 전했다.

가족들을 못 본 지 어언 3년. 코로나19로 고향에 갈 수 없었고 이제는 전쟁으로 하늘길이 완전히 막혔다. 마리야씨는 가족들과 통화하며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리야, 울지마”라며 “우크라이나는 강해서 버틸 수 있어”라고 마리야씨를 달랬다. 다시 가족들을 만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시위대가 ‘Stop Putin’, ‘Save the Ukraine’, ‘우크라이나 국민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시위대가 ‘Stop Putin’, ‘Save the Ukraine’, ‘우크라이나 국민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아무도 피 흘리지 않고 끝나길

개전 후 마리야씨는 일주일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1시간 자다 일어나서 뉴스 보고 다시 1시간 자고 일어나서 뉴스 보고… 계속 이렇게 지냈어요.” 고국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작은 화면으로만 지켜봐야 했다. 마리야씨는 “불안감이 하늘 끝까지 올라왔다”고 표현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천을 사서 국기를 만들었어요.” 마리야씨는 직접 만든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 전쟁반대시위에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만든 후원계좌에 30만 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현재 그녀의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는 ‘#Prayforukraine’. 마리야씨는 한국에서 고국의 참변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마리야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우크라이나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며 “SNS로 현 상황을 세상에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마리야씨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아무도 피 흘리지 않고 이 전쟁이 끝나면 좋겠어요.”

9일 기준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는 516명, 이 중에는 37명의 어린이도 포함돼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11시,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약 300명의 ‘마리야’가 모여 평화를 외친다. 이들이 외치는 간절한 구호가 지금도 서울 도심에 울려 퍼지고 있다. “We want to live in peace.”

 

◆크름반도(Crimean Peninsula): 우크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반도로 러시아어로 크림반도라 불린다. 2014년 3월 러시아는 크름반도 주민을 대상으로 러시아에 크름반도를 병합시키는 투표를 진행했고, 약 96%의 찬성으로 크름반도를 러시아에 병합했다. 우크라이나는 영토 변경은 주민투표가 아닌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유엔(UN·United Nation)은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한 것은 불법이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돈바스(Donbass): 우크라이나 최동부에 위치한 도시. 2014년에 일어난 돈바스 지역의 무장독립투쟁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세를 더했다. 돈바스는 현재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으로 나뉘었으나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편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 전인 2022년 2월21일에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은 돈바스의 두 국가를 독립국으로 승인한다는 내용의 칙령에 서명했다.

◆나토(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1949년에 조인된 북대서양조약을 기초로 미국, 캐나다, 유럽 10개국 등 12개국이 참가해 발족시킨 집단방위기구이다.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토 설립 이후 소련과 동구권 국가는 바르샤바조약기구(Warsaw Treaty Organization)를 만들었지만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해체됐다. 현재 나토에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등 30개국이 있다.

◆크이우(Kyiv): 우크라이나의 수도로 러시아어로는 키예프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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