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창제자와 창제일을 알 수 있는 전 세계 유일 문자. ‘한글’의 수식어다. 2023년 10월9일은 제577돌 한글날이다. 2023년은 남북한 정전 70주년이기도 하다. 남북의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한글 사용은 변하지 않는 남북의 공통점이다. 우리 곁에 함께하는 본교 탈북민 학생들과 20년 넘게 북한 방언을 연구해 온 전문가에게 우리말, 우리글에 대해 들어봤다.

북한에서 온 본교 학생 세 명 모두 탈북민이 아닌 ‘이화인’으로 남고 싶다며 기사에서 익명 표기를 요청했다. ㄱ씨는 10대 후반의 나이로 탈북해 남한에 정착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2021년 본교에 입학했다. ㄴ씨는 북한에서 전문대학 과정까지 마친 후 탈북해 2022년 본교에 입학했다. ㄷ씨는 2015년 9월 압록강을 건너 2016년 8월 남한 땅을 밟았고, 2020년 본교에 입학했다.

북한에도 한글날이 있을까?

북한에는 한글날이 없다. 우리글을 ‘한글’이라 부르지 않고 ‘조선글’로 칭하기 때문이다. 다만 1월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며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한 남한과 차이가 있다. ㄱ씨는 “1월15일이 달력에 기념일로 표시돼 있지만 공휴일로 정하거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뉴스로 북한 소식을 접하다 보면 이해가 되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나 문장이 있다. 정치, 문화적 배경으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정했기 때문이다. 소신애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남과 북의 규범어와 표기법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의 이질화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 교수는 북한 방언과 언어 변이에 대한 관심으로 두만강 부근의 함경도 방언을 연구했다.

남과 북은 한글 자모의 명칭을 다르게 정하고 있다. ‘기역, 니은, 디귿…시옷’ 이렇게 자음마다 다른 모음을 사용하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기윽, 니은, 디읃…시읏’과 같이 모든 자음에 ‘ㅡ’ 모음을 사용한다. 자음의 배열순서도 다르다. 남한은 ㄱ다음에 ㄲ을, ㄷ 다음에 ㄸ을 배열해 홑자음자와 쌍자음자를 함께 배열한다. 북한은 홑자음자를 모두 배열하고 난 후 쌍자음자를 따로 배열한다. 이렇게 자음 배열에 차이가 발생하면 국어사전에서의 단어 배치도 달라진다.

일반 국민에게 보급하기 위해 발간된 ‘겨레말작은사전’ 속 두음법칙 적용의 차이를 보이는 단어들. <strong>권찬영 기자
일반 국민에게 보급하기 위해 발간된 ‘겨레말작은사전’ 속 두음법칙 적용의 차이를 보이는 단어들. 권찬영 기자

'로동', '미누스' 알듯 말듯 남북한글의 차이

ㄴ씨는 남북의 글자 체계 차이 중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사이시옷’을 꼽았다. 사이시옷은 두 단어나 어근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합성어 사이에 ‘ㅅ’이 덧붙는 음운 현상을 가리킨다. ‘어젯밤’이나 ‘촛불’ 같은 단어에서 사용되는 ‘ㅅ’ 받침이 바로 사이시옷인데, 북한은 사이시옷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이시옷은 아직도 헷갈려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맞춤법이 맞는지 항상 확신이 없어요.”

북한의 신문사 <로동신문>에서도 남북 언어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로동’은 남한식으로 표기하면 ‘노동’이다. 노동을 남북이 다르게 표기하는 이유는 남한에서만 ‘두음법칙’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두음법칙은 ㄴ,ㄹ 등 일부 소리가 단어의 첫머리에 발음되는 것을 꺼려 실제 표기에 나타나지 않거나 다른 소리로 발음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한에서는 함께 오는 모음에 따라 ‘녀자’가 ‘여자’로 바뀌거나 ‘려권’이 ‘여권’으로 표기된다. ㄴ씨는 “남한 언어 체계를 배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 것이 두음법칙”이라며 “이씨를 리씨로 쓰는 것처럼 표기가 다른 게 가장 큰 차이 같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ㄴ씨는 “과제로 독후감을 썼는데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며 “북한에서는 띄어쓰기를 잘 하지 않아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의존 명사는 원칙적으로 앞 단어에 붙여 쓴다. 의존명사는 독립성이 없어 앞에 위치한 다른 말과 함께 써야 하는 명사로, ‘할 수 없다’의 ‘수’가 그 예다. 북한은 ‘할수 없다’로 표기한다. 이 밖에도 단위 명사, 서로 다른 품사 등 남한에서 띄어 쓰는 단어나 음절을 북한에서는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ㄱ씨는 “탈북민들이 대학 진학 전 대안학교에 많이 가는데, 기본으로 배우는 것이 띄어쓰기”라고 말했다.

외래어의 종류와 표기법에서도 남과 북은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은 ‘마이너스’를 ‘미누스’로, ‘트랙터’를 ‘뜨락또르’로, ‘그룹’을 ‘그루빠’로 표기한다. 노동당에 입당하거나 상급학교에 입학할 때 각 지역과 학교에 배당하는 할당 비율을 의미하는 ‘뽄트’, 교육 강령을 의미하는 ‘테제’ 등 북한에만 존재하는 외래어도 있다. ㄱ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 가사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 교수는 남북한 외래어 표기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분단 이후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외래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차이를 가진 두 국가에 각각 영향을 받아 남북이 주로 사용하는 외래어와 그 표기가 다르다. 또 다른 이유는 남북한 외래어 표기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북한 모두 소리대로 표기하는 표음주의를 원칙으로 외래어를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에 쌍자음을 사용하는 북한과 달리 남한은 일부 예를 제외하고는 쌍자음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고쳐야 하는 언어 아닌 다양성의 언어로

북한에서 모국어로서 배운 글과 문법이 남한에서는 ‘틀린’ 것이 돼 버렸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본교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ㄷ씨는 “친한 친구들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고 나서 오히려 많이 물어볼 수 있었다”며 “이 상황에서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ㄱ씨도 “조별 과제를 하며 피해를 주는 것이 미안해 북한에서 온 것을 밝혔다”며 “(조원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본교 학생들이 탈북민 학생과 그 생소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냐는 물음에 ㄴ씨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이화인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북한 방언도 한 지역의 사투리일 뿐이에요. 사람의 배경보다는 사람 자체에 집중해 대해주면 좋겠어요.” ㄷ씨는 “북한 방언을 사용하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기 어렵다”며 “고치고 바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 방언에 대해 관심가지고 다가와 주면 고맙고 좋아요.” 고치고 잊어야 할 말투나 용어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남과 북의 언어를 모두 담은 국어사전인 ‘겨레말큰사전’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소 교수는 “남북 언어 규범 각각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 언어 이질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에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수용할 필요가 있어요.” 한 줄의 선이 한반도를 갈라놓은 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소통하고 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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