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바로 ‘다양성’일 것이다. 다양한 민족이 살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다양성의 나라 미국에서 내가 교환학생으로 온 버몬트주는 미국에서 ‘가장 하얀 주(whitest state)’에 속한다. 가장 하얀 주란, 주 안에서 살고 있는 인종 중 백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주 중에 하나라는 의미이다. 버몬트에서는 백인이 94%, 흑인이 2%, 아시안이 2%, 히스패닉이 2%를 차지한다. 아시안이 거의 없는 버몬트미국의 캘리포니아주 혹은 뉴욕의 모습에 서 생각하는 다인종의 모습들과는 전혀
4월10일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관심은 있지만 투표는 망설이고 있는 이화인이 있을 것이다. 망설이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텐데 어떤 후보와 정당에 투표할지 판단을 내릴 만큼 정책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여길 수도,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없어서 참여 자체가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지식 그리고 특정 정당과 정서적으로 연결된 정도를 뜻하는 정당일체감은 정치참여를 위한 필수자원인데, 이들 자원이 결여되었을 때 투표를 망설이는 건 당연하다.후보와 정당의 정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 참여를 주저하는 마음
이대로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을 해결할 대책을 공격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정부는 아이를 낳고도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제시하는 정책들은 아이를 낳을 것을 전제에 두고, 아이를 낳아야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시한다. 돈도 주고, 집도 주고, 아이를 낳아도 변함없이 일을 하게 해주고, 나라가 함께 아이를 돌봐 준다고 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뚝 떨어지는 M자형 그래
지금껏 살면서 손편지를 몇 번 정도 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파편화된 소통 매체 덕에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써본 경험이 열 손가락에도 채 안 꼽힐 것이라고 감히 추측한다.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2004년 겨울에 태어나 초등학교 고학년 때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을 맛봤으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비대면 학습을 위해 공부조차 태블릿 PC로 하기 시작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럼에도, 내가 잃지 않고 싶고,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아날로그 마음 전달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들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인간은 자신이 지나왔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억조차 하지 못한 그 순간들은 경험이 돼 인생을 이루고 때로는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 되기도 한다. 기억하는 것은 별을 찾는 것과 같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별들이 종래에는 감춰왔던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선명하지 않은 기억들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듯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잊은 것이 아니니까.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소중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3월4일 오후3시,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도착했다. 주변에서는 한국어보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이 나의 귀를 간지럽혔고 한국인보다는 외국인들이 나를 반겼다. 자주 오는 광화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여행 3일 차의 마지막 일정 같았다.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군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나도 이 시간만큼은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유아차에 탄 금발의 남자아이, 한복을 입고 아빠의 목에 올라타 드넓은 경복궁을 구경하는 갈색 눈의 여자아이, 나란히 한
책/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양하고,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조금만 다르게 행동하거나 생각한다면 주변의 비판과 편견을 받는 경우가 많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의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은 세상의 기준과는 달리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 자연의 순리와 반대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고난을
안녕하세요, 이대학보 독자 여러분. 편집국장 김아름빛입니다.어느덧 캠퍼스에도 완연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봄을 맞이한 캠퍼스에서는 새학기의 설렘과 새로움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편집국장으로서 첫 인사를 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대학보도 어느덧 이번 학기 상반기 발행을 한 번 남겨두고 있습니다.이번 호에는 기자들이 열심히 기획하고 취재한 총선 기획기사가 실렸습니다. 유권자인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총선에 대한 이화인들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기사를 준비했습니다.총선 기사를 기획하며 기성언론과는 다른 새로운
장한업 불어불문학과 교수·다문화연구소장 불어불문학과 교수이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 다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불어 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루앙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유럽의 상호문화교육을 연구하면서 이를 국내에 도입하고 확산시키고 있다. 저서로는 ‘다문화사회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상호문화교육’, ‘차별의 언어’ 등이 있다.‘읽어야 산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읽는다고 생각할까요? 아마 ‘책’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 거예요. 책에는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의 날이 다가오자 학교 곳곳의 TV에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는 홍보가 띄워졌다. 여러 행사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것은 ‘Women as seen through the Prado’였다. (프라도는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으로, 런던의 국립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학교 애플리케이션에서 해당 행사를 찾아봤는데, 대기 명단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인기 덕분인지 그 다음주에도 같은 행사를 진행한다고 해 티켓을 신청할 수 있었다.행사는 남학생들과 여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9년차 DNA 감정관.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공주 교도소 살인사건, 부산 돌려차기 살인미수사건 등 여러 사건에서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하기 위한 DNA 감정을 하고 있다.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 하는 일을 소개한다. 명함이 오가고 나면 항상 비슷한 대화가 이어진다. 바로 다음과 같이.아, 대검찰청에 계세요? 네, 맞아요. 검사, 아니면 수사관? 하하, 둘 다 아니에요. 저는 DNA 감정관입니다. DNA요? 네, 형사 사건 의 증거물에서 DNA를 찾고 사건 관계인
언제나 필연적인 논리로 이루어진 상황만을 마주할 수는 없다. 세상은 아주 우연히 나를 괴롭게 한다.방송국에서 밤중에 일어난 일을 취재하고 귀가하는 새벽 6시였다. 그날따라 큰일이 없었다. 궂긴 소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기쁜 일이었다. 기자로서도 반길 수 있을까?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기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를 기사로 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바로 이어, 사건은 기자가 바란다고 생기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내가 느낀 딜레마는 누군가 죽고, 다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마냥 유쾌하지 않은 소식을 캐
드라마/브러쉬업라이프(2023)“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본 적 있는 생각이다. 정말 이 기억과 지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아이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브러쉬 업 라이프’(2023)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일본 드라마다. 드라마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청에서 일하는 주인공
어딘가에 마음을 쏟는 것.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세계가 확장되고 그 펼쳐진 세계 속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인지하게 된다.나는 마음의 한 켠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쉽게 말해, 그냥 정이 많다. 정도 많고 정을 주는 것도 좋아한다. 비록 마음이 자리잡기까지는 더딘 편이지만 지속력은 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던 간에 한번 마음을 붙이기 시작하면 온기가 도는 느낌을 받고는 하는데, 그 온기는 나의 많은 부분들에 영향을 미친다.최근 나는 공간으로부터 받는 많은 감정들을 경험했다. 새삼스
누구에게나 대학 진학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아무 대학을 가는 것은 쉽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는 것은 어렵다는 말은 명백한 진리이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새해 큰절도 올리지 못한 채 2022년 1월 1일 기숙형 재수학원에 입소했다. 입소하기 전에 마지막 한을 다 털어내려고 전국 각지 여행까지 다녀왔지만, 입소하는 발걸음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결괏값을 내기 위해서 답답한 마음은 꾹꾹 누른 채 재수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학원 시간표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겁다. 8교시는 기본이고, 식사 시간을 제
3월 중순, 꽃샘추위가 내려앉으니, 거리에 다시 눕시(Nuptse)가 늘어난다. 등산용품 회사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에서 만든 짧은 패딩 눕시. 지난겨울에도 이게 교복인가 싶을 정도로 사방이 눕시였다. 눕시 사랑은 옷 좀 입는다는 셀럽들로부터 시작해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세대도 뛰어넘고, 서울이고 뉴욕이고 동서양도 인종도 모두 뛰어넘는다고 한다. 롱패딩 유행이 엊그제 같은데 눕시가 유행하는 바람에 엄마, 아빠들은 졸지에 아이들 입던 롱패딩을 물려 입고서 노스페이스 매장에 들어가 카드를 긁었다. 눕시 유행에 힘입어 노스
버몬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지 70일이 되어가는 지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교환학생의 생활 중 여행이 아닌 실제로 미국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문화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이 어떻게 보면 한국의 대학교와 굉장히 상반되고 문화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What is your pronoun”이라는 질문은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듣고, 왜 물어보는지 의문이 들었던 질문이다. 학기 초에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사랑, 이 두 글자가 주는 의미는 음절의 수와 반비례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한한 듯싶다. 사랑을 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의미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단어에 나는 나만의 의미를 하나 더하고 싶다. 나에게 사랑이란 ‘타인의 언어를 기꺼이 학습하려는 행위, 또는 그런 마음’이다.이러한 의미를 더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는 맛집으로 소문이 난 경양식 돈가스 가게가 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나, 기분이 좋지 않을
김소영(디자인·22졸) 아모레퍼시픽 제품디자이너본교 시각디자인과를 2022년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에서 3년 차 그래픽/제품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디자이너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편견이 가득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정부터 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의 경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나 자신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회사는 끝나지 않는 ‘팀플 지옥’과 같다고들 하는데, 나처럼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삶과 고민을 글로
나는 오전9시 아침 수영반의 유일한 청소년이다. 유난히도 더운 날들이 이어졌던 작년 여름, 동네 시립청소년센터의 수영 아침반을 등록했다. 시립청소년센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수영반의 8할은 할머니들, 남은 2할은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유일한 청소년인 내가 차지하고 있다. 수강생의 평균연령이 70세쯤 될 것 같은 공간의 유일한 청소년이 나라는 사실에 기분이 묘하다.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수영장에서 깨닫게 된다.초등학교 때 배운 자유형과 배영 복습을 끝마치고 평영 진도를 막 나가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