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지금까지 이대학보는 다양한 분야의 최초가 된 여성, 끊임없이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왔다. 지난 70년 동안 이대학보는 우리대학이 거쳐온 역사를 써왔고, 이는 여성들의 역사기도 하다. 이대학보 창립 70주년을 맞아 이대학보의 과거 기사를 통해 이화의 여성들이 변모한 과정을 재조명해봤다.

 

이대학보, 여대 학보의 정체성으로 문화 재건을 내세우다

1960년대 당시 이대학보는 여성이 특화된 문화 분야에서 이대생의 성과에 주목한다 . 출처=이대학보DB
1960년대 당시 이대학보는 여성이 특화된 문화 분야에서 이대생의 성과에 주목한다 . 출처=이대학보DB

1954년 2월12일 이대학보가 창간됐다. 편집국과 기자 등 모두가 여성 학생들로 구성됐다. <이대학보>를 중심으로 1950년대 여성 지식인 담론을 연구한 연남경 교수는 “50년대 문화비평을 남성이 점유하던 시절, 구성원 모두가 여성인 이대학보는 여성에게 특화된 문화 재건의 주체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이대학보 4면 중 한 면을 문화예술면이 차지했다.

이대학보 124호(1962년 4월2일자)에 발간된 ‘이대생의 독서경향 도서관 대출 상황을 중심으로’에는 이대생의 독서습관을 점검하는 기사가 나온다. 학생 기자는 우리대학 학생들의 독서경향과 독서방법에 대해 소개하며 “흥미 본위의 독서 태도를 벗어나 삶의 폭을 넓히고 깊이 있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대학보는 1961년 100호 발행 기념으로 이화문학상을 설립해 창작, 인문, 사회, 과학, 보도의 5개 문학 분야에서 이대생들의 성과를 보도하려 노력했다.

이대학보 178호(1962년 9월16일자)에 발간된 ‘이화를 거쳐간 여류 문인들’ 기획은 김일엽, 노천명을 비롯한 이화를 거쳐간 여류문인 12명의 생애를 소개한다. 기사에서는 “동아일보가 주최한 장편소설 현상모집 당선을 모두 여자들이 차지했다는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로 시작되며 문학 분야에서 이대생의 성과에 주목한다. 연 교수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도 지식인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가 문학 엘리트 양성이었다”고 설명했다.

 

계몽시키는 신여성에서 다양한 여성을 인정하기까지 

“대학교의 입구가 본질과는 전혀 상반된 현상으로 되어가고

있음은 그 구성원 층의 정신상태로 미루어 보아 가히 개탄할 노

릇이다.” (‘대학가는 사치가가 될 수 없다’ 이대학보 94호)

1960년대부터는 신여성으로 나아가는 이화인들의 자기반성담론이 등장한다. 이대학보 94호(1961년 4월24일자)에 실린 학생기자 사설에서는 이대 앞 상가에 서점이 단 두 곳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실렸다. 화자는 적은 수의 서점과 달리 11점에 달하는 ◆양물점에 대해 “먹고 입고 신는 것의 외형치장만을 젊음과 인생의 전부로 하는 망종의 사고 방식과 생활 태도”를 비판하며 “정적세계를 풍부히 하며 진실되게 하는 형이상학의 고매한 인간으로 자기를 치장”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자기반성은 이대학보 169호(1963년 6월3일자)에 실린 학생기자 사설 ‘결혼 전의 소일꺼리 아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에 즈음하여’라는 사설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된다. 화자는 대학 졸업 후 직업을 가지지 않고 가정 주부에 만족하는 동문들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손실”이라고 표현하며, 이대생들의 사회 진출을 적극 독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이대학보에는 우리대학 학생들을 꾸짖어 ‘진정한 지식인’의 길로 이끄는 목소리가 주로 실렸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바라본다는 논란으로 메이퀸 제도가 폐지됐다 . 출처=이대학보DB
1970년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바라본다는 논란으로 메이퀸 제도가 폐지됐다 . 출처=이대학보DB

1970년대부터는 사회비판적 여성담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대학보 366호(1969년 5월12일자)에 실린 ‘메이퀸에 이성례 양’에서 당시 우리대학 ‘메이퀸’ 선발 과정을 볼 수 있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를 착용”하고 “지성미, 인품, 자세, 용모, 스피치”등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이후 많은 학생들의 문제 의식 제기로 인해 1978년 메이퀸 제도는 폐지된다. 실제 이대학보 1240호(2004년 3월22일자)는 메이퀸 제도를 회고하며 “여성을 몸매나 가꾸고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대상으로바라보는 시선부터 불쾌하다”고 말한다.

21세기의 이대학보는 더이상 독자에게 특정한 여성상을 제시하고 따르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화의 여성들을 보여주며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언론으로 나아갔다. 사회적 제도 안에서 인정받는 엘리트 여성이 아닌 제도권 밖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모습도 다뤘다. 이대학보 1642호(2022년 5월30일자)에서는 1인 가구, 비혼 공동체, 비혼 커플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를 보여준다.

2023년 10월30일부터 이대학보에서 5주간 연재된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 시리즈에서는1970년 금혼 학칙으로 제적 당해 2003년에서야 우리대학으로 돌아온 윤영주(불문·05년졸)씨의 인터뷰를 담았다. 결혼 30년차 배윤성(행정·91년졸)씨의 인터뷰를 통해 결혼 생활에 대한 고민과 그로 인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영원불면한 이화의 본질, 불의에 저항하는 집단적 목소리

많은 변화를 거쳐 온 이대학보의 긴 역사에서도 영원불변한 이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 바로 옳지 않은 사회에 대항해 당당히 목소리내는 이화인들의 연대다.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꽃피던 60년대, 민주사회를 위해 앞장서는 이화정신은 이대학보 241호(1964년 7월5일자)의 “한일협정에 이화 분노 :성토에서 데모, 단식, 서명운동으로”로 이어진다. 1964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 추진에 분노한 학생들이 6월3일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일 오후8시 서울 지역에 선포된 비상 계엄으로 우리대학도 휴교에 들어갔고 이대학보도 발행을 멈췄다.

실제로 이대학보 800호(1985년 8월26일자)에서는 4면에 걸쳐 ‘언론자유 수호’특집 기사를 개제해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알렸다. ‘언론자유 수호와 대학문화창달에 선구적역할 담당할 터’ 사설에서는 “어떠한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가와 왜 신문은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율 속에 갈등빚는 대학언론’에서는 “기사 내용을 결정하는 편집회의에 교수, 대학원생, 신문방송직원이 개입해 편집계획부터 검열이 시작된다”며 “대학 구성원이 학생이듯이 대학신문을 만드는 주역은 학생이다”고 강조했다.

21세기에도 이화인들의 결집은 계속됐다. 이대학보 1522호(2016년 8월29일자)에 따르면, 2016년 7월28일 미래대 신설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본관 점거 농성에 나섰다. 재학생 및 졸업생 800명이 모여 ‘총장과의 대화’와 ‘미래대 폐지’를 요구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최 총장의 유선상으로 경찰 출입을 허락하자 약 1600명의 경찰 병력이 우리대학에 투입됐다. 이대학보는 이 상황에 대해 “이화의 긴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총장이 되고 싶지 않다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학생들의 상처받은 마음부터 헤아려 다가가야 한다”라고 표현한 학생 사설을 같은 호에 실었다.

미래대 신설을 주장한 최경희 총장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은 최 전 총장이 묵인한 정유라씨의 부정 입학으로 이어졌다. 이대학보 1528호(2016년 11월7일자)에서는 “미래라이프대로 촉발된 이대 시위가 최순실 씨의 ‘그림자 실세’를 수면위로 드러내는 단초”라고 표현한다. 이대학보는 ‘오비이락 해명, 불신 해소하기 어렵다’와 같은 사설로 최 전 총장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힘을 더하고,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86일 간의 학내 시위’와 같은 기사를 기획하며 우리대학 학생들을 지지했다.

이처럼 1954년부터 2024년까지 쉼 없이 달려온 이대학보는 70년의 발행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여성대학의 언론 기관으로서 그 당시 여성들이 지식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화예술에 특화돼 창간됐고, 한동안은 여성 지식인이라는 틀 속에 스스로를 검열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화와 함께 성장하며 무한한 여성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언론이 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러한 변모 과정에서도 이대학보는 변함없이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불의에 저항하는 이화인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스피커로 기능해왔고, 앞으로도 기능할 것이다.

◆양물점: 의류나 장신구 따위의 잡화를 파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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