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 나인(Tu Hnine), 유 린((Yu Lin Eain)씨(왼쪽부터)가 자유, 선거, 민주주의를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김서영 사진기자
뚜 나인(Tu Hnine), 유 린((Yu Lin Eain)씨(왼쪽부터)가 자유, 선거, 민주주의를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김서영 사진기자

“지난주 미얀마에 있는 남동생이 시위를 하다 교도소로 끌려갔어요.”

미얀마에서 온 뚜나인(Tu Hnine·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씨는 도저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 때문이다. 끔찍한 비극도 멀찍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 화면 너머로 고향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쿠데타는 2월1일 군부가 아웅 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구금하며 일어났다. 차량 경적과 냄비 두들기는 소리로 시작한 미얀마 국민들의 시위는 2월8일 전국 16개 도시로 확대됐다.

3월이 되자 평화적이던 시위는 피로 물들었다. 18일 기준 언론에 보도된 사망자만 해도 최소 216명이다. 군부의 언론 탄압으로 정확한 사망자를 추산하기조차 쉽지 않다. 군부는 시민들의 비폭력 시위에도 무차별적인 학살을 일삼으며 시민에게 총탄을 겨눴다.

 

21세기에 벌어진 무차별 비극

7일 오후3시, 뚜나인씨는 미얀마 상황을 다루는 기사를 읽던 중 언니에게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동생이 만델레이(Mandalay) 대규모 시위에서 경찰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이었다. 동생이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당장 달려갈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슬프게 했다.

뚜나인씨의 가족은 교도소까지 찾아갔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직원들의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8일까지도 동생의 소식은 오리무중이었다.

16일, 그의 동생은 가족 곁에 돌아왔다. 만 19세였던 그의 동생은 나이가 어려 가까스로 교도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뚜나인씨는 “동생이 상처 없이 나와서 정말 다행”이라며 “뼈가 부서질 정도로 맞고, 눈이 퉁퉁 부어 아예 뜰 수 없게 된 채로 돌아온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뚜나인씨의 고향 만달레이는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으로부터 8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이다. 그는 “현재 도시부터 시골 길거리까지 모든 곳이 위험지대”라며 “국민들은 집에 있어도 문을 다 걸어 잠그고, 불을 끄고 조용히 숨을 죽이며 지낸다”고 설명했다.

유린(Yu Lin Eain·패디)씨의 고등학교 동창은 시위에서 사망했다. 평소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유린씨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폭력을 당해야 하느냐”며 힘겨워했다.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것 자체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유린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언제든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데 도와주지 못하고 한국에 평화롭게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털어놨다.

학교, 은행과 같은 사회 시설도 모두 정지 상태다. 군부의 은행 영업 중단에 유린씨는 한국으로 돈을 송금받기도 어려워졌다. 인터넷과 SNS 접속이 갑작스럽게 차단되기도 한다. 양곤에 있는 가족과 매일 연락한다는 유린씨가 가장 불안한 순간은 가족과 연락이 아예 되지 않을 때다.

 

SNS로 자국 상황 실시간으로 파악해...기부금 보내기도

SNS(Social Network Services)는 이들이 가족, 친구와 연락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뚜나인씨는 가족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한다. 메신저로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5시간 남짓이다. 미얀마 군부가 현지 시각 기준 매일 오전1시~9시에 인터넷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전화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망에서 어디서든 연결되는 메신저는 가장 수월하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다. 가족들과는 주로 근황을 나눈다. 가족 구성원 5명이 모인 채팅방에서 뚜나인씨의 엄마는 “엄마는 안전하니까 걱정 말라”며 매일 그와 연락하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자국의 상황을 알리는 데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얀마 인구의 절반인 2만7000명이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카인띵자(Khaing Tin Zar·경영학과 박사과정)씨도 SNS에서 자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그는 주로 페이스북을 보며 사건사고 소식을 접하고, 미얀마 국민들과 현 사태를 이겨내자는 글을 공유한다.

SNS를 통해 지원금을 모으기도 한다. 카인띵자씨도 지원금을 보냈다. 많은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에 맞서 싸우는 공무원들에게 바이버(Viber)라는 채팅 앱을 통해 한 명당 2000짯(한국 돈 약 1600원)의 돈을 기부했다.

카인띵자씨는 “한국에 있기에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 SNS를 이용해 기부금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의 봄날을 염원하며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그려진 뚜 나인(Tu Hnine)씨의 가방 김서영 사진기자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그려진 뚜 나인(Tu Hnine)씨의 가방 김서영 사진기자

코로나19로 취항길이 막힌 후 세 명의 유학생 모두 미얀마에 가지 못한 지 1년이 넘었다. 군부 쿠데타 상황까지 발생하며 이들은 속상함과 울분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부를 놓을 수는 없다. 이들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뚜나인씨는 미얀마의 열악한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꿈꾼다. 그는 “미얀마의 장애인은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보육원에서 지내며 그마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4학년인 유린씨는 졸업 후 패션 자체 브랜드를 설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인띵자씨는 미얀마의 교육 인프라로 발돋움할 국제대학교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군부 독재가 끝나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오는 것이다. 유학생들은 “고향에서 쿠데타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화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바란다고 전했다. 카인띵자씨는 “개강을 했으니 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매일 마음이 아프다”며 “룸메이트가 미얀마 사람이거나 주변에 미얀마 학생이 있다면 위로를 건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뚜나인씨가 원하는 것은 지속적인 관심이다. 그는 이 비극이 당연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관심이 점점 끊기고 미얀마 사람들의 고통이 ‘일상’이 되면 거기서 끝인 거예요. 세계 시민들이 부디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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