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대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 제공=권민정
버몬트대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 제공=권민정

 

버몬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지 70일이 되어가는 지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교환학생의 생활 중 여행이 아닌 실제로 미국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문화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이 어떻게 보면 한국의 대학교와 굉장히 상반되고 문화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What is your pronoun”이라는 질문은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듣고, 왜 물어보는지 의문이 들었던 질문이다. 학기 초에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나, 소규모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 동아리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바로 “너의 대명사는 무엇이니”였다. 그러한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당연히 She/Her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나의 대명사를 대답했다. 하지만 버몬트의 모든 친구가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She/Her, He/Him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어떤 대명사가 더 있는지 봤더니 She/Her, She/Them, He/Him, He/Them, They/Them의 5가지로 크게 구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 조의 조장이었던 친구가 He/Them 대명사를 사용한다고 하는 것을 보고 Them은 어떤 의미인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They 혹은 Them은 자신의 성 정체성이 남자 혹은 여자처럼 두 개로 구분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대명사라고 알려줬다. 오리엔테이션에서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상황에서도 대명사를 말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명사를 통해 개개인의 성 정체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중점을 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문화는 버몬트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단순히 자기소개에서 말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친구들끼리의 대화에서도 실제로 자신이 정한 대명사로 불러주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인권 캠페인 단체에서 쓴 글에 따르면, 대명사는 이름처럼 수없이 많이 불리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정체성을 구분 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성 정체성을 마음대로 가정하고 부르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자신이 대명사를 먼저 소개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아 상호 간의 존중을 기반으로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러한 문화를 인식한 후, 대명사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더 나아가 엘지비티큐(LGBTQ)처럼 사회적 성 혹은 트렌스젠더 사람들을 지칭할 때 기본 적인 예의를 갖추며 소통한다고 느꼈다.

대명사뿐만이 아니라 수업에서도 굉장히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학교 수업에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수많은 질문을 한다.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작은 토론의 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수업을 이루고, 수업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에 상응하여 학생들도 자신의 의견이 좋든 나쁘든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즉석에서 생각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러한 모습이 한국의 대학교 수업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교수님께서 이에 대한 의견이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신다면 한국에서는 주변 눈치를 보거나 자신이 한 말이 틀릴까 봐 조심스러워하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꼭 두세 명씩 손을 들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자신이 느낀 점을 편하게 이야기한 후, 교수님들도 학생의 의견에 대한 코멘트를 주고, 즉석에서 학생들끼리 토론이 이어지기도 한다.

대명사도 5가지나 되고, 수업에서 거침없이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비로소 매우 자유로운 나라인 미국 땅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 적이 많았다. 어찌 보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을까. 우물 밖을 경험하며 교환학생으로 얻어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의 과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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