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19일 오후4시 행진하는 교수들. 출처=이대학보DB

  86일. 이례적으로 길었던 본관 점거농성이 끝이 났다. 미래라이프대학 철회 구호는 총장 사퇴, 비리 척결로 이어지며 이화를 달궜다. 다사다난했고, 아팠으며, 뜨거웠다. 때론 울었고 때론 웃었다.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과 함께 봉합해야 할 상처와 후유증도 남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화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고, 대학사회가 맞닥뜨린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였다. 본지는 이번 시위가 이화에, 그리고 사회에 던진 시사점을 짚어봤다.

△ 시위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본교 시위는 ‘주동자 없는 시위’ ‘느린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었다는 평을 얻었다. 시위 초반엔 총학생회가 이끄는 듯 했지만 이후 대표자 없이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이후 시위 과정 중 교수 감금혐의로 최은혜 총학생회장 외 5명이 주동자로 경찰조사가 이뤄지자 ‘우리 모두가 주동자’라는 뜻에서 사발통문을 붙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본관 안에서 ‘만민공동회’를 통해 의견을 모았다. 발언 시간이나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학생들의 의견도 반영하기 위해 본교 커뮤니티 사이트 이화이언(ewhaian.com) 게시판을 적극 활용했다. 온·오프라인 참여자들 모두가 참여하며 다수결로 이뤄지는 의견수렴 과정은 물리적 한계를 보완한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라는 점에서 이른바 ‘달팽이 민주주의’로 화제가 됐다. 

  주도자가 없는 만큼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익명성’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외부세력’은 배제했다. 시위 초반부터 본관 출입 시 학생증과 신분증을 검사하면서 외부인의 시위 참여를 차단했고, 오로지 ‘이화인’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시위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에 외부 단체와의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과의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외부와의 연대를 거부하고 순수성을 고집한 양상은 기존의 시위들과 결이 달랐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9월12일자)에서 “한국사회에서 운동권 집단으로 한번 매도되면 타격이 크다. 학생들이 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나름의 뜻이 변질되지 않고 선명히 드러날 수 있었고, 이런 차별화 전략이 시위를 유지하는 동력이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사상의 자유,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이는 오히려 비민주적인 모습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이화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   

  시위가 이어져오는 동안 이화 구성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린 말 중 하나는 ‘이화의 가치’다. 학생들은 본관 해제를 고하는 마지막 성명서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첫째, 참된 지성인을 키우는 ‘진’으로서의 이화, 둘째,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선’으로서의 이화, 셋째, 따뜻함으로 더욱 하나 되는 ‘미’로서의 이화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 그리하여 130년 이화의 전통과 가치를 이어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화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는, 시위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게끔 하는 원동력이 됐다. 학생과의 대화보다는 공권력 투입을 결정한 총장, 정부 비리 스캔들에 연루된 입시학사 논란은 이들이 알고, 믿고 있는 이화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학내 문제에 유례없이 많은 졸업생이 참여한 배경에도 이화 가치의 수호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졸업생들은 ‘나는 이런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뜻에서 졸업장 반납 퍼포먼스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드러난 구성원 간 가치의 충돌은 이화 구성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화의 가치, 비전, 방향 설정을 과제로 남겼다. 시위에 참여했던 졸업생 이모 씨(국문09년졸)는 “이화는 국내 다른 어떤 대학보다도, 고유의 정체성과 정신을 동문 모두가 공유하는 특별한 대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시위는 이화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고, 앞으로 이화가 나아가는 데 있어 유의미한 약이 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학생의 목소리로 학교의 행정을 바꾸다

  점거농성 7일 만에 학교는 미래라이프대 사업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대학 측의 요청으로 대학재정지원사업 추진 계획을 철회한 것은 처음이었다.

  미래대 설립은 철회됐지만 학생들은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는 계속됐다. 최 전 총장은 “진정한 책임은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라며 사퇴를 거부했으나, 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입학 및 학점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후 끝내 사임의사를 밝혔다. 학생들의 주된 요구였던 미래대 철회와 최 전 총장의 사퇴가 달성된 것이다.

  이를 두고 본교의 시위를 상명하복식 구조를 전복시켜 성취한 승리라고 평했다. 최정화 씨(52·여·경기 용인시)는 “밑에서부터 집단적으로 모여서 본부를 향해 요구한 시위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뤄지게 된 것을 본 것은 오랜만 것인 것 같다”며 “아래에서부터 요구되어 사업계획이 전면적으로 수정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귀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학내 문제 시작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다

  이화 시위는 교내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기도 했다. 점거농성의 시발점이었던 평생교육단과대학(평단) 사업은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본교 시위가 이슈가 되자 동국대 총학생회도 학교의 평단 설립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동국대 총학은 당초 평단 사업에 긍정적이었지만, 본교 시위 이후 학교 측과 다시 만나 사업을 논의한 결과 ‘학위 장사’가 우려된다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경남 창원대 교수들 역시 평단 사업 추진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근본적으로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이 대학 구성원들 간 갈등을 유발하고 대학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제기됐다. 대학의 수입구조에서 국고보조금 비율이 높아지면서 교육부가 각 대학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탓에,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재정지원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펼치는 정책이 전반적으로 관료적인 태도이며, 하향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문제”라는 논평을 내놨다. 사업 공고부터 지원까지 빠른 시일 내 졸속으로 이뤄져 대학 구성원 간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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