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

지난 9일,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학교 정문을 들어서던 저는 정문 근처에 비치된 두 개의 이대학보 배포대가 모두 텅 비어 있는 걸 봤습니다. 배포대에 놓인 신문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빨리 줄어드는 걸 보니, 캠퍼스에 감도는 활기가 새삼 반갑게 느껴지네요.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끝나 더 많은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언제나 교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이대학보 구성원들이지만, 지난 몇 주 동안은 더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쟁 소식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곤 했는데요. 그러다 이화 안에서도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고, 상황을 들려줄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을 찾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마리야씨와 연락이 닿아 전쟁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드릴 땐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와중에 상처를 들춰내는 걸로 느끼시진 않을지 많이 우려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남들 앞에 꺼내어 보여준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마리야씨는 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요청을 드렸음에도 독자분들께 본인의 이야기,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마리야씨 인터뷰 기사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지명이 몇 군데 나옵니다. 그중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크이우’와,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이 있어 온 ‘크름반도’는 본래 러시아 발음인 ‘키예프’나 ‘크림반도’로 더 잘 알려진 곳이지요. 그러나 러시아 외의 국가에서 우크라이나의 지명을 러시아 발음으로 쓰고 말하는 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겐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1일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공식 SNS를 통해 크이우, 크름반도를 포함한 9개 지역의 명칭을 우크라이나식 발음으로 표기할 것을 부탁한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식 발음과 러시아식 발음을 비교한 표를 첨부하면서요. 대사관이 이 입장을 밝히기 전에는, 해당 지명을 우크라이나식 발음으로 표기하는 언론 보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언론사가 우크라이나식 발음을 표기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 수도의 경우 대사관이 제시한 표기 방식인 크이우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고, 국립국어원이 외래어표기법을 기반으로 정한 표기 방식대로 ‘키이우’라고 쓰기도 합니다. 다만 그동안 관습적으로 러시아 발음대로 표기해왔기에, 혼란을 방지하고자 괄호를 활용해 러시아식 발음도 병기하는 추세가 보이네요.

이대학보에서는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이 제시한 표기 방식만 기사 본문에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표기를 낯설게 느끼실 독자분들도 있을 것이라 판단해, 기사 하단 용어 설명에 러시아 발음도 참고용으로 기재했고요. 이렇게 표기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이 표기 방식 문제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다면, 머지 않아 키예프라는 표현은 러시아 내에서만 쓰이는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참담한 상황을 말하는 마리야씨의 인터뷰를 보며, 처음 보는 인물의 이야기를 읽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드는 기시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학보는 작년 이맘때 미얀마출신 유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미얀마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한창 화두에 올라있을 때였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미얀마의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SNS를 통해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하고, 가족을 안심시키기도 하고, 밤낮으로 자국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하는 모습은 꼭 닮아있습니다. 유학생들은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털어놓았지만, 가족과 연락이 끊길까 불안해하는 심정만은 감추기 어려운 듯했습니다.

두 나라 유학생들이 독자 여러분께 공통적으로 바라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세요. 우리의 관심이 국면을 단숨에 전환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각국 후원계좌에 거액을 쾌척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요. 하지만 무관심 속에 비극이 당연해지고, 고통이 일상이 됩니다. 자국의 평화를 위해 용기 낸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한 마디, SNS에 공유하는 해시태그 한 줄이 모여 평화의 날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또한 우리 몫의 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크라이나와 미얀마, 그 외 자유를 빼앗긴 모든 땅이 평화를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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