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에서는 퀴어 콘텐츠가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strong>출처=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미디어에서는 퀴어 콘텐츠가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니 ◆엘지비티(LGBT)가? 장미는 여자잖아.” 

연애 예능 프로그램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좋알람)’(2023)에서 나온 한 남성 참가자의 말이다. 이 남성은 동성에게 호감을 표시한 여성 참가자에게 놀라며 이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구수한 사투리로 상대 참가자에게 성 정체성을 묻는 장면은 온라인 커뮤니티 여러 곳으로 퍼져 화제가 됐다. 좋알람은여느 연애 예능과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자스민’이라는 여성 참가자가 같은 여성인 ‘백장미’에게 호감을 표시한 후로 시청자가 급속히 유입됐다. 해당 프로그램의 연관 검색어에는 둘을 짝지어 말하는 ‘스민-장미’가 주로 등장하기도 하고 자스민과 백장미의 서사에 주목한 요약본 영상이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퀴어 콘텐츠

오늘날 퀴어는 드라마, 영화, 예능을 가리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등장한다. ‘선암여고 탐정단’(2014)에서는 동성끼리 키스하는 장면이 나왔고 ‘아가씨’(2016)에서는 부잣집 여성과 하녀의 로맨스가 주된 서사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윤희에게’(2019), ‘시맨틱 에러’(2022) 등 퀴어는 다양한 소재로 미디어에 스며들었다. 퀴어 커플 세 쌍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메리퀴어’(2022), 게이들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남의 연애’(2022)같이 퀴어만을 다루는 예능까지 나왔다.

미디어가 처음부터 퀴어 소재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문화평론가 성상민씨는 “2010년대 이후 미디어에서 퀴어라는 소재는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대 전의 퀴어는 어딘가 불쾌하거나 불쌍하고 동정해야 할 존재로 그려졌다”며 “한국 미디어가 퀴어를 재현하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국내 퀴어 콘텐츠는 퀴어를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다른 괴물이거나 이상한 존재로 낙인찍는 단계에서 벗어났습니다.”

퀴어는 더 이상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퀴어가 해당 작품의 주 흥행 요인이 되기도 했다. 여성 동성애를 다룬 영화 ‘아가씨’는 428만 명의 관객을 모아 흥행을 기록했다. 연애 프로그램 ‘좋알람’에 출연한 두 여성의 서사를 다룬 영상은 해당 프로그램 유튜브 채널 에서 3월9일 기준 최고 조회수인 34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퀴어가 시청자들을 모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좋알람을 즐겨본 정예진(독문·22)씨도 동성 간의 로맨스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는 “그동안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연애 리얼리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좋알람은 자신의 성 지향성을 과감히 드러내고 성별에 상관없이 상대에게 호감을 표시할 수 있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고 시청 소감을 밝혔다.

성씨는 “퀴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데는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각종 법, 정책 차원에서 여전히 퀴어에 대한 존중은 없지만 그들은 존재를 감추지 않고 계속 드러내요. 이를 통해 서로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자는 자세가 서서히 넓어졌고 그 결과가 미디어 차원에서도 반영된다고 생각합니다.”

 

퀴어 콘텐츠, 대중 입맛 반영되기도

퀴어 소재 자체만으로 이목을 끄는 만큼 미디어는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좋알람은 프로그램 중후반부까지 자스민과 백장미의 서사를 보여 주며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그러나 마지막 화 최종 선택에서 이미 프로그램 중반에 자스민이 마음을 정리했다는 게 밝혀졌다. 마지막까지 둘의 서사에 마음을 졸였던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편집임을 알고 허무함을 느꼈다. 시청자들은 좋알람 제작진에게 ‘◆퀴어베이팅(Queerbating)’이 아니냐는 비판을 던지기도 했다. 무리한 편집으로 퀴어 서사를 전면에 내세워 의도적으로 홍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ㄱ(소프트·17)씨는 “퀴어 요소로 시선을 끌기 위한 작위적인 편집 때문에 그 전말을 알았을 때는 어디까지가 출연자들의 진심인지 혼란스러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퀴어라는 소재가 화면 밖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씨는 “국내 퀴어 콘텐츠는 현존하는 동성애 작품의 일관된 묘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며 “퀴어의 사랑을 ‘비련’으로만 그리는 모습도 여전히 강하다”고 지적했다. 정씨도 “허구를 바탕으로 한 국내 창작물에서는 퀴어가 실제 성소수자의 현실을 나타내기보다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더 많이 재현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퀴어 콘텐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퀴어 콘텐츠는 점점 더 많아지고 다양해질 전망이다.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동성애 요소가 있는 장면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과거를 지나, 퀴어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끄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앞으로 퀴어는 지금보다 더 자연스러운 소재가 될 것이다. 성씨는 “해외 드라마에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등장한다고 놀라지 않듯 퀴어 캐릭터나 서사도 자연스럽게 여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ㄴ(커미·19)씨도 퀴어에 어떤 특징을 부여해 이를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그는 “미디어에 퀴어가 자주 등장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퀴어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는 미디어 속에 퀴어가 등장하면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화제성이 생깁니다.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더 많이 퀴어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미디어에 퀴어가 나오는 일이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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