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퍼레이드(퀴퍼)를 여는 것 자체가 투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본교 성소수자 인권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변날) 활동가 안얼이 말했다. 3일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운영위)가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며 퀴퍼 개최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운영위는 퀴퍼 대신 같은 날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한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을 위한 회복콘서트(회복콘서트) 개최를 허가했다. CTS문화재단이 운영하는 CTS기독교TV는 2020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통과, 반드시 막아야 한다’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던 방송사다.

 

조정 절차도 없이 불허 결정된 퀴어 퍼레이드

서울광장은 신고제로, 광장 사용 신고가 들어오면 서울시가 수리하는 게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두 개 이상의 행사가 동시에 신고되면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같은 기간에 사용 신청한 단체 간의 협의를 통해 한 단체가 날짜를 바꾸거나 사용을 취소하는 식으로 조정이 진행된다.

서울시는 퀴퍼와 CTS의 사용 신고가 겹친 상황도 조례에 따라 “각 단체에 전화해 협의∙조정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양선우 조직위원장은 “서울시가 축제 기간을 옮길 의사가 있는지 한 번 물은 게 전부”라며 “CTS의 행사가 어떤 행사인지에 대한 정보도 주지 않아 제대로 된 조정을 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조정 절차를 거쳤지만, 두 단체 간에 조정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운영위를 열었다. 운영위는 서울시 광장의 운영에 관한 내용을 심의하는 학계 전문가와 시민, 시의원 등이 모인 기구다. 운영위 심의 결과 퀴퍼 개최는 불허되고 CTS의 치유콘서트가 허가됐다.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가 우선된다는 서울시 조례 6조에 따른 결정이다.

퀴퍼 조직위원회 측은 운영위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양 위원장은 “2022년 이전에는 날짜가 중복된 다른 행사 주최 측과 소통해서 행사 기간을 조정해 왔다”며 “제대로 된 조정 절차 없이 운영위에 넘긴 것 자체가 차별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CTS 문화재단이 개최하는 회복콘서트는 행사 관련 홈페이지나 알려진 정보도 없다. 그러나 운영위는 퀴퍼 측이 광장 사용을 신청하고 한 달 후 회복콘서트의 서울광장 사용을 허용했다. 6월에 광장 사용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했던 2022년에 비해 한 달 빠른 결정이었다.

양 위원장은 “퀴어퍼레이드가 예정된 날에 퀴어퍼레이드와 반대되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열리게 됐다”며 불허 결정이 “성소수자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조운후(약학19)씨는 서울시의 불허 결정이 “성소수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퀴어퍼레이드에 오는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서울에 성소수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은 서울광장이 유일하다. 광장 사용 날짜를 변경하려 해도 사용 신고된 행사가 이미 9월까지 가득 차 있어 쉽지 않다. 양 위원장은 “내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매년 퀴퍼 개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불허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신촌 대학가에서 개최됐다. 제공=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12일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불허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신촌 대학가에서 개최됐다. 제공=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20년 역사 무력하게 만드는 서울시 결정에 답답함 느끼는 성소수자들

2000년 시작된 퀴퍼는 신촌, 홍대, 이태원 등 여러 곳에서 개최되다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20년의 역사 동안 퀴퍼는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됐다. 2022년 퀴퍼에 참여했던 변날 활동가 어름은 “소수자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도심을 한 바퀴 도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며 “행진에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퀴퍼 개최가 항상 쉬웠던 건 아니다. 퀴퍼 개최 초기에는 퍼레이드를 개최할 공간 사용을 허가받지 못해 매년 개최 장소를 옮겨야 했다.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후에도 첫 개최인 2015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조정 절차를 거쳐야 했다. 2022년에는 6일간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했지만 “과도한 신체 노출을 지양”한다는 조건 하에 하루만 제한적으로 광장 사용이 허가됐다.

개최가 어려운 건 퀴퍼뿐만은 아니다. 2022년 여성 성소수자들이 개최한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는 동대문 체육관이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개최가 취소됐다. 2022년 인천 중앙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인천퀴어문화축제도 장소허가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얼 활동가는 “퀴어 행사를 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퀴퍼를 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숙원사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울 퀴퍼 개최가 어려운 현실은 성소수자들에게 큰 무력감으로 다가온다. 개최 초기부터 장소 섭외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장소 사용이 완전히 불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름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성소수자들이 일 년에 한 번 서로를 만나 존재를 긍정하며 해방감과 유대감을 느낀다”며 “그것도 어렵다고 하는 데서 현실의 막막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촌 스타광장에서 진행된 '5.12 서울퀴퍼 서울광장 사용 불허 대학가 무지개행진'의 플래카드. 제공=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신촌 스타광장에서 진행된 '5.12 서울퀴퍼 서울광장 사용 불허 대학가 무지개행진'의 플래카드. 제공=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선우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서울광장에서 퀴퍼를 열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서울광장을 배경으로 하는 온라인 퀴퍼 등  다른 대책을 찾고 있다” 다른 곳에서라도 7월1일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퀴퍼가 위기를 맞자, 각지에서 시민들의 노력이 시작됐다. 성공회대는 여러 대학 인권 단체와 연합해 작은 퀴퍼를 개최한다. 양 위원장은 “학교나 여러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퀴퍼를 계획하며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도 “어떤 형태든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용히 살던 사람들도 하루 정도는 시끄러울 수 있는 날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축제처럼 즐기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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