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문가현

누구에게나 대학 진학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아무 대학을 가는 것은 쉽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는 것은 어렵다는 말은 명백한 진리이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새해 큰절도 올리지 못한 채 2022년 1월 1일 기숙형 재수학원에 입소했다. 입소하기 전에 마지막 한을 다 털어내려고 전국 각지 여행까지 다녀왔지만, 입소하는 발걸음은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결괏값을 내기 위해서 답답한 마음은 꾹꾹 누른 채 재수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재수학원 시간표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겁다. 8교시는 기본이고,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공부하는 시간으로 짜여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11시 넘어서까지 공부했다. 코로나19가 갑자기 재유행하면서 예정되어 있었던 휴가가 취소되는 불상사도 있었다. 그래도 자유보다는 공부가 우선이었기에 학생들은 이런 상황도 받아들이며 얌전히 수험 생활에 매진했다.

  그렇다고 차분히, 규율 속에서만 생활하지는 않았다. 적은 휴가 횟수와 계속되는 시험으로 수험 생활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있었지만, 학원에서는 컵라면 하나도 못 먹게 지시했다. 이외에 담배나 술처럼 수험 생활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모두 반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반입 금지 물품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서 부모님께 택배를 받으면 행정실 선생님께 일일이 택배를 검사받아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군대보다 엄격한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통제는 ‘답답’을 넘어서 ‘고통’이 되어 ‘분노’로 번졌다. 나는 숨 쉴 틈을 찾아야 했다. 잠시라도 자극적인 속세 음식을 먹어서 시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행정실 선생님들을 살펴보니 택배 안에 있는 건강식품 박스는 딱히 손대지 않았다. 그 정보를 엄마한테 전했더니, 엄마는 홍삼 박스에 홍삼 액기스 통을 다 꺼내서 빈자리에 컵라면 작은 크기를 숨기고, 박스를 열기 귀찮게 느껴지게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은 후, 택배 속에 넣어서 보내주셨다. 떨리는 택배 검사에 무사히 통과했을 때의 기쁨은 잊지 못한다. 테이프를 떼고 홍삼 박스를 열어보니 귀퉁이가 살짝 어그러진 컵라면이 나타났다. 나의 함박웃음은 숨길 수 없었다. 이 작은 라면이 재수학원에서는 얼마나 귀한지 사람들이 알까. 컵라면 용기를 어루만지며 이리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컵라면을 먹는 험난한 과정은 나처럼 일탈을 같이 꿈꾸는 친구들이 함께해주었다. 치밀한 경계 속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 붓기를 성공한 우리는, 남들이 안 보고 있을 때 기숙사 방에서 맛있게 컵라면을 먹는 것까지 성공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열 배는 맛있었다. 오랜만에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니, 염분과 캡사이신이 내 온몸에 에너지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와 친구들의 일탈은 재수 생활 속 단비 같았던 행복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제 자랑스러운 이화의 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닌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요즘도 재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이 라면 이야기를 자주 말하곤 한다. 같이 재수했던 친구들과도 추억을 회상할 때 자주 나누는 이야기이다. 홍삼 박스 속 컵라면이 없었다면 나의 답답함은 어쩌면 아주 안 좋은 방식으로 표출됐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굳이 일탈을 정당화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일탈이 무의미해 보일 수 있고,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에 명분과 의의를 붙이며 한심한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일탈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내가 하는 행동들을 봤을 때 불규칙한 점들처럼 보이지만, 미래의 시점에서 내가 한 행동들을 돌아봤을 때 연결된 직선으로 보인다고. 마치 별자리처럼. 홍삼 박스 속 컵라면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행복의 근원이었고 큰 행복의 도움닫기였다.

  일탈은 어쩌면 ‘완벽’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완벽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선택, 완벽한 인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완벽한 길에서 벗어나고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다. 완벽한 길 자체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일탈은 그저 자유로움을 증명하는 또 다른 개념이다. 일탈은 누군가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시작되고 별자리 속 빛나는 별로 결말난다. 그 별은 두고두고 웃음이 되고 추억이 된다. 그러니 타인의 일탈에는 존중의 시선을, 자신의 일탈에는 수용의 시선을 가지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자유로움이 가득한 영혼으로 꽃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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