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시작부터 학내 경찰병력 1600명 진입까지 '본관 2박3일'

<편집자주> 7월28일 시작된 본관 점거농성이 한 달째에 접어들었다. 방학 중 시작된 학내 분규는 개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 끝나지 않은 점거농성의 시작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간순의 기록을 마련했다. 또한, 지난 한 달을 되돌아보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 사건 ▲경찰 학내 진입까지의 사건 기록 ▲총장 기자회견 ▲1, 2차 총시위를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했다.

 

  감금이냐, 대치냐. 점거농성이 시작한 7월28일부터 경찰병력이 투입된 7월30일까지 본관 현장에서의 상황을 두고 학교 측은 학생들이 2박3일 간 교수와 직원을 본관 소회의실 내 ‘감금’한 것으로 인식하고,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며 당시 상황을 ‘대치’였다고 주장한다.

  본지는 농성이 시작된 날부터 지금까지 본관 현장에서 이화인과 함께 했다. 본지 기자들이 직접 목격해 정리한 취재노트를 바탕으로, 3일간의 기록을 공개한다. 본지 기자는 3명씩 3교대로 본관 시위현장을 지켰다.

 

  △본관 점거 시작부터 경찰병력 투입 직전까지 

  학생들은 7월28일 새벽 본교 커뮤니티 사이트 이화이언(ewhaian.com)을 통해 교내 시위를 자발적으로 추진했다. 시위 참가자 약 400명은 7월28일 정오 ECC 나무계단에 모인 후 대학평의원회가 열리는 본관 1층 소회의실로 오후1시30분경 이동해 학칙 개정 심의에 대한 반대 시위 및 본관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평의원회를 준비하던 평의원, 교직원 등 6명은 학생들이 있는 본관 소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미래라이프대학 철회를 주장하는 학생에 평의원과 교직원들은 “사업철회를 평의원회가 결정할 권한은 없다”며 맞섰다.

  학생들은 평의원이 앉은 소회의실 책상을 둘러싸고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다른 학생들도 회의실 앞부터 본관 복도에 빼곡히 앉았다. 본교 풍물패가 학생들의 구호에 맞춰 장구·꽹과리를 치기도 했다.

  평의원들은 평의원회 회의를 취소하고 학생들에게 ‘본관 밖으로 나가게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학생들은 ‘미래대 폐지를 약속하는 각서에 서명하기 전까진 나갈 수 없다’고 맞섰다. 평의원측에서 나가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학생들은 퇴로를 열어주지 않았다. 평의원 다수가 본관 밖으로 빠져나갈 경우, 평의원회 개최 요건이 되는 정족수를 만족시켜 본관 외부에서 평의원회를 열고 미래대 신설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추후 “학교의 권위에 맞서서 약자인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자료를 통해 밝혔다.

  학생들은 ‘총장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며 자리를 지켰다. 7월28일 저녁, 본관 앞에 경찰이 왔다. 경찰은 “소회의실에 있는 평의원 및 교직원 6명이 감금당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이 본관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으나 학생들이 막아섰다. 오후7시20분경엔 회의실 안에 있던 교직원 1명이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이 교직원은 곧바로 본관 정문을 향해 달려가 밖으로 나갔다. 그이후 학생들은 위와 같은 상황이 재발할 것을 우려해 평의원들이 자리를 뜨려 할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본관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 약 11시간 지난 7월29일 오전12시30분, 서혁 교무처장과 교직원 1명이 본관 서문에 나타나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서 교무처장은 “김영주 동창회장의 건강을 우려해 내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전2시50분 구급차가 본관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학생들이 이를 제지했다. 프라임 사업을 두고 올해 3월에 있었던 점거농성 당시에도, 구급차를 이용해 안에 있는 평의원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갔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이에 서 교무처장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사업)에 대해 책임을 지며 김 총동창회장을 내보내는 대신 다른 평의원이 소회의실에 들어오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을 했다. 그 이후 구급대가 김 총동창회장과 최은봉 교수를 각각 고혈압과 시력 건강을 이유로 호송했다.

  이 기간 동안 평의원측의 경찰신고는 계속됐다. 경찰 측 자료에 따르면 신고횟수는 23번이다. 경찰은 수차례 본관에 들어와 “학생들의 행동은 감금죄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학내 사안인 만큼 내부적으로 논의를 해 원만히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시위 참가자들에게 전달했다.

  7월29일 오후10시45분 구급대가 신고를 받고 본관으로 진입해 평의원회 간사 한 명의 혈압을 체크했다. 혈압은 정상으로 나왔지만 간사는 편두통을 호소했다. 구급대원은 MRI를 찍어야 한다며 간사를 이대목동병원으로 호송했다. 이날 자정을 넘긴 시각에는 학생들이 소회의실에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 처장이 “머리가 어지럽고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 숨쉬기도 힘들다”고 호소하자 학생들은 음악을 껐다. 오전4시30분경에는 취침을 할 수 있도록 소회의실 전등을 껐다.


  △7월30일 경찰병력 투입 이후

  7월30일 오전10시30분 본관 정문으로 경찰 7명이 도착해 소회의실 앞까지 들어섰다. 학생들은 경찰이 평의원들을 데려가지 못하도록 막아섰지만 서대문 경찰서장이 “신고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해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학생 1명이 호흡곤란을 호소해 구급대에 호송됐다.

  당시 학생지원팀은 총학을 비롯한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에 ‘총장과의 조건 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고 전달한 상황이었다. 학생지원팀은 최경희 총장이 정오 전에본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중운위에 전달했으며, 시위 참가자들에게도 이런 내용이 공지됐다.

  그러나 정오경, 본교에 약 1600명의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여경을 포함한 경찰 약 300명은 본관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스크럼을 짠 학생을 한 명씩 끌어내며 전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학생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학생들이 찰과상을 입거나 실신하는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학생 측 자료에 따르면 학생 약 10명이 연세세브란스병원으로 호송됐다.

  경찰 병력의 본관 진입은 경찰 측과 최 총장 간 통화 이후에 이뤄졌다. 총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학생과 총장간 면담 논의가 오가던 오전11시15분 경찰 측은 ‘본관 안으로 진입을 해야 한다’며 최 총장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최 총장은 “긴급한 상황이라면 잘 판단해 (평의원들을) 구출하고 학생들이 다치거나 연행하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고 전했다.

  오후12시55분 내부에 있던 교수 및 교직원은 4명은 본관을 빠져나와 병원으로 호송됐다. 경찰 투입 약 30분만이다. 오후1시4분 본관 안에 있던 경찰 병력은 모두 철수했다.

  학생들은 경찰 병력 투입 이후 점거농성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뒤, 오후6시에 경찰투입 관련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의 요구에 경찰병력으로 폭력적으로 진압한 학교본부를 규탄하며 미래대를 페지하고 최 총장은 즉시 학생들과 대화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이후 배포한 성명서에서 “경찰 병력투입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많은 학생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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